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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末⋅朝鮮初 權漢功에 대한 世評의 變化 = A Change in Reputation of Kwon Hangong between Late Goryeo Period and Early Jose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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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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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87(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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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on Hangong (權漢功) was a prominent political figure who actively engaged in government affairs through the reign of six kings from King Chungryeol (忠烈王) to King Chungjeong (忠定王); however, later he was included in the chapter on disloyal servants in Goryeosa (高麗史) published during the reign of King Munjong (文宗) in Joseon Dynasty (朝鮮王朝), and came to be widely known as a disloyal man.
However, an examination of Kwon Hangong on whether he really engaged in disloyal activities and seen as a disloyal servant after death revealed that it was not so. He was sent on an exile during the reign of King Chungsuk (忠肅王), and then appointed as an officer of the highest rank after receiving a pardon, and treated with respect as an elder politician. Furthermore, as a respected figure, he affected Lee Saek (李穡)’s decision on marriage even after death, and was known as the most prominent figure among pupils of Kwon Dan (權㫜). Sachonhoe (四寸會) was a gathering of kin, consisting of Kwon Hangong’s descendents and their spouses, centered around Kwon Hangong as a proud ancestor.
Even in Joseon Dynasty, King Taejo (太祖) remembered Kwon Hangong as an excellent man of letters during the reign of King Chungsuk. In various jiriji (地理志) published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世宗), Kwon Hangong was described as a representative figure of his family clan based in the county of Andong (安東). However, since the late period of King Sejong’s reign, historical records based on a Neo-confucian view began to be published, which portrayed Kwon Hangong as a man who betrayed his king. Later he officially became a disloyal servant as he was included in the chapter on disloyal servants in Goryeosa.
These developments indicate that Kwon Hangong was not described negatively between late Goryeo period and the early period of King Sejong’s reign in Joseon Dynasty, but came to be seen as a disloyal servant due to a historical perspective of those who published Goryeosa and portrayed so accordingly. That is, his reputation underwent a dramatic change from a respected and envied figure during his lifetime to a disloyal servant. Backgrounds to this change need be examined in a follow-up study.
권한공은 충렬왕부터 충정왕대에 이르기까지 6대에 걸쳐 정치적으로 활약한 인물로서, 조선 문종대 간행된 『고려사』의 간신전에 포함되면서 지금까지도 국왕에게 불충한 대표적인 간신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런데, 권한공이 정말로 간신이 될 만한 행적을 남기고 그의 후대에도 세상에서 그를 간신으로 보았는지를 검토하였더니 조선 세종초까지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권한공은 충숙왕대에 유배되었다가 사면되고 나서 최고 관직을 지냈고, 국가 원로로서 대우를 받았다. 또한 사후에도 권한공은 존경받는 인물로서 이색이 혼인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권단의 문생 가운데 가장 뛰어난 명사로 알려졌다. 권한공의 내외손자녀와 그 배우자들로 구성된 ‘4촌회’는 자랑스러운 조상인 권한공을 중심으로 만들어진혈족 모임이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태조는 권한공을 충숙왕대 뛰어난 文士로 기억하고 있었으며, 세종대의 각종 「지리지」에서는 본관인 안동을 대표하는 인물로 권한공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종대 후반 이후 성리학적 사관에 입각한 사서들이 편찬되면서 권한공이 임금을 배신한 인물이 되고, 마침내 『고려사』 간신전에 포함되면서 간신으로 확정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보건대, 권한공은 적어도 고려말 조선 세종초까지는 그다지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나쁜 인물은 아니었지만, 『고려사』 편찬자의 역사관에 따라 간신에 해당되는 인물로 선정되고 그와 같은 인물로 묘사되기 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권한공의 세평은 당대에 존경받고 부러움을 사는 인물에서 ‘간신이 되는’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배후의 사정에 대해서는 향후의 연구를 기약한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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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5-03-17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Korean Cultural Studies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6-18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Institute of Korean Culture -> Research Institute of Korean Studies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10-18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민족문화연구 29호 -> 민족문화연구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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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77 | 0.77 | 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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