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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螺鈿史의 관점에서 본 고려 螺鈿의 성립 = Emergence of Goryeo(高麗) Dynasty Mother-of-Pearl Decoration from East Asian 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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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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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螺鈿을 아시아 특유의 문화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본고에서는 그 중에서도 제일 먼저 나전을 성립시킨 한·일·중의 동아시아 세 지역 가운데 한반도에서의 나전 제작의 기원과 나전문화의 성립 과정에 대하여 세 지역 전체 상황을 살펴보면서 구체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세계 각지에서 각 시대에 제작된 나전은 기술·구조적으로 a) 玳瑁地[모자이크]螺鈿, b) 樹脂地螺鈿, c) 木地螺鈿, d) 漆地螺鈿의 네 종류로 분류된다. 그리고 이들 네 가지 유형은 모두 唐代 나전에서 확인할 수 있으므로, 필자는 그 후에 각지에서 제작된 나전은 당을 시원지로 하여 여러 계기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전파된 것이라 생각하는데, 특히 중국과 역사적, 지리적으로 깊은 관계를 가진 주변 동아시아 지역의 나전은 가령 그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중국의 영향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한반도의 螺鈿史를 검토할 때 먼저 검토해야 할 것은 문양적으로 도다이지[東大寺] 쇼소인[正倉院]에 전해지는 螺鈿鏡과의 공통성을 가진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전 가야 고분 출토 〈螺鈿團花禽獸文鏡〉이다. 이 거울의 제작지에 대한 연구자들의 견해는 당 제작설과 통일신라 제작설로 나뉘는데, 쇼소인 나전경과의 문양적인 유사성을 중시하는 연구자들은 통일신라 제작일 가능성을 더 유력시하는 것 같고, 또한 실물 조사의 결과 양자가 같은 제작기법과 소재로 만들어진 거울이라고 판단하는 연구자도 있다.
1975년 안압지(현 월지) 유적에서 平脫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다시 당의 공예 장식기술과 통일신라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자 한국에서는 나전과 평탈의 경우, 장식 재료는 자개와 금속판으로 서로 다르지만 옻칠 위에 이런 재료를 붙인다는 점에서는 같은 기술, 同種의 기법이라는 견해가 제시되었으며, 현재도 이러한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하여 상세히 검토해 보+I2면, 당대 나전경의 소지에 대하여 일본에서는 천연수지로 보고 있으며, 또한 이 시기의 나전은 두께 1㎜를 넘는 두꺼운 자개를 사용하였는데 그만큼의 두께로 옻을 반복해서 칠하는 것은 옻의 필요량, 들어가는 수고와 걸리는 시간, 비용을 생각하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한편 평탈은 옻을 접착제로 하여 얇은 금속판을 붙인 후에 단지 그것을 덮을 정도로 옻을 덧칠하는 것이므로, 기반 재료로서 옻을 사용하는 것은 이치에 맞는 현실적인 방법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기술·구조적인 차이 외에 당대의 나전에 漆地螺鈿이 2점밖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옻은 당시 나전을 제작하기 위한 필수적인 주요 재료가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따라서 나전과 평탈은 같은 종류의 기술로 볼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이상과 같이 동시대의 다른 유물과의 관계성이 희박하고, 또한 칠기로서 전대로부터의 계보도 찾을 수 없는 전 가야 고분 출토 〈螺鈿團花禽獸文鏡〉은 통일신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당으로부터 전래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견해라 할 수 있다.
고려 나전의 성립에 대해서는 통일신라시대부터의 전통을 기반으로 그 위에 고려의 독자성이 발휘된 결과라고 보는 견해가 지금까지의 주류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알려져 있는 고려 나전에서 통일신라시대부터의 계보를 찾아내기 어렵다면, 그 성립과정에 대해서는 전후 병행하는 시기의 중국과 일본 나전과의 비교를 통한 검토가 필요하다.
