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새부리(Ansaipyuri)에 대한 역사·지리학적인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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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4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232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33-175(43쪽)
제공처
영남지역 최초의 복음 전도자인 배위량 선교사는 대구·경북지역의 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대구·경북지역의 교회는 3.1운동 시기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 그런데, 대구·경북지역에서 3.1운동이 일어난 발상지는 배위량의 제2차 순회전도 여행한 지역과 거의 일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가 대구·경북 지역 교회에 끼친 영향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의 일기에 나타나는 마을 이름인 ‘Ansaipyuri’(‘안새부리’)는 선교·문화사적인 의미에서 중요하다. 그것은 이 마을이 배위량의 선교활동에서 중요한 열쇠어(Schlüsselwort)가 되고 한국 초기 선교 역사를 이해하는 데 기본적이고, 중요한 토대를 이루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안새부리(Ansaipyuri)에 대한 역사·지리학적인 탐구”를 통하여 다음 2가지 소주제를 다루고자 한다. 1. 안새부리에 대한 연구가 왜 필요한가? 2. 안새부리가 어디인가? 3. 안새부리가 왜 신촌리 안마을인가? “안새부리의 위치에 대한 역사·지리학적 이해”를 통하여 안새부리의 위치를 찾고자 배위량의 일기 본문을 분석하고 인문학적인 분석과 현장 탐방를 통하여 “안새부리(Ansaipyuri)에 대한 역사·지리학적인 탐구”를 진행하게 될 것이다. 팔조리의 출발점은 팔조령에 그 기원이 있다. 자연부락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 팔조리는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상당히 늦게 형성된 마을이므로, 팔조리를 1893년 4월 21일에 배위량이 잠을 잤던 마을인 안새부리로 보는 것은 역사·지리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 그리고 몇 가지 정황상 팔조리가 배위량이 말하는 안새부리라는 주장은 역사적인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
“안새부리의 위치에 대한 역사·지리학적 이해”를 통하여 안새부리의 위치를 찾고자 배위량의 일기 본문을 분석하고, 현장 탐방과 인문학적인 사고를 통하여 “안새부리(Ansaipyuri)에 대한 역사·지리학적인 탐구”를 진행하게 될 것이다. 배위량은 안새부리(Ansaipyuri)라는 산골마을에서 1893년 4월 21일 밤에 잠을 자고 이튿날 아침에 팔조령을 넘어서 대구를 향하였다. 역사·지리학적인 판단으로 볼 때 안새부리는 ‘신촌리의 안 마을’로 추정할 수 있다. 1893년 4월 21일에 배위량이 여행한 경로는 청도 읍치에서 나와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학산리 방향으로 향하다가 토평리와 고철리를 거쳐 당시에 차북면 소재지인 상당동(현재 신촌리 상당마을)을 거쳐 청도 역사의 현장인 ‘신촌리 안 마을’로 와서 하룻밤을 쉬어 갔다고 본다. 옛날부터 ‘새벌’로 불리던 신촌리는 배위량이 처음으로 청도를 방문했던 1893년 당시에는 ‘새불’ 또는 ‘새부리’로 불렸고, 지금은 그 말의 후기 변화 형태인 ‘새월’이란 지명으로 불린다. 이런 논증에 따라 ‘안새부리’는 ‘신촌리의 안동네’로 추정된다.
Missionary Bae Wi-ryang(William M. Baird, 1862-1931, 베어드) was the first evangelist in Youngnam province. Missionary Bae Wi-ryang was the first evangelist in Youngnam province. He is a pathfinder who greatly influenced the culture of the Daegu-Gyeongbuk area. Churches in Daegu and Gyeongbuk area play an important role during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By the way, the birthplace of the 3.1 movement in Daegu-Gyeongbuk area is almost the same as the area where Bae Wi-ryang’s second round trip traveled. From this point of view, we can infer the influence he had on the churches in Daegu-Gyeongbuk area.
The name of a village in his diary, ‘Ansaipyuri’, is significant keyword (Schlüsselwort) in missionary and cultural history.
The name of this place is an important keyword in Bae’s missionary activities and is fundamental to understanding early missionary history in Korea. In this paper, through a historical and geographical exploration of Ansaipyuri, I would like to address the following two subtopics. The first is: “Why is the study of Ansaipyuri necessary?” The second is: “Where is Ansaipyuri?”. The third is: “Why is Ansaipyuri an inner village of Sinchonri?” In order to locate Ansaipyuri through a historical-geographical understanding of the location of Ansaipyuri, I analysed the diary texts of Bae Wi-ryang and conducted a historicalgeographical exploration of Ansaipyuri through field visits.
The origin of Paljori is the starting point of Paljoryeong. Paljori, which does not have a natural village name, is a village formed quite late in various circumstances. So it is not timely for Paljori to become ‘Ansaipyuri’, the village where Bae Wi-ryang slept in a mountain village called Ansaipyuri on 21 April 1893 and left for Daegu the next morning, crossing the Paljoryeong. In some contexts, the claim that Paljori is the amount of coordination ‘Ansaipyuri’ is very poor in historical basis.
Based on historical and geographical research, Ansaipyuri is believed to be the ‘inner village of Sinchonri’. The route taken by Bae Wi-ryang on 21 April 1893 is believed to have been from ‘Cheongdo-eupchi’(‘청도 읍치’[邑治]) to Haksanri along the road on the left, then through ‘Topyeongri’, ‘Gochulri’ and ‘Sangdang-village’, the seat of the district office of ‘Chabuk-myeon’, to an ‘inner village in Sinchonri’, the historical site of Cheongdo, where he stayed overnight.
Sinchonri, which called ‘Saebeol’, When Bae Wi-ryang first visited Sinchonri in 1893, it was later ‘saebul’ or ‘saebuli’, and now ‘Saewol’, a later form of the place name. From this it can be concluded that ‘Ansaipyuri’ was an ‘inner village of Sinchon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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