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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종실 집안 別室의 家垈 매매와 후손들의 삶 -西平君 李橈의 가계를 중심으로- = The House Site sale of the Jongsil concubine’s and the Life of the Descendants in the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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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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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219(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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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udy looked at how the property formed by the concubine of the jongsil was transmitted to the bastard through the house site contract acquired by the concubine of Lee Yo of Seopyeong-gun, who was active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gjo. Seopyeong-gun was the great-grandson of King Seonjo's son, Inseong-gun, and was well versed in the arts and was greatly trusted by King Yeongjo. Because Seopyeong-gun had only concubine children, his successor became a big brother`s son. Accordingly, their social status and economic power were compared by contrasting the bastard and agnatic adoption.
『Seonwon Sokbo』 lists YeoHeung-min and Saknyeong-choi as the wives of Seo Pyeong-gun. However, Seo Pyeong-gun had two concubines, the forgotten Lee and Baek. In the 18th century, the two concubines each acquired a house and site, centering on Gyeonghaengbang and Jeongseonbang in the jungbu of Hanseongbu. The period of house site trading for concubines was mainly during the life of Seopyeong-gun. it is estimated that the trading capital of concubines was Seopyeong-gun's property. After the death of Seopyeong-gun, the bastard faced difficulties in living. related contents can be found in 『Gyeseogo』 and 『Seungjeongwon Ilgi』 .
Seopyeong-gun had bastards Ikhyeon, Ikhyung, and Ikgeom, but he had no a legitimate son, so he succeeded Lee Ik-ryeol, the third son of his eldest brother Anpyeong-gun. The heirs died early without descendants with four out of five descendants of the heirs were adoptees adopted. Accordingly, although Gwangryeom, the 4th generation descendant of Lee Ik-ryeol, was poor in his early years, they continued to advance to government posts through a sort of official-hereditary system, and the matter of succession received attention enough to be discussed at the court. During this process, Mr. Choi, the wife of Seo Pyeong-gun, had a considerable right to speak. On the other hand, Seo Pyeong-gun's bastard line received weaker treatment compared to the Bongsa-son line. Among the three bastard brothers, only Ikhyeon and Ikhyeong served as seobanjiks, but they were only available in their late 50s. just 35 years after seopyeong-gun's death, Ik-hyeon was unable to find a marriage place for her son and daughter for his son and daughter to marry or to prepare a marriage ceremony. In particular, in the case of Ikhyeon's son, he widely sought a suitable family to marry in Seoul and other provinces for three months, but he could not. Although they were descendants of wealthy clan, the bastard line had lost their economic and social status in just two generations.
In addition, the noticeable difference from the Bongsason lineage is that the bastard lineage of SeoPyeong-gun did not adopt even if the household was cut off. seopyeong-gun's bastard line was maintained until the grandson's generation, and after that, all of them were no record left after that. Adoption did not take place. This is a part that is constantly interested in the state and is adopted so that the ancestral rites is not cut off, and has had opportunities to be promoted to government posts.
본 연구는 영조대 활발히 활동한 서평군 이요의 별실이 매득한 가대매매명문을 통해 종실의 첩이 재산을 치산하는 과정과 종실의 서얼이 친부 사후 어떻게 살아갔는지 양상을 살펴보았다. 서평군은 선조의 아들인 인성군의 증손으로 예술에 조예가 깊었으며 영조의 큰 신임을 받았다. 서평군에게는 첩자녀만 있었기 때문에 그는 큰형의 아들을 立後하였다. 이에 입후 계열과 첩자녀 계열을 각각 대조하여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비교해 보았다.
『선원속보』에는 서평군의 적처로 군부인 여흥민씨와 삭녕최씨가 기재되었다.
그러나 서평군에게는 잊힌 이씨와 백씨라는 두 명의 첩이 존재하였다. 두 첩은 각기 18세기에 한성부 중부 경행방과 정선방을 중심으로 가사와 공대를 매득하였다. 첩들의 가대 매매 시기는 주로 서평군 생전에 이루어졌다. 이로 미루어 첩들의 매매 자본금은 서평군의 자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평군의 사후 서얼들은 생계의 어려움에 봉착하였다. 관련 내용을 『溪墅稿』와 『승정원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평군에게는 익현, 익형, 익검의 서자가 있었으나 적자가 없어 큰형 앙평군의 셋째 아들 이익렬을 입후하였다. 계후자의 5대손 중 4명이 입후됐을 정도로 계후자들은 자손 없이 일찍 사망하였다. 이에 이익렬의 4대손 광렴은 초년에 가난했지만 이들은 지속적으로 음직으로 관직에 나아갔고, 계후 문제는 조정에서 논의할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이 과정 중에 서평군 부인 최씨는 상당한 발언권을 가졌다. 반면 서평군의 서자 계열은 봉사손 계열과 비교하여 대우가 약하였다. 서자 삼형제 중 익현과 익형만이 음직으로 서반직을 지냈으나 50대 후반에나 가능하였다. 불과 서평군 사후 35년 만에 서장자 익현은 자신의 아들과 딸의 혼인처를 구하지 못하거나 혼수를 장만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익현 아들의 경우 혼인할 적당한 집안을 찾아 석 달 동안 서울과 지방에서 널리 구했지만 끝내 구하지 못하였다. 부유한 종실의 자손이었으나 서자 계열은 불과 2대만에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떨어진 상태였다.
이외 봉사손 계열과 눈에 띄는 차이점은 서평군의 서자 계열은 가계가 끊어져도 입후를 하지 않은 점이다. 서평군의 서자 계열은 손자 대까지 유지되고 이후 모두 무후하거나 기록이 남지 않았다. 계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는 지속적으로 국가에서 관심을 가지며 입후를 세워 제사가 끊어지지 않도록 해주며, 調用의 기회가 있었던 봉사손 계열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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