중국의 五代十國期부터 宋代에 걸친 나전에 관한 정보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으나, 몇 가지의 문헌기록과 실물자료 및 회화작품 등을 통하여 검토해 보면, 북송 方勺이 『泊宅編』에서 ‘螺填器本出倭國(螺鈿器는 원래 왜국에서 나왔다)’이라고 한 유명한 문구의 영향으로, 11세기 후반 중국에서는 나전이 상당히 쇠퇴하였다는 이미지와는 달리, 11~12세기에도 중국에서는 나전 제작이 계속 이루어졌으며, 12세기에는 정밀하고 銅線을 사용하는 고려 나전과 유사한 특징을 가진 나전기가 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오대십국기부터 북송 초기에 걸친 2점의 漆地螺鈿 經箱의 사례와 12세기초경의 蘇漢臣 작 〈秋庭戱嬰圖〉에 그려진 나전 의자 등을 보면, 11세기 초경에는 두꺼운 자개를 베를 바른 면에 붙이고 표면을 옻으로 마무리하는 唐代 나전양식에 가까운 漆地螺鈿이 주류였는데, 12세기경에는 얇고 자잘한 다수의 자개로 당초문 등을 나타내는 나전으로 극적인 변화를 이루었음을 알수 있다. 또한 분명치 않은 부분이 많으나, 下地[바탕]는 아마도 骨粉을 섞은 것을 이 시대에도 계속 이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의 헤이안[平安]시대부터 가마쿠라[鎌倉]시대까지의 나전에 대해서도 문헌기록과 전세품을 통하여 검토해 보면, 헤이안시대 중엽인 10세기 전반경부터 문헌에 漆地螺鈿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고, 유물은 11세기 중엽 이후에 확인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두꺼운 자개를 木地에 감입한 후 옻칠로 마무리하는 상감기법과, 얇은 자개를 木地面이나 下地에 붙인 후 옻칠을 반복하는 貼付法의 두가지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후 늦어도 13세기에는 후자인 貼付法에 의한 중세적인 나전이 주류가 되었으며, 파낸 下地에 두꺼운 자개를 감입하는 고대적인 상감식 漆地螺鈿은 자개의 박편화가 진행되면서 빠른 속도로 쇠퇴해 갔던 것으로 판명된다. 고려 나전은 문헌기록에 의하면 11세기 중엽에 출현했음이 확인되는데, 유물 자체는 확인되지 않아서 이 시기의 실태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따라서 12세기 이후의 유물로 생각되는 약 20점의 고려시대 나전을 동시대 중국과 일본의 나전 양상과 비교 검토해 보면, 그것들은 동아시아 전체의 나전칠기의 변화 동향과 발을 맞추면서도 늦어도 11세기 초에 자개 貼付法에 의한 나전 기법을 성립시켰던 중국보다는 기술적으로 시기가 늦으며, 얇고 자잘한 자개의 조합으로 문양을 구성하는 방법과 그 장착법 혹은 골분 下地의 이용 등에 송대 나전과의 기술적·문양적인 유사성과 친화성이 인정되므로, 한반도에서는 11세기 후반을 전후한 시기 이후에 중국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은 나전칠기의 제작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고려 나전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금속 單線으로 당초문의 줄기와 넝쿨을 나타내는 방법은 당대의 木地螺鈿에서 확인되는 기법이긴 하지만, 자
개로 줄기와 넝쿨을 표현하는 宋代부터 元代에 걸친 중국 나전과는 다른 것이므로, 고려 나전이 당대의 전통기법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새로 채용한 가능성이 있다. 또한 고려 나전에 사용된 貝殼 종류의 문제는 그 성립을 생각하는 데에서도 중요한 논점이 된다. 나전 패각 종류를 정하는 것은 여전히 경험적인 판단에 의한 측면이 크지만, 8세기부터 13세기경에 걸쳐서 나전에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패각의 종류는 분포범위가 류큐[琉球]열도로 한정되는 야광패와 일본 혼슈[本州]섬에서 규슈[九州]섬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몇 가지 해역에 분포하는 전복패로 제한된다. 당대의 나전 패각 종류에 대해서는 과학분석과 연구자의 경험적인 판단에 의하여 야광패라는 견해로 일치하고 있으며, 오대십국기부터 북송 초기의 나전도 야광패로 상정된다. 元代나전에 대해서는 전복이라고 하는 견해가 중국을 중심으로 널리 인정되는 것 같지만, 대표적인 유물의 자개 관찰과 明代부터 淸代에 걸쳐 오키나와[沖繩]에서 중국대륙으로 야광패가 대량 수출되었다는 기록 등을 통해 필자는 야광패로 판단한다. 또한 일본에서도 가마쿠라시대까지는 야광패가 사용되었다고 판단하는 연구자들이 많으며, 필자도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고려 나전에 대해서는 한국의 연구자들과 몇몇 일본인 연구자들은 전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필자를 포함한 몇 명의 일본인 연구자들은 야광패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견해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령 8세기부터 13세기에 걸친 중국 혹은 일본의 나전에 일관되게 야광패가 사용되었다는 판단을 전제로 할 경우, 고려 나전의 자개도 야광패였다면 고려 나전은 기술적 측면 외에 소재로 하는 자개에 관해서도 중국 나전과 강한 영향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 된다. 