19세기 말 - 20세기 전반기 최영장군 신앙과 무신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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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9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380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58-97(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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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술사적 연구가 전무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기 무속에서의 최영장군 신앙과 무신도의 유형과 특징을 고찰하는 글이다. 최영은 청백리의 삶을 살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국가와 백성을 위해 헌신했던 역사적 위인으로 추앙받는 인물로, 수많은 공적에도 불구하고 측근의 배신과 억울한 죽음으로 신격화되어 민간신앙의 가장 강력한 숭배 대상이 된 인물이다. 조선시대에 최영이 정치적 목적으로 신원이 복원된 후부터는 역사적 위기 때마다 국가적, 지역적, 개인적인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특별히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에 민족이 처한 난관의 극복과 위안, 승리에 대한 열망의 상징으로 국가와 민중에 의해 소환되어 신으로 숭배되었다.
먼저 인간 최영이 무속의 신이 된 이유를 청백리의 삶이나 올곧은 성품이 반영된 적분(赤墳), 관료와 장군으로서의 공적과 관련 있으며, 무속의 절대 영험을 갖게 된 결정적 이유는 그의 억울한 죽음에 기인함을 알았다. 역적으로 참수를 당하지만 최영에게 직접적으로 은덕을 입은 백성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최영을 넋을 위로하고 추모했고 그들 자신도 최영의 혼령에게 위로받기를 원했다. 즉 최영의 드라마틱한 삶과 죽음은 가장 불운하고 천한 인간이라는 인식을 가진 일반 백성들의 공감을 얻고 그들을 위로하였기에, 인간 최영은 가장 강력한 무속의 신령이 될 수 있었다.
최영과 관련된 무속신앙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전국의 무당이 찾는 무속의 성지 개성 덕물산 최영장군사당을 비롯해, 8개의 사당이 집중되어 있는 경남 남해안 지역의 최영장군사당과 서울지역의 부군당이나 국사당 등 지역에 따라 최영장군을 신앙하는 성격이 다르고 모시는 무신도의 유형도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유형은 그림이 아닌 소상(塑像)으로 모시거나 관료 또는 장군복 신상 또는 반신상 영정으로 나눌 수 있다.
근대기 국내외의 정세와 맞물려 최영장군이 무속에서 가장 강력한 신으로 모셔지는데, 당시 굿거리를 설명한 『무당내력』 류에 표현된 최영장군상을 통해 당시 최영장군 무신도의 유형을 살필 수 있다. 최영장군 거리에 등장하는 무당은 호수로 장식한 주립을 쓰고, 청색 철릭을 입으며, 갓끈을 묶어 매고 삼지창과 언월도를 들었는데, 이러한 모습이 당시 서울지역 최영장군 무신도의 도상이다. 이러한 도상에 근거한 대표적인 무신도가 〈기봉영당 최영장군 영정〉과 〈남산국사당 최영장군 무신도〉이다. 이 두 상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모두 서울지역의 부군당 및 굿당에 모셔진 최영장군신과 같아 현재 국외소재 무신도 등 전국의 불분명한 무신도의 명칭을 규명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남해안 사당의 반신상 역시 『무당내력』 류나 기봉영당 영정의 양식을 따르고 있어, 이 양식이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광범위하게 모셔졌음을 알았다. 그러나 〈인왕산국사당 최영장군 무신도〉는 투구와 비슷한 발립을 쓰고 포를 입은 모습으로 제작됐는데, 이는 20세기 초엽 남산국사당이 인왕산으로 이전하며 새롭게 모시게 된 최영장군신상을 〈개성 덕물산 최영장군사 최영 소상〉을 기준으로 하여 고증해서 특별히 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신도는 백성을 아픔과 고난을 위로해주는 무속신앙의 종교화임에도 불화나 민화의 아류로 보아 그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본 고찰이 무신도의 역사적, 종교적, 민속적 가치뿐만 아니라 예술적 중요성이 인식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This study is the research on the Shaman Spirit Painting (Musindo) of general Choe Yeong in the late 19th and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Choe Yeong was a military commander in the late Goryeo and a historically great man who lived a simple life devoid of greed and devoted himself to the nation and the people at the risk of his death. Despite his numerous achievements, his colleagues betrayal and his tragic death led him to be deified as one of the most powerfully worshipped Shaman. Since his identity was restored for political purposes in the Joseon Dynasty, Choe Yeong has been used for national, regional, and personal purposes in every historical crisis. And, especially in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to Japanese colonial period, he was recalled and worshiped as a god by the nation and the people and as a symbol of a conquest and consolation of difficulties faced. It was people’s desire for victory. The shamanism related to Choe Yeong can be divided by region. First, there is a shrine of Che Yoeng’s Shrine on Deokmulsan in Gyaesung, a sacred place of shamanism that shamans all over the country are visiting.Next, the eight shrines are concentrated in the south coast area in Gyeongnam. Lastly, there are Bugundang and Guksadang in Seoul. Depending on region, the faith of General Choe Yeong has different characteristics and different types of the shamanic spirit painting worshiped. The types can be divided into a clay figure not a painting, or a full portrait of god in general uniform of amor, and half-length portrait in military uniform. In modern times, due to the domestic and foreign situation, general Choe Yeong was worshiped as the most powerful god in shamanism, At the time, the figure of general Cho Yoeng expressed in 『Mudang Naeryeok』, a book explaining Gutegeori (shaman song), was wearing a red Gat in bird feather, blue Chulrik, tying up strings of Gat (Gatkkeun), and holding a trident and scimitar. This feature is an icon of the shamanic spirit painting of the general Choe Yeong in Seoul region at the time, and the representative paintings are 〈a portrait of general Cheo Yeong in Gibong shrine〉 and 〈a Paintings of Shamanistic Spirits of genenral Cheo Yeong in Guksadang〉. These two paintings are likely to have been drawn in the late of 19th century to the early 20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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