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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초기 지방관의 守土活動 - 善山府使 丁景達 형제의 활동을 중심으로- = Local officials’ activities of regional defense(守土) in the early stage of the 1590s’ war with the Japanese -Examination of the actions of Seonsan-bu prefect Jeong Gyeong-dal and his brothers-
저자
김경숙 (조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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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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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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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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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6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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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amined in this article are the actions of Jeong Gyeong-dal, who served as the Seonsan-bu prefect in the early days of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and performed his duties of regional defense(守土). In 1591, Jeong Gyeong-dal was first assigned to the post of Seonsan-bu prefect, and moved there along with his family. Shortly after that the invasion of Japanese forces began. The Seonsan area, which was right upon the path of the invasion troops’ assault, fell to enemy forces and Jeong Gyeong-dal had no choice but to flee to the nearby mountain with his family. But sooner than later, he reassembled the soldiers and began launching guerilla campaigns against the Japanese troops. He was cut off from the Gwanchal-sa magistrate and was reported to the government as a deserter who abandoned his post, but in fact he was fiercely fighting the Japanese troops at the time. The actions of local officials and the performance of the government’s army in the early days of this war are usually considered in a very negative fashion, but the case of Jeong Gyeong-dal gives us reasons to review such previously established perception of them.
The reason he was able to achieve some victories at Seonsan was because he was aided by his family members. His brothers and nephews offered assistance and joined him in his efforts. While he was fighting the Japanese in Seonsan, his younger brother took charge of safely evacuating the rest of the family to the hometown of Jang’heung. And even after the resettlement to Jang’heung, Jeong Gyeong-dal’s brothers, sons and nephews continued to travel between Seonsan and Jang’heung to assist Jeong Gyeong-dal’s activities. His meritorious efforts were only made possible with the help and active aid of his own family members.
이 논문은 임진왜란 초기 선산부사 정경달의 수토 활동을 미시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관군의 활동과 동향에 대하여 적극적인 평가를 시도한 글이다.
정경달은 전라도 장흥 사람으로 1591년 선산부사에 부임하여 일가족과 타지에서 임진왜란을 경험했다. 선산이 함락된 초기에는 일가족을 거느리고 도피하였으나, 곧 혼란을 수습하고 군대를 모아 일본군에 대항하였다. 관찰사와 연락이 단절되어 도망 수령으로 조정에 보고되는 순간에도 사실상 그는 일본군에 대항하고 있었음을 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수토 활동은 4채 4도청의 운영을 통한 유격전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를 통해 그는 1592년∼1593년 4월까지 일본군을 斬捕한 숫자가 275級에 이를 정도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활약은 인근 고을에 알려지게 되어 인근 지역 의병장들이 합세하고, 경상도 관찰사는 그를 의병대장에 임명하여 의병 모집의 임무를 맡겼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1592년 12월에서 다음해 1월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관․의병 연합 작전을 주도하면서 일본군 토벌에 전력을 쏟았으나 유격전 활동과 달리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는 선산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宣武原從功臣 1등에 책봉되었고, 정약용은 『목민심서』 ‘禦寇’ 항목에 그의 사례를 수록하였다.
한편 정경달의 선산 활동은 兄弟子侄들의 지원과 역할 분담을 바탕으로 가능하였다. 그가 지방관으로서 국가에 대한 임무와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충돌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아우는 일가족을 거느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그는 선산에서 토적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후 형제자질들은 선산과 장흥을 왕래하며 그를 보좌하며 고락을 함께 하였다. 선산부사 정경달의 충의 실현은 가족 친족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활동을 바탕으로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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