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와 저항: 한국 자유주의의 두 얼굴
본 연구는 자유주의를 ‘어떤 추상적인 가치들의 고정된 체계’가 아니라 ‘역사적 이념운동’으로 보는 입장에 서서, 정부수립 후 한국 사회에서 전개된 자유주의의 역사적 성격을 밝혀보려는 시도이다. 한국에서 자유주의는 그것이 도입된 역사적 계기와 배경 또 그것을 작동시킨 정치사회적 특성을 반영함으로써 서구 자유주의와 그 전개 양상이나 과정, 내용 면에서 중요한 차이를 보였는데, 특히 나는 그것이 공식 지배이념으로 제도화되었을 뿐 아니라 동시에 그 ‘지배’와 ‘제도’에 맞서는 저항 이념으로 작동하기도 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한국에서 자유주의는,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저항이념으로서 출현하여 점차 대다수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지지와 호응을 얻고 마침내 공식 지배이념의 자리를 획득하는, 이념의 장기간에 걸친 내재적 발전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미국이라는 외부적 힘의 영향하에 위로부터 일거에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건국헌법에 제도화된 공식 지배이념으로서의 자유주의는, 그 도입 배경이나 의도와 무관하게, 상당히 진보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 핵심은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의 결합을 지향한 것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는 자유주의의 초기 제도화에 끼친 미군정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건국헌법의 자유주의가 미국식 자유주의와 구별되게 갖는 특성이다. 국가 수립 단계에서 제도화된 한국 자유주의의 이러한 특성을 나는, ‘제도형성자’로서 미국의 영향이라기보다, 북한 공산정권과 대치 상태에서 국가형성을 완수해야 했던 당시 국내 정세 및 그에 반응하고 대처하는 정치 세력들의 갈등과 타협의 결과로 해석했다.
건국헌법의 자유주의 이념은 이후 독재정권 하에서 헌법 개정의 방식으로 중대한 변화와 굴절을 겪게 되었다. 이제 헌법 이념으로서 자유주의는, 단순히 현실 규정력을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왜곡된 채 현실의 모순을 합리화하는 부정적 기능을 행사했다. 한국에서 자유주의를 반공주의와 동일시해온 기존의 통념은 공식 지배이념으로서 자유주의의 이러한 측면에 주목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일단 공식 지배이념으로 제도화된 자유주의는 그 외재적 가치만을 필요로 했던 정권의 의도를 넘어 자유주의적 원리의 실질적 구현에 대한 요구를 광범위하게 촉발시켰다. 본 연구에서 확인되듯이,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하의 반(反)독재 민주화운동 이념은 건국헌법이 공식 지배이념으로서 제도화했던 자유주의와 그것이 이후 헌법 개정을 거듭하는 동안 겪게 되는 변화, 굴절에 대응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다시 말해, 건국헌법의 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보장하는 동시에 경제적 균등의 실현을 지향하는 형태로 제도화됨으로써 이후 정치현실이 법규범과 괴리를 보이며 전개되었을 때, 다름 아닌 자유주의가 그것도 특정한 내용과 방향을 갖춘 채 저항이념으로서 작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본 연구는 저항이념으로서 작동한 한국 자유주의의 구체적인 내용과 성격을, 1970년대까지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주요 비판적 지식인들의 이념적 지향 내지 사상적 기반을 분석함으로써 살펴보았다. 저항이념으로서의 한국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의 결합’을 추구하는, ‘민중’의 해방 이념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는데, 나는 이것이 서구 자유주의 전통과 대비되는 한국 자유주의의 ‘역사적’ 성격을 함축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서론 ‘자유주의’와 자유주의 ‘연구’
제1부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과 계보
제2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실상과 허상
제3부 민주화운동과 자유주의
결론 한국 자유주의의 역사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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