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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예문관 분관 실태와 한림의 관직 승진 양상 = Placement of Officials to the Bureau of Chronicler and their Promotion in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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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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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has figured out some trends of chroniclers, or Hallim, how they were placed and promoted throughout the Joseon dynasty. They were composed of low rank officials who were out of court-audience duty, or Chamha-kwan, from six through nine: two positions of Pongkyo from the higher seventh rank, two positions of Taekyo from the higher eighth rank, and four positions from higher ninth rank.
Statistically, every year witnessed a steady growing number of placement, one time of two more low officials, to the Bureau of Chronicler, or Yemun-kwan, up until late 16th century when the so-called political factions were seriously prevailed. It was King Youngjo, in 1741 A.D., who changed the system from recommendation to total agreement, from composition to royal examination. The chroniclers' family backgrounds and their way to start official positions were also interpreted with relevant statistics.
They were normally promoted to the three censorial Bureau: Saheon-pu, Sakan-won, and Hongmun-kwan. If they were promoted to the middle rank officials from three to six, they were restricted, in early days, to censorial body, or Un-kwan but gradually they also began to be assigned to other body such as Six Ministries and Prince Teachers as well. About 66% of them had been ascended towards the key government posts, or Tangsang-kwan. Then, two third of them were ultimately elevated to noble subject posts, or Konggyong-taypu.
조선시대 한림이라 칭하는 예문관 참하관은 정7품 봉교 2명, 정8품 대교 2명, 정9품 4명이다. 이들은 예문관 분관으로 서용되었다. 분관 대상은 문과 신급제자로부터 8품에 이르는 문과 출신 관원이다. 분관은 한림이 분관 후보자를 자천한 후 취재를 거쳐 이루어졌다.
예문관 분관은 평균적으로 1년에 1회 정도 실시되었고, 매회 2명 이상의 분관자가 배출되었다. 예문관 분관 인원은 16세기 후반을 정점으로 점차 감소하였다. 분관 인원이 16세기까지 지속적으로 늘어난 것은 역사 기록과 평가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서 그것을 담당한 한림의 중요성이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16세기 후반 사림정치기에 한림의 위상은 한층 높아지게 되었고, 한림의 인원도 가장 많았다.
17세기 이후 분관 인원이 줄어든 것은 분관이 순조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림의 자천으로 분관 후보자가 결정되는데 각 당파 간의 이견으로 후보자 천거가 쉽지 않았다. 또한 천거에 실패한 한림은 대간의 탄핵으로 사직하는 사례가 많아 한림이 전혀 없는 경우도 발생했다. 한림의 자천을 위해 별겸춘추라는 관원이 선정되어 천거를 시행하기도 하였다.
영조는 파행적인 예문관 분관 운영 체제를 개혁하기 위해서 1741년(영조 17) 한천제를 회권법으로 바꾸고, 시험 방식도 제술로 하는 召試法으로 바꾸었다. 영조의 한림 임용 방식의 개혁과 함께 정조는 규장각 각신에게 새로운 강목체 역사서인 『일성록』을 편찬하게 하고 한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18세기 후반 분관 인원이 더욱 감소하였다.
예문관 분관 기준은 門地, 인품, 재능이다. 한림의 재능은 전원 문과급제자 출신이라는 데서 검증된다. 이들의 학문적 소양은 문과 급제시 전력에서 알 수 있다. 한림의 71.1%가 생원․진사시와 문과를 거친 인재였다. 한림 출신 관원은 문과 급제 후 거의 5년 이내 예문관에 분관되어, 30대 초․중반에 한림으로 활동하였다.
한림의 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첫째 한림의 71%인 1,105명이 비정기시 급제 출신이며, 문과 급제시 거주지는 서울이 82%이다. 둘째 한림을 배출한 성관은 총 212개이나, 32개 성관에서 한림이 중점적으로 배출되었다. 한림을 배출한 성관의 특징은 배출한 한림 인원과 상관없이 성관 내 특정 가문에 한림이 집중되고 있다. 한 가문 내에서 한림이 배출되는 중에도 특히 8촌 이내 친족인 경우가 63%나 되고 있다. 이를 통해서 한림은 주로 서울에 거주하면서 정치적 지위가 계속 유지되는 현달한 관료 가문에서 배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림의 주요 승진 경로는 언론 기관인 삼사였다. 조선 전기에는 한림이 출육할 경우 의례히 언관직에 제수되었으나, 점차 육조 낭관직이나 세자시강원의 관직에도 제수되었다. 한림으로 참상 청요직을 거쳐 당상관에 진출한 경우는 약 한림의 66%이다. 한림 출신 당상관 가운데 2/3가 넘는 인원이 국가 경영을 주도하는 2품 이상 公卿까지 승진하였다.
이처럼 한림은 최고의 淸職이며, 公卿에까지 승진할 수 있는 통로이었다. 조선 후기에 예문관 분관과 한림 운영 체제는 변화를 겪었지만 한림의 승진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오히려 19세기에 한림이 세력 있는 특정 가문에 더욱 집중되고, 한림의 90% 이상이 당상관까지 승진하는 현상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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