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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묘소 관리와 묘사(墓舍)의 확산 = A study on cemetery management and the spread of ‘myosa[墓舍]’ during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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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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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5(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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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 주자성리학이 도입된 이후 『주자가례』에 따른 삼년상을 정착시키기 위해 이색(李穡)은 직접 삼년상을 여묘에서 진행하였다. 그 이후 이색의 방식을 따라 여묘 살이를 하는 사대부들이 증가하였는데, 여묘에는 임시로 제각(祭閣)을 만들어 각종 제전(祭奠)을 올렸다. 그에 따라 선조의 체백을 모신 묘소는 혼을 모신 가묘(家廟)와 함께 마땅히 수호하여야할 장소로 깊이 인식하게 되었고, 묘소의 관리문제가 대두되었다. 각 가문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던 사찰의 도움을 받아 묘소 관리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부분의 조선 왕릉은 능침사찰을 지정하거나 창건하였고, 대군과 공주들의 묘에도 분암을 창건하였다. 왕실의 행태는 사사 훼철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신이나 고위 관료들의 분암을 강력하게 금지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하기도 하였으나 조선 정부는 민간의 사찰 신설을 지속적으로 금지해나갔다. 이에 따라 삶의 터전을 잃은 승려들은 명문대가의 비호를 받기 위해 묘소를 수호해 주는 역할을 떠맡았다. 그 결과 17세기에 이르러 ‘재암(齋庵)’ 또는 ‘분암(墳庵)’에 거접하는 승려들을 국가 공역에 징발하지 못하여 다른 방법을 찾는 경우까지 발생하였다.
이황은 주자의 사례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여 가문에서 재사(齋舍)를 만들되 승려들을 거주시켜 묘소를 수호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 방안은 승려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점점 늘어나게 되는 문제와 재사에서 불사를 행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문에서 직접 묘사를 관리하여야 했다. 인조대 이후 예장 묘역에 묘사를 하사하고 승려를 환속시키려는 조처가 진행되자 주자의 한천정사(寒泉精舍)를 모범으로 삼아 묘역 부근에 묘사를 짓고 머물며 강학공간으로 삼는 경우가 늘어났으며 점차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살림까지 가능한 묘사가 확산되었다. 서원·사우에 관한 금령이 반포된 이후에는 묘사에 사우의 기능을 부여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났다.
묘소에서의 제사를 중시한 조선의 사대부들이 평상시 무덤을 관리하면서 재계할 묘사시설까지 마련한 것은 조선 예학연구의 성과를 보여준것이라 할 수 있다. 17세기 이후에 확립된 묘사는 가묘와 더불어 가문의 성소가 된 묘소를 관리하기 위한 시설로서 여러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fter the introduction of Neo-Confucianism in the late Goryeo Dynasty, Lee Saek[李穡] personally conducted the three-year mourning ceremony at Yeomyo[廬墓] to establish the three-year mourning ceremony according to the 『Jujagarye[朱子家禮]』. The number of noblemen living in Yeomyo in an unusual way increased, and they made temporary shrines at Yeomyo and held various ceremonial ceremonies. Accordingly, the tombs that enshrined the bodies of ancestors came to be deeply recognized as places that should be protected along with the family shrines[家廟] that enshrined their souls, and in most cases, they were protected with the help of temples that were closely related to the family.
Most royal tombs had a tomb temple designated or built, and 'Bunams[墳庵]' were also built at the tombs of princes and princesses. In the process of pursuing a policy of destroying temples, the royal family's behavior made it difficult to strongly prohibit public servants or high-ranking officials from entering Buddhist temples. As the Joseon government continued to ban the construction of new temples, monks who lost their livelihoods took on the role of guarding tombs in order to receive the protection of prestigious monks, and by the 17th century, monks who were accepted to 'Bunam' or 'Jaeam[齋庵]' There were even cases where they could not be commandeered into national airspace.
Considering the case of Zhu Xi and the situation at the time, Lee Hwang[李滉] suggested a plan to create a ‘Jaesa[齋舍]’ in the family and protect the tomb while allowing monks to live in it. This plan also addressed the problems of increasing costs for monks and the problem of performing Buddhist rituals at the Jaesa. To solve this problem, the family had to directly manage the depiction.
After the reign of King Injo, depictions were given to the tombs of the Presbyterian Church, and measures were taken to repatriate monks. Using Hancheonjeongsa[寒泉精舍] as a model, monks stayed near the tombs and used them as teaching spaces, spreading the depictions around the Gyeonggi region. After the ban on ‘Seowon[書院]’ and ‘Sawoo[祠宇]’ was promulgated, there was even a movement to give the function of Sawoo to the depictions.
The fact that Joseon's noblemen, who placed great emphasis on ancestral rites at graves, managed tombs on a daily basis and even provided facilities for ablutions shows the achievements of Joseon's rituals. The description established after the 17th century was that the family shrine, along with the family tomb, had various functions and meanings as a facility for managing the t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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