단 류큐열도에서 산출하는 야광패가 중국 본토를 경유하여 한반도로 전해진 것인가, 아니면 규슈섬을 지나는 일본 경로를 통하여 전해진 것인가라는 점이 큰 논점이 될 것이다. 반대로 고려 나전이 전복패를 사용했다고 하면 기술과 下地, 문양 등에서 볼 수 있는 중국과의 유사성이 패각 종류에 한해서는 상반된 특징을 가짐과 동시에 고려에서는 독자적으로 나전 패각 종류와 소재 가공법을 개발하였던 셈이 되므로,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문제에 대하여 본고에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으나, 나전 패각 종류의 문제는 고려 나전 성립의 경위를 생각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과제임을 다시 한 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고려 나전의 성립과 발전에 대한 검토는 지금까지 칠공예사 연구의 일부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樹脂地螺鈿과 木地螺鈿 등이 대표하는 唐代의 나전에 있어서 옻칠의 소재와 그 장식법이 나전의 주요 기술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면, 통일신라시대의 나전경은 새로운 사고방식, 즉 자개의 가공과 그것을 중심으로 한 나전사의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칠공예 기술을 주체로 하여 제작된 고려시대 나전에 대해서는 나전사뿐만 아니라 당연히 칠공예사의 일부로서 검토할 필요가 있으나, 그것은 칠공예 기술을 주체로 하지 않은 전대의 나전이나 그 관련 기술과는 일단 분리하여, 오히려 같은 시대에 나전칠기를 성립시켰던 동아시아 각지의 나전과의 비교를 통하여 그 성립과 발전을 검토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검토하여 이른 것이 앞서 말한 본고에서의 결론이다.
The present author considers that mother-of-pearl decoration is one of the specific cultures
created in Asia. In this article, he would like to argue the emergence and early days of that decoration in the Korean Peninsula, one of the areas among China, Korea and Japan where mother-of-pearl culture emerged much earlier than in other areas in the world.
As a whole, mother-of-pearl techniques can be divided into four kinds: a) mosaic technique
(モザイク螺鈿), b) resin embedded technique(樹脂地螺鈿), c) wooden inlayed technique(木地螺鈿),
and d) lacquered technique(漆地螺鈿). Since all these four techniques can be recognized as early as
in the Tang(唐)dynasty, the beginning of other Asian mother-of-pearl cultures would be after that
period and the technique could have been transmitted directly or indirectly in the historical exchange
from China. It would be difficult to deny any relationship with China when we consider every Asian
mother-of-pearl culture.
First, for tackling the ancient history of Korean mother-of-pearl decoration, we need to examine
the famous mother-of-pearl ornamented bronze mirror allegedly found from Gaya(伽耶)mounded
tomb of the Unified Silla(統一新羅)period, which has commonality with mother-of-pearl mirrors of
the Shosoin(正倉院)treasures in Nara. Former researchers who emphasize its stylistic similarity with
the Shosoin mirrors tend to speak of this mirror as having been produced in the Korean Peninsula.
However, researchers who focus on technical similarity between both mirrors consider it as having
been produced in China.
