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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우도(慶尙右道) 사림파(士林派)와 선비의 본고장 함양의 얼 ─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과 그 후예 및 서원(書院)을 중심으로 ─ = Sarim Party in Gyeongsang-uhdo(慶尙右道) and the Spirit of Hamyang as the Center of Sŏnbi - Focusing on Ildu Jeong, Yeo-chang(一蠹 鄭汝昌), his Successors and Seow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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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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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8(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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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부터 ‘영남은 인재의 보고와 선비의 본고장’이라 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선비의 본고장으로 낙동강 좌안에서는 안동이, 그 우안에서는 함양이 으뜸이라는 말이 있었다.
경상도 함양출신인 일두 정여창은 문묘에 종사(배향)된 동국 18현과 조선 초기 5현의 한 분이다. 정여창과 아울러 함양의 인물들과 서원 및 남명 조식과 관련된 진주 등 그 주위 지역 선비들을 재조명하였다. 특히 정여창은 뛰어난 효자이고, 그의 善惡天理論은 성리학적 논의의 특징을 보여준다.
조선 초기에 함양군수를 지낸 김종직은 사림파로서 정여창과 함께 김굉필ㆍ김일손ㆍ유호인ㆍ조위ㆍ남효온ㆍ홍유손ㆍ이종준 같은 여러 현인들을 제자로 길렀다.
한편 조선 중기 이후 기축옥사(1589)와 인조반정(1623) 및 무신란(1728) 등의 정치적 사건으로 인하여, 중앙 조정으로부터 인재발탁의 차별을 당하였다. 이로부터 선비 본고장으로서의 면모가 조선 후기로 오면서 상당히 상실되었다. 하지만 뛰어난 선비와 국난극복을 위한 훌륭한 인물은 끊어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왔다.
지방향촌의 사족들은 혼인이나 강학 등의 다양한 교류를 통해 지방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확고히 하려고 하였다. 이 때 관학인 향교보다도 유교적 향촌질서를 확립하고 유지하는 확실한 주체는 사설 교육기관인 ‘서원’이었다. 특히 영우의 대표적인 서원인 남계서원은 정여창을 주향으로 모시고 있다. 1566년(명종21)에 ‘蘫溪’라는 사액을 받았다. 1677년에 동계 정온이 배향되고 1689년에 개암 강익이 배향되었다.
정여창은 하동 정씨로서 그의 증조인 정지의가 함양으로 처음 입향 하였다. 정여창의 부친 정을육은 무관출신으로 咸吉道虞侯로서 이시애의 난 때에 순절하였다. 그는 定宗임금의 손녀사위로서 일찍부터 시회적 신분과 정치경제적 기반과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
함양읍 백연리 출신으로 임진왜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인 『孤臺日錄』을 남긴 정경운에 대한 선비와 의병으로서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구한말과 일제시기에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 출신 李炳憲은, 청나라 말기 康有爲에 의해 주도되는 공양학파의 경학 및 공자교운동을 우리나라에 수용하였던 독보적 인물이다.
There was the saying "the Yŏngnam district is the treasure house of talents and center of Sŏnbi" since the early Joseon Dynasty. Also it said that, among the localities in Yŏngnam, Andong was the best at the left side and Hamyang was the best at the right side of the Nakdong River as the center of Sŏnbi.
Ildu Jeoung Yeo-chang, who was from Hamyang, is the one of 18 Wise in Korea and the Enshrinement of Confucian Scholars. This thesis studied on not only Jeong Yeo-chang but also the people and seowon of Hamyang. Jeong Yeo-chang was a excellent dutiful child, his On Good, Evil, and Heavenly Principle(善惡天理論) was the unique theory of Neo-Confucianism. This study also shed light on Sŏnbies in Jinju related with Nammyeong Cho Sik.
After the middle era of Joseon Dynasty, Hamyang people were discriminated by the central government at the appointment, because of political incidents like the Gichuk-year purge in 1589, Injo Banjeong in 1623 and Musin Revolt in 1728. Therefore, the aspect of Hamyang as the center of Sŏnbi was been losing through the latter area of Joseon Dynasty. But Hamyang had produced many talented Sŏnbies and the great men who tried to overcome a national crisis constantly.
The definite institution, that established and maintained the Confucian order in local area, was not Hyanggyo as national schools but Seowon. Jeong, Yeo-chang is been enshrining mainly in Namgye Seowon, that is the one of the representative Seowon in Gyeongsang-uhdo. In 1566, the name of "Namgye(蘫溪)" was bestowed by King Myeongjong.
Jeong, Kyeong-un(鄭慶雲), who was from Dolbbuk Baekyeon-li Hamyang-eup, wrote 『Godaeillok(孤臺日錄)』 that is vivid record about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hrough this record, we can figure out the situation of that time and real aspects of Sŏnbi and patriotic soldier. In the time from the end of Joseon Dynasty to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Lee Byeong-heon(李炳憲), from Songpyeong-li Byeonggok-myeon Hamyang-gun, was the person who accepted The Confucianism Movement and the study of Confucian classics by Gong Yang School that was led by Kang Yuwei(康有爲) in the end of Qing da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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