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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의 프롤레타리아 농민문학과 ‘만주’ : ‘협화’의 서사와 ‘재발명된 농본주의’ = “Manchuria” and the Agrarian Proletariat Literature of Colonial Korea : Narratives of Cooperation (Kyowa) and “Reinventing Agrar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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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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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만주에 유입된 조선인 농민의 문제를 당시의 식민지 조선의 문학자, 특히 이기영(1895-1984)이나 한설야(1900-?) 등, 식민지 조선의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다하면서, 해방 후에도 북한의 문예정책에서 중요한 지위에 있던 문학자들이 어떤 이미지로 작품화했는지에 대해서 검토했다.
만주국의 총동원 체제의 문제, 혹은 거기서 농민들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루이즈 영(Louise Young)이 지적하는 ‘재발명된 농본주의’(reinventing agrarianism)라는 개념이 유용하다. 만주의, 혹은 만주를 둘러싼 문화 표상에서 많이 강조된 농본주의는 원래 일본 국내에서 주장되어 온 것과 달리, 이민과 농촌 개혁 운동이 결합된 형태로 주장되었고, 또 그것 때문에 농본주의자들은 만주를 이상 달성을 위한 공간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사회정책적인 면에서는 계급차이나 소작제도의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배려되기 시작했고, 자본주의 근대를 반유토피아적인 개념이 아니라 바로 유토피아적인 개념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식민지 조선의 구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작가들은 만주를 둘러싸고 출현하게 된 이러한 새로운 사태에 대해 스스로의 문학활동을 연장시키는 형태로 대처해 나갔다. 본고에서는 이기영의 장편 대지의 아들(1939~40)과 장편 처녀지(1944), 한설야의 일본어 중편 대륙(1939)을 검토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 작품들은 모두 기묘하게도 남녀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되면서 매우 금욕적인 인간상이 이상적인 것으로 강조된다. 그리고 작품 중의 인간관계의 구성이 (이것은 실제 만주국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것인데) 민족이나 계급(농촌의 경우는 지주와 소작인)을 무화해 나가는 형태로 제시되는 것도 특징적이다. 그리고 이들 소설에서는 무엇보다도, 만주라는 공간이 인간을 갱생개조하는 장소라고 강조되고 있다.
조선인 농민은 현실에서도 픽션에서도 조선이라는 고향에서 쫓겨났을 때에는 일본 식민지 정책의 희생자이다. 서사화의 범위가 여기까지라면 종래의 농본주의를 고수함으로써 대립갈등형의 서사구조를 지키면서 저항적인 민족주의를 계속 제시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무대가 만주로 옮겨지면 적어도 허구의 수준에서는 현지 중국인 농민과의 마찰갈등을 잉태하면서도 이상적인 공동체의 건설이라는 유트피아니즘의 체현자로서 그려진다. 만주에 건너간 그러한 조선인의 주체를 정립시키고 있는 것은 고향에서 땅을 빼앗긴 희생자로서의 기억이다.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만주 황야의 어려운 환경도 견딜 수 있게 하는 인내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만주에서의 조선인 농민의 노고가 해방 후의 한국에서도 자주 애환 어린 서사로서 민족주의적으로 재생산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두만강을 건너가면서 ‘식민지적 무의식’은 ‘식민주의적 의식’으로 바뀐다. 이러한 주체 의식의 아이러니컬한 질적 변화는 민족주의의 저항성이 제국의 논리 하에서 순치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식민지 조선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작가들은 이야기의 내용에 있어서 그 이전의 프롤레타리아 농민문학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무대만큼은 조선으로부터 만주로 옮기면서, 그 땅의 조선인 농민이나 지식인들의 어려운 처지를 일상적인 것으로 묘사했으며 그것을 등장인물에게 극복하게 하려고 했다. 또한 실제로 행복한 형태로든 불행한 형태로든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데에 성공했다. 문학 작품에서의 계급관계, 생산관계의 이러한 극복은 과거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전매특허였는데, 그 극복이 제국에 의해서 찬양되는 사태를 맞이하면서 그들은 얼마나 그 통합의 논리를 자각하고 있었을까?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계급이나 민족의 차이가 국가주의에 의해서 위장적으로 무화되어 가는 현실에 직면하면서 그들이 취한 태도가, 조선이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이후에도 그들의 거취에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끼쳐 갔다는 사실이 아닌가 싶다.
