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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금곡유적을 중심으로 본 낙동강 동안지역의 고대 철생산 = The Ancient Iron Production in the East Side of the Nakdong River - Focused on Miryang Geumgok Historic Remai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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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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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cient iron production in southeastern Korea was by and large made in two areas: one was around the south-east coastal area including Gyeongju and Gimhae, the other was the east area of the Nakdong river, from Yangsan to Miryang. Among the latter area of production many historic remains in Sachon and Keungeomse, Miryang, and in Oehwa and Mulgeum, Yangsan have been remarkable.
The geographical advantage of eastern side of the river made it easy to support and transport iron ores and timbers, and hence the areas along the river was at the center of iron production in the ancient times.
In the first case of remains in Geumgok, Miryang, what have been discovered was that all kinds of furnaces necessary to the whole process of iron making, such as mining ores, calcination, refinement, tempering, forging, melting, and steelmaking, were found out. And, secondly, in Sachon, Miryang, the production facility in which seven smelting furnaces were able to be in operation at once was excavated. Finally, in ruins in Mulgeum, Yangsan, it has been also assured that many furnaces including those for smelting. These features in remains reveal the building and management of mass production system at that time.
Considering the chronology and excavated relics of Imchon ancient tombs of iron production and the records, it is presumed that the management of this system with distribution had been in the power of those who were of the lineage of Silla.
Chronologically, in the sixth and mid seventh centuries, the production facilities were presumed to be in operation, like those in Sachon and Mulgeum. That period marks the beginning of centralized control over handicraft manufacturing with the established production and distribution system. Considering the chronological situation, capital of Silla, Gyeongju, was the key place for spreading technology of iron making to strategic strongholds with territorial expansion. Based on the dissemination of iron manufacturing technology from Hwangseon-dong in Gyeongju to east side of the Nakdong River, Silla could make a giant leap to powerful nation.
It can be concluded, therefore, that Silla, during the sixth and seventh centuries, in the midst of conquest war, successfully got hold of the regions of iron production like Yangsan and Miryang, and that helped Silla to take a step forward to the unification of three kingdoms.
한반도 동남부 지역의 고대 철생산은 경주와 김해를 비롯한 동남해안지역과 낙동강 동안을 이용한 양산~밀양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중 낙동강 동안의 철생산유적은 밀양 사촌유적, 밀양 금곡유적, 밀양 큰검세유적, 양산 외화유적, 양산 물금유적 등이다.
낙동강 동안지역은 원료인 철광석과 연료인 목재의 수급이 용이하고, 하천을 이용한 운반이 편리한 지리적 이점을 지닌 고대 철생산의 중심지였다.
또한 밀양 금곡유적의 경우, 제철조업의 전체 공정인 採鑛, 焙燒, 製鍊, 精鍊, 鍛冶, 鎔解, 製鋼 등에 해당하는 모든 종류의 제철로가 확인되었으며, 밀양 사촌유적은 제련로 7기가 동시에 조업된 생산시설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양산 물금유적 역시 제련로를 비롯한 다수의 제철로가 확인되어 낙동강 동안의 철생산유적들이 모두 대량 생산체계를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철생산체계 및 유통의 관리 주체는, 각 철생산유적에 인접한 고분군(임천고분군)의 편년과 출토유물, 문헌기록을 통해 유추해 볼 때 신라계의 세력인 것으로 판단된다.
밀양 금곡유적의 조업시기는 6세기~7세기 중엽 정도로 파악되며, 밀양 사촌유적과 양산 물금유적도 비슷한 시기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는 생산과 유통체계가 정비되고 중앙에 의한 수공업의 통제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이는 왕도인 경주에서 제철에 대해 기술을 쌓아놓았던 것을 신라의 영토 확장과 더불어 각 지방의 거점에 기술을 전파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즉, 경주 황성동에서 습득된 제철기술이 낙동강 동안지역으로 전파되었으며, 이러한 제철기술을 바탕으로 신라가 강력한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을 것이다.
6~7세기, 정복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신라는 양산~밀양으로 이어지는 철생산을 장악함으로써 삼국통일에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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