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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처용설화와 중국 門神文化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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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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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13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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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처용랑망해사」조를 분석한 결과 처용은 고등종교인 불교의 영향을 받았으나 疫病을 쫓는 辟邪의 능력을 지닌 驅疫神과 門神의 성향을 지닌 민속에 속하는 존재였다. 신라하대는 각종 자연재해로 오랫동안 기근과 질병에 시달렸으며 경문왕대까지도 기근과 전염병이 심각하였다. 역병은 두창으로 불리우며 전염성이 강하고 치사율이 매우 높은 질병으로서 당시 동아시아 전반에 걸쳐 크게 유행했다. 이 시기에 중국에서는 각종 逐疫神과 門神들의 신화가 만들어져 유포되었던 것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다. 처용은 疫神을 쫓은 문신설화로 헌강왕대에 나타났는데, 이전 시대까지 극성을 부리던 재해와 전염병이 헌강왕대에 이르러 잦아들면서 조금이나마 사회가 안정되던 것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설화로 보인다. 동아시아를 비롯하여 신라사회를 휩쓴 전염병은 민간에서 자연신에 가깝게 신앙되던 존재를 문신신화로 새롭게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비록 해당 사회에 큰 고통을 야기했지만 이는 활발한 국제교역과 교류의 상징이기도 했다. 개운포는 헌강왕과 동해의 호국용이 만나기 위한 장소이기도 했지만 특별한 방역체계가 없던 시절에 타국과 왕래하면서 옮길 수 있는 각종 질병과 전염병이 전파되는 통로이기도했기에 이를 물리칠 힘을 가진 문신신화가 탄생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던 것이다. 한편 처용의 서역인 이미지의 근거는 『악학궤범』의 처용상인데 이는 실존하는 처용의 모습을 반영했다기보다는 고려시대 儺禮행사의 하나로 전승되어온 處容舞의 이미지에 근거한 것으로 추정된다. 나례행사는 새해에 들어 나쁜 것을 몰아내는 驅逐의 의미가 있던 것으로 辟邪가 기본이 된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벽사의 이미지는 공포스러운 모습의 큰 눈에 큰 코와 입 등으로 묘사되었으며 고대 무덤에서는 서역인 力士나 문지기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므로 『악학궤범』의 처용상은 이러한 辟邪神의 모습을 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8~9세기 동아시아와 신라사회에서는 전염병이 유행하였으며 헌강왕대의 처용은 특정 인물이기 보다는 당시 사회적 상황에 의해 등장한 구축 및 문신신화로서 중국당 및 서역 등 동아시아의 나라들과 교류한 흔적이며 문화흐름의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더보기According to Samgukyusa 「CheoyongryangManghaesa」, Cheoyong was affected by Buddhism, a high religion, but he belonged to the folklore with an inclination of a deity chasing the plague and a door deity who possessed the ability of a Byeoksa that chasing the plague. During the late Silla period, people suffered from famine and diseases for a long time due to various natural disasters, and those problems were really serious even until the era of King Gyeongmun. The epidemic called smallpox was a disease which was highly contagious and lethal and at that time, it was widely prevalent throughout East Asia. During the period, various myths of various deities chasing the plague and door deities apparently were created and circulated in China. In addition, Cheoyong appeared during the era of King Heongang in a story of a door deity chasing the plague deity, which probably reflected how the society was becoming stable somewhat as disasters and infectious diseases which had been rampant until the previous era began to die down under King Heongang. Infectious diseases which swept the Silla society, as well as Ease Asia, made a being which was believed almost like natural deities among people newly reborn as the door god myth. It caused great pain in the society, but it also was a symbol of active international trade and exchange.Gaeunpo was a place for King Heongang and the guardian dragon of the Ease Sea to meet, but it also was a channel to spread a variety of diseases and infectious diseases which could be transmitted while coming to and from foreign nations during t he p eriod w hen t here was n o special q uarantine system. In consequence, Gaeunpo was a good place for the myth of the door deity with the force to repel them to be created. Until now, Cheoyong’s image of a Xiyu person has been strong due to his image described in Akhakgwebeom. It is presumed that the image was based on that of Cheoyong Dance which had been handed down as part of the Narye event, instead of reflecting the appearance of real Cheoyong. The Narye eventmeant to drive out bad things in the New Year and its basis was to defeat evil energy. In Ease Asia, including China, Byeoksa was described as a horror figure with large eyes, nose and mouth, and it appeared in ancient tombs as a Xiyuman of great strength or a gatekeeper. Therefore, the Cheoyong image in Akhakgwebeom apparently materialized the appearance of such a Byeoksa deity. Epidemics were prevalent in East Asia and Silla during the period of the 8th and 9th centuries, and Cheoyon gunder King Heongang, as amythof driving out the evilenergy and a door deity which appeared due to social circumstances at that time, was a trace of exchange with East Asian countries, such as Tang Dynasty in China and Xiyu, and part of cultural flow, rather than as pecific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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