In colonial Korean literature, the rise in attention to the plight of farmers and to agrarian issues became prominent in the 1930s. The proletariat literary association, KAPF(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 underwent two major policy shifts by the late 1920s and was at the height of its productivity by this time. Yi Kiyong5 s novel, Hometown (Kohyang) serialized in Choson Ilbo from 1933 to 1934, is considered one of the premier works of agrarian proletariat literature to arise at the time. It is well known that agrarianism became a broad social issue by the 1930s and there arose various social movements calling for a “return to agrarianism”
In the case of colonial Korea, however, the issue of agrarianism was complicated by the fact that it involved not only the general issue of the destruction of the countryside by the infiltration of capital, but the added problem of how to deal with the migration of farmers who had lost their land into the region of Jiandao in Manchuria.
In this paper, I tried to examine how the migration of Korean farmers to Manchuria has been represented in the works of two colonial Korean writers, Yi Kiyong(1895~1984) and Han Solya(1900~?). Yi and Han were both at the forefront of colonial Korean proletariat literary movement, and they continued to play prominent roles in the North Korean literary establishment in the postwar era. In particular, I would like to examine closely how these writers imagined the problem of Korean agrarian migration to Manchuria in their literary works.
The proletariat writer from colonial Korea tried to extend their literary visions into the new context of Manchuria. In this paper, I have limited my discussion to Yi Kiyong's Son of the Earth 『대지의 아들』(1939~40) and Virgin Land『처녀지』(1944) and Han Solya’s Japanese language novella, Continent 『大陛』(1939). All three stories revolve around love triangles between men and women, and the idealized images of stoic characters.
The character construction of these texts (which actually reflect the ideology of Man2houguo at the time) negates all ethnic and class conflicts (including the differences between landowners and tenant farmers). Furthermore, the space of Manchuria is drawn as a space of human reform and rebirth.
In reality, as well as in fiction, the colonial period was a time when Korean farmers were chased out of their lands as the victims of Japanese colonial policies. If the stories ended here, then there may even be a possibility to read a resisting nationalism into them
However, when these stories cross over into the space of Manchuria, at least on the level of fiction, what is emphasized is the establishment of a utopian community even in the face of conflicts with Chinese farmers. What establishes the subjectivity of Koreans who crossed over to Manchuria is the memory of their victimhood as those who lost their land in their hometown. This memory gives them the determination to survive even in the severe conditions of the Manchurian frontiers. The reason that the sufferings of Korean farmers in Manchuria are reproduced even in the post-liberation period, as a representative nationalist narrative is probably because of the lessons that are said to be gained from such determinations. It seems that “colonial unconscious” transforms into an “imperial conscious” in the crossing of the border of the Tumen River. The ironies of such shifts in subjectivities reveal the process in which the possibilities of nationalist resistance are already subsumed by the logic of empire.
In these literary works of Manchurian reclamation by colonial Korean writers, it may at first appear that these writers wrote about subject matters similar to what they had been writing about in their agrarian fiction set in Korea with only the stage shifted from Korea to Manchuria. Stories of overcoming contradictions of class and production relations have been common to proletariat literary works in the past, but when such an overcoming occurs in the guise of praising the logic of empire, one must wonder how much of a continuity in logic these writers were envisioning. What we may be able to ascertain here is that in the context of empire in which ethnic and class differences had been repressed in the name of empire, the positions these writers took during the colonial period continued to haunt their private and public courses long after the end of colonial 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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