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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시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외교 실패원인에 대한 검토 = A study of the cause of failure to be recognized as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in Chungking by the Great Allied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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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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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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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06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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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시기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정)의 최대 과제는 연합국 열강으로부터 한국민을 대표하는 정부로서 공식 승인을 받는 동시에 군사적 지원을 얻어내는 일이었다. 그래야만 임정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의 패전에 기여하고 독립된 한국에 그들이 진정 원하는 정부를 세울 수 있었다. 이러한 목표를 위하여 임정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들의 승인외교는 끝내 좌절되었다.
당시 중국 국민정부와 미국 · 영국 · 소련 등의 주요 연합국들은 임정의 內在的 취약성과 분파투쟁, 국내와의 연락 부재 등의 이유를 내세워 임정 승인을 기피하거나 거부했다. 그런데 연합국 열강이 임정 승인문제를 고려할 때 일차적으로 중시했던 것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의 자국의 이해관계였다. 그들은 일본의 패전 후 동아시아에서의 힘의 공백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메울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고려 속에서 임정 승인문제를 저울질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임정 승인에 호의적이었던 나라는 중국 국민당정부 뿐이었다. 전후 ‘帝國으로의 복귀’를 열망하던 영국은 아시아에 있는 그들의 식민지에 미칠 파장 때문에 한국의 독립과 임정 승인에 대하여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일본과 ‘중립조약’을 체결했던 소련의 경우 한국문제에 대하여 침묵을 지켰지만, 친중 · 친미적 성향의 임정에 대하여는 거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연합국 열강 간 합의에 의한 한국문제 해결에 고심하던 미국은 전후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 구상을 내놓게 되었다. 이를 통하여 미국은 중국이나 소련의 한국에 대한 일방적인 영향력 행사 욕구를 차단하는 동시에 한국문제에 대한 미국의 우월적인 발언권을 확보하려고 했다. 요컨대 중경시기 임정의 승인외교가 실패로 귀결된 데에는 임정의 내재적 한계 내지 취약성보다는 국제적 요인, 즉 연합국 열강의 한국문제에 대한 상이한 인식과 이해관계가 보다 크게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The most important task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in Chungking was to be officially recognized by the Great Allied Powers as a government representing Koreans as well as to win military support from them. Then it could contribute to Japan’s defeat as a member of the Allied Nations and build a government in independent Korea which it wanted. For this, it did its best under a given condition, however, its diplomatic relations was frustrated in the end.
At that time, the Kuomintang government of China and the leading Allied Powers like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the United Kingdom and the Soviet Union evaded or refused to recognize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Korea giving their reason of its internal vulnerability, factional struggle and absence of connection in Korea. But their considering the issue to recognize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Korea, they, first of all, made much of their interests in East Asia including the Korean peninsula. They scaled the issue to recognize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Korea considering strategically who would fill the power vacuum in what way in East Asia after Japan’s defeat.
From this perspective, the Kuomintang government of China was the only country which showed a friendly feeling for approval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Korea. The United Kingdom which had aspired to return to an empire after World War II consistently showed a negative reaction to Korea’s independence and its recognition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Korea. The Soviet Union which had concluded a neutrality pact with Japan kept silence about the issue of Korea, however, it assumed a negative attitude toward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Korea with a pro-Chinese and pro-American dispositio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n taking great pains to find a solution to the Korean issue by agreement between the Great Allied Powers came to present the idea of the trusteeship of postwar Korea. Through this, the United States tried to cut off the unilateral exercise of influence of China or the Soviet Union over Korea and at the same time secure its superior right of speaking in the issue of Korea. In short, the cause of the failure of diplomacy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Korea in Chungking was due to international factors rather than its internal limit or vulnerability, that is, the Great Power’s different understanding and interests had a more significant effect on the Korean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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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0 | 학술지등록 | 한글명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STUDIES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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