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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멸망에서 발해 건국으로의 계기와 연속성 = Momentum and Continuity from the Fall of Goguryeo to the Founding of Bal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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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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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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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멸망 후 당은 평양성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두고 고구려 전역을 기미주(羈縻州)로 재편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점차 확대되어 가는 고구려 유민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되면서 요동 일부 지역에만 기미지배 체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신라와의 전쟁에서 패하게 되면서 당은 평양에 있던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이치시켰다. 당이 처음 구상과 달리 요동지역 일부만 기미지배 체제로 꾸리게 된 것은 나당전쟁의 실패와 고구려 당시에도 독립적 성향이 강했던 지방 세력들이 각지에서 자력으로 무장한 채 독립적으로 산재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당은 대외적으로 토번의 위협과 새롭게 발흥하고 있던 돌궐의 움직임 등으로 위협이 가중되고 있었다. 이러한 고구려 고지의 상황으로 당이 안동도호부 관할 하의 요동 일부 지역만을 유지하고 더 확대시키지 못한 이유였으며, 신라의 북진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696년 거란인 이진충(李盡忠)의 반란에 영주(營州)에 있던 고구려 유민과 말갈이 합류하게 되면서 이들을 이끌게 된 걸걸중상(乞乞仲象)과 걸사비우(乞四比羽)는 동쪽으로 안동도호부를 공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요동도독부는 건재했지만 이들은 안동도호부 관할의 유민들을 흡수해 요동에 각기 자신들의 세력권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진충의 반란이 실패하고 걸사비우의 사망과 당군의 공격에 걸걸중상을 이은 대조영(大祚榮)은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 무리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달아나 동모산에서 진국을 세웠다. 발해가 건국되자 각지에 흩어져 있던 고구려 유민 집단과 말갈 집단이 계속해서 합류하면서 빠르게 그 세력을 확대할 수 있었다. 특히 고구려 고지에 흩어져 자신들의 세력권을 유지하고 있던 유민사회가 합류하였는데, 이들이 고구려 지배층으로서의 지식과 경험을 갖고 오랫동안 한 지역의 수장으로서 집단을 꾸려온 경험과 경륜은 발해를 빠르게 성장하고 안정적인 국가형태로 자리잡게 한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After the fall of Goguryeo(高句麗), the Tang Dynasty attempted to reorganize the entire Goguryeo region into Detention State, Gimizu(羈縻州) by establishing Andong Metropolitan Protectorate(安東都護府) in Pyongyang Castle(平壤城). However, as they faced growing resistance from Goguryeo refugees(遺民), they had no choice but to switch to the system of the state of the prefecture(羈縻支配體制) in only some areas of Liaodong. Moreover, after losing the war with Silla(新羅), Tang Dynasty relocated Andong Metropolitan Protectorate from Pyongyang Castle(平壤城) to Yodong(遼東). Contrary to the original plan, the Tang Dynasty only had part of the Liaodong region governed by the Kimi system, which may have been due to the defeat in the Silla-Tang War(羅唐戰爭) and the fact that local forces with strong independent tendencies were scattered independently in various regions, armed on their own even at the time of Goguryeo. Moreover, the Tang Dynasty was facing an increasing external crisis due to Turkic(突厥)'s attacks and the newly emerging Turkic(突厥) threat. This situation in the former Goguryeo region was the reason why the Tang Dynasty only maintained a part of the Liaodong region under the jurisdiction of Andong Metropolitan Protectorate and could not expand it further, and Silla's northward advance was also cautious.
In 696, Goguryeo refugees in Yingzhou(營州) and Mohe Tribes(靺鞨) joined the rebellion of Li Quanzhong(李盡忠), a Khitan(契丹), and Geogeoljungsang(乞乞仲象) and Geolsabiu(乞四比羽), who led them, appear to have attacked Andong Metropolitan Protectorate to the east. Although the Yodong Prefecture Governor’s Mansion(遼東都督府) remained intact, it appears that they were able to establish their own sphere of influence in Liaodong by joining refugees from the jurisdiction of the Andong Metropolitan Protectorate. After Li Quanzhong's rebellion failed, Geolsabiu's death, and the Tang army's attack, Dae Jo-yeong(大祚榮), who succeeded Geogeoljungsang, led the Goguryeo refugees and the Mohe Tribes to the east and established a Jin kingdom on Dongmo Mountain(東牟山). When Balhae(渤海) was founded, Goguryeo refugee groups and Malgal groups which had been scattered in the surrounding area, the country continued to join and quickly expanded its power. In particular, the refugee society, which was scattered in the former Goguryeo region and maintained its sphere of influence, joined. And the ability of forming a group as the head of a region for a long time based on the knowledge and experience of those who were the ruling class of Goguryeo would have been the driving force that allowed Balhae to grow rapidly and establish itself as a stable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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