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1920~30년대 허영호의 현실인식과 근대불교학
저자
조명제 (신라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0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37-170(34쪽)
KCI 피인용횟수
7
제공처
소장기관
허영호는 부산 동래에서 태어나 동래 동명학교 고등과와 범어사 지방 학림을 졸업하였다. 그는 10대 시절에 이러한 근대 교육을 경험하면서 식민지 지배라는 민족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후 그는 20대 청년시절을 지역의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다양 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먼저 그는 동래 지역에서 일어난 3·1 운동에 다 른 범어사 승려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1년형의 옥고를 치르고 나온 후에 다양한 근대적인 이념이 수용 되고 식민지 조선사회의 격동적인 변화가 모색되던 20대 전반을 보내면 서 내면의 고민과 갈등을 겪으며 몇 년간 사회 활동에서 한 발 물러서 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동래 지역의 사회운 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동래청년연맹, 신간회 동래지회 등을 설립하고 집행부의 주요 간부로 활동하였다. 한편, 그는 1926년에 문예잡지『평범』을 창간하여 발행인 겸 편집인으 로서 대중용 잡지 간행에 의욕을 가지기도 하였다. 『평범』은 일반 민중 을 대상으로 한 문예 글이 가장 많이 실렸던 만큼 일반 민중을 주된 독 자층으로 겨냥한 잡지였다. 허영호가 동래지역에서 잡지 간행을 시도하 였던 것은 지역의 사회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물론 그의 잡지 창 간은 1920년대에 잡지가 시대 담론을 주도하였고, 다양한 잡지가 창간되 고 유행하였던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제한된 독자층, 광고와 판매의 한계 등으로 인한 재정난으로 잡지 경영은 3호로 마감되었다. 더 욱이 허영호 1인 잡지라는 성격은 그 자신이 근대적인 사상과 문화 흐 름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시의 잡지 문화를 따라가 거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하였던 한계를 애초 부터 가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잡지 간행의 실패라는 경험과 동래 지역의 사회운동이 침체되면서 허 영호는 지역 사회운동을 접고 1929년에 일본 다이쇼 대학 불교학과로 유학을 떠나 근대불교학의 수용과 불교 근대화의 길로 나아갔다. 그는 일본 유학을 통해 산스크리트어, 빠알리어 등을 배워 인도 불전을 해독 할 수 있는 언어학적, 문헌학적 지식에 대한 갈증을 해결하였다. 이후 그가 근대불교학의 성과로 제시한 것은 거의 대부분 반야부 경전을 비롯한 인도 불교의 원전과 한역 대승경전에 대한 번역 작업이었다. 그의 번역은 이전에 단순히 어학적인 전환 수준에 그친 번역이 아니라 근대 불교학의 성과를 반영한 것이고 근대불교의 대중화 차원에서 의의가 있 다고 하겠다. 또한 그는 불교의 근대화를 위해 중앙 불교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 였으며, 근대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불 교 근대화를 위한 노력은 교단 내외의 상황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 가 놓여 있었고, 1937년 이후 일제에 협력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면서 보 수적,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와 같이 그의 불교 근대화의 길이 결 국 굴절된 모습을 보였던 것은 그가 추구한 근대불교학이 가진 한계와 관련된다.
더보기Heo, Yeong-Ho was a Buddhist scholar from Dongrae, Busan and dedicated his life to leading social movements and modernizing Buddhism. When he was in the 20s, he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social movements in Dongrae area. He participated in the 3․1 Movement and was confined in prison for a year. Later, he established Dongrae Youth Federation and Singanhoe Dongrae Office to act as one of the major leaders. In the mean time, he founded 『Pyeongbeom』, a literary magazine, in 1926 to publish this public magazine as a publisher and editor. He did this because in the 1920s magazines led the social discourse and various magazines were published and popular across Korea. However, he was only able to publish three issues due to financial issues. The underlying reasons were limited reader group and advertising opportunities. This failure was also because he did not have the capacity to lead the local culture as he did not have profound insights in modern ideologies and cultural trends. As his magazine failed and social movements in Dongrae entered stagnant stage, Heo went to Japan in 1929 to study Buddhism at Daisho University. While studying in Japan, he learned the Sanskrit language and the Pali language to quench his thirst for linguistic and literary knowledge to interpret Buddhist scriptures written in Indian. Later, he contributed to Modern Buddhism mostly by translating Banyabu Scriptures, the original text of Indian Buddhism, and Mahayana Sutras into Korean. Also, he promoted various activities in the Central Buddhist Sector to modernize Buddhism and suggested directions for the development of Buddhism. However, his efforts were essentially interrupted by social circumstances surrounding the Buddhist Sector, and he turned to cooperating with Japan in 1937. His cooperation with Japan was related to Japan‘s coercive deployment in war and cooperation with its imperial rule over Joseon, of course.
더보기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후보 |
2015-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기타)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44 | 0.44 | 0.47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53 | 0.48 | 1.03 | 0.12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