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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 김석윤을 통해 보는 근대 제주인의 사상적 섭렵
저자
한금순 (제주대학교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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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3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83-323(41쪽)
KCI 피인용횟수
5
제공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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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윤은 제주유림의 유학자이면서 출가한 승려이다. 출가 이후 제주의병항쟁에서 무기제조와 창의에 앞장서고 통고사를 작성하였으며 의병장을 역임하는 등의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석윤의 생애를 통해 유학자로서의 의병활동, 승려로서의 불교활동 그리고 항일운동에 참여하는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사상적 편력과 실천 양상은 곧 시대적 상황에 적극 참여한 제주 지식인의 사상적 고민과 실천의 면모라 하겠다. 김석윤은 출가한 승려이면서도 서재의 훈장을 하면서 제주의병항쟁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항일이력으로 일제의 감시로 인해 제주도를 떠나 용화사 선원을 근거지로 참선을 하였다. 제주도를 떠나 있으면서도 관음사 활동에 힘을 보태었으며 법정사 항일운동의 인적 토대 마련에도 관여한다. 법정사 항일운동 주역인 김연일과 강창규 방동화는 모두 김석윤과 연관이 있는 인물들이다. 193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제주도에서 활동을 재개하면서 일제의 사찰령을 피해 재단법인 조선불교 중앙 선리참구원의 제1 지방분원으로 제주선원을 창립하였고, 1942년 제주도의 미륵교의 항일운동에도 김석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김석윤은 일제강점기 내내 일제의 감시대상이었다. 김석윤은 미륵교에도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김석윤은 다양한 사상에의 편력을 보여준다. 유학자이면서 출가한 승려이고, 승려이면서 다시 서재의 훈장을 하고, 미륵교를 신봉하는 면과 함께 선원에서의 참선 활동, 그리고 사찰의 주지 활동 등으로 생애를 꾸렸다. 이러한 김석윤의 모습은 구한말 이후 정치적 혼란만이 아니라 사상적으로 다양했던 우리나라 사회상과 일치하는 지식인의 갈등의 일면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석윤의 다양한 사상적 편력은 곧 근대 우리나라 지식인의 고민의 일면이며, 시대적 어려움 속에서도 의지를 실천해내는 지식인의 책임이었다고 보인다.
Kim Seok-Yoon was Confucianist and Buddhist monk in Jeju. After entering the Buddhist priesthood, he took a leading position in organizing the resistance group with armament and declaring the antagonism against Japanese imperialism. The lifetime of Kim Seok-Yoon shows the aspect of political behaviors by intellectuals in Jeju, which includes ideological agony and active engagement into periodical condition. Kim Seok-Yoon performed a central role of anti-Japanese resistance in Jeju, while he was involved in the Confucian education at town even after having already entered the Buddist priesthood. Owing to his career of engaging himself in anti-Japanese movement, he was under unceasing surveillance by Japanese government. Therefore, he left Jeju-do for practicing the meditation based on Seon-won of Yong-Hwa-sa in Tong-Yeong. However, even though he left from Jeju, he not only supported the activities in Gwaneum-sa, but also got involved in the establishment of human resources at Beop-Jeong-sa for carrying out the anti-Japanese movement. The fact Kim Seok-Yoon had close relation with Kim Yeon-Il, Kang Chang-Gyu, and Bang Dong-Hwa, who took the leading role of anti-Japanese movement at Beop-Jeong-sa, supports his involvement in Jeju. By the late 1930's, he reactivated the resistance movement in Jeju. For avoiding the restrictions of 'Sachalryeong' that was temple ordinance legislated by Japanese imperialism, he established Jeju-Seonwon as the first regional branch of Central Seonri-Chamgu-won of Choseon Buddhist Foundation. The influence of Kim Seok-Yoon also reached the anti-Japanese resistance of Mireuk-gyo in Jeju, in 1942. Because of his huge influence on anti-Japanese movement, he was under constant surveillance of Japanese government during colonial periods. The link between Kim Seok-Yoon and Mireuk-gyo proves his interest on Mireuk faith. The ideological career of Kim Seok-Yoon is quite diverse ranging from Confucianism and Buddism to Mireuk faith. Considering the ideological career of Kim Seok-Yoon that ranges from the Confucianist engagement in education to the Buddhist priesthood as the chief of the temple, his lifetime was composed of transboundary practices beyond religious difference. This ideological variation of Kim Seok-Yoon implicates the intellectual affliction corresponding to the societal aspect of Korea in the late 19th century that was the chaotic period filled with political dissonance and ideological division. In addition, his ideological variation was practical consequence of the intellectual responsibility to cope with these periodical difficulties.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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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후보 |
2015-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기타)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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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44 | 0.44 | 0.47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53 | 0.48 | 1.03 | 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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