In 1975, thin metal ornamented lacquerwares(平脱漆器)were excavated from Annapchi pond
(雁鴨池)ruin in Gyeongju(慶州), and it became a re-starting point of discussion about the relationship
of craft production between the Tang dynasty and the Unified Silla. In the 2000s, one hypothesis that
both thin metal ornamented mirror and thick mother-of-pearl ornamented mirror are lacquerwares
produced with the same technique, only difference being the ornamented material such as metal or shell, was submitted. This way of thinking has become the main stream until nowadays in Korea,
China and UK. However, on the contrary, in Japan, base material of mother-of-pearl ornamented
mirror has been recognized as natural resin, not lacquer, for years. Because lacquer is not proper
material for filling the gap in height between thick shell top and bronze surface, amount of lacquer
needed, time and cost, the present author accepts the opinion in Japan. As a result of this, it can be
insisted that mother-of-pearl ornamented mirror and metal ornamented mirror belong to different
series of techniques, and mother-of-pearl mirror found in the Korean Peninsula could be an object
produced in and imported from the Tang dynasty.
It has been considered that mother-of-pearl culture in the Goryeo dynasty was fulfilled based
on the ethnical tradition continuing from the Unified Silla period. However, as described above, it
is difficult to find direct relationship between Unified Silla and the Goryeo dynasty mother-of-pearl
objects. Thus, early days of the Goryeo mother-of-pearl culture should be researched by comparison
with Chinese or Japanese examples in the same age.
Information concerning Chinese mother-of-pearl objects in Wudai-Shiguo(五代十国)period is
very limited. In addition to that, it has been mostly believed that mother-of-pearl production in the
Song(宋)dynasty substantially declined according to the record on the “Bozhaibian(泊宅編)” written
by Fang Shao(方勺)of the North Song(北宋)dynasty. However, by two examples of Wudai-Shiguo
period we can know that although mother-of-pearl style in the early 11th century was under the
tradition of the Tang dynasty mother-of-pearl making, by the famous Song dynasty painting ‘Children
Playing in an Autumn Garden(秋庭戯嬰図)’ by Su Hanchen(蘇漢臣), it can be confirmed that this
tradition changed drastically in the 12th century to the style of using very thin and fine cut shell
fragments.
In Japan, by records or remaining objects it is known that before the 13th century shell inlay
technique onto wooden surface was major, but after the 13th century pasting technique of thin shell
fragments onto lacquered surface became major.
By comparison with Chinese or Japanese mother-of-pearl decoration described above, it can be
said that Goryeo mother-of-pearl style after the 12th century also has the same tendency with the style
of both countries and is especially much similar to Chinese mother-of-pearl pattern and technique.
Based on this fact, the author estimates that lacquered mother-of-pearl making of remaining Goryeo
dynasty pieces started after the late 11th century at the latest with strong influence from China.
Interestingly, that the adoption of metal wire technique for the depiction of tendril stem of the
arabesque pattern could have been succeeded from Tang dynasty technique is a particular point found
on Goryeo mother-of-pearl objects.
Another important problem for Goryeo mother-of-pearl decoration is the species of shells used.
Technique for identification of shell species utilized for mother-of-pearl objects is not established
yet and it is mostly specified by personal experience so far. From the view point of history and
distribution of sea shell species in East Asia, the author would like to consider that green turban
shell(夜光貝)was used in the Goryeo dynasty, same as in China and Japan. If this speculation is
accurate, Goryeo dynasty mother-of-pearl had similarity with China, not only in pattern or technique
but also in material. In this case, which route, i.e. via main land China or via Kyushu island, was taken
for import of green turban shell captured at Okinawan sea also becomes an important problem. On
the contrary, if not green turban but abalone shell was used, only shell material being different from
Chinese mother-of-pearl production, we need proper explanation.
In East Asian countries, mother-of-pearl decoration has been recognized as one of lacquer art
so far. However, is this truly correct and proper framework of consideration? For deconstructing
and positioning history of mother-of-pearl decoration, especially for considering its initial days, the
author believes that examining the type of mother of pearl, i.e. shell, would be important. On the
other hand, Goryeo dynasty was the period when lacquered mother-of-pearl technique was general.
For considering mother-of-pearl of this age, the author would like to stress the importance of making
comparison among neighboring areas of the same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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