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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역사(歷史) 의식(意識) -시문학(詩文學)을 중심으로- = Chungeum`s historical awar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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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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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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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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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17(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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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김상헌(1570∼1652)은 정계에서 당파적으로는 서인에 속해있으면서, 인조반정 이후는 功西派에 대립하여 淸西派를 이끄는 領袖로 활동하며 정국을 이끌고, 학문적으로 기호학파의 성향을 띠고 성리학의 首長으로 당시 학계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청음이 살았던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중반 동아시아는 국제 질서가 재편된 격변의 시대였다. 김상헌은 선조 대에 태어나 조선 초기부터 형성된 당파의 당쟁기와 임진왜란을 거쳐, 인조조의 반정, 이괄의 난,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조선조의 커다란 사건이 연속되었던 시기에 국내·외적으로 가장 험난한 격동기를 온몸으로 맞서 확고한 소신과 행보로 사회적·정치적인 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간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한편 광해군 대·인조 대를 거치며 兩亂을 통해 主和를 주장하는 최명길과대치하여 끝까지 斥和를 관철했던 행적으로 인한 척화신으로서 자리매김은학문적 성과의 평가가 소홀히 될 수 있으나, 일찍이 正祖는 『弘齋全書』에서청음의 節義와 함께 학문과 문장을 높이 평가한 바 있으며, 또한 40권 16책의 방대한 분량의 文集이 정치적 위상과 더불어 학문적 卓見도 충분히 입증하고 있으니, 뚜렷한 소신을 지니고 학문적 이념을 실천하고자했던 실천가로서 청음은 政·學두 방면에서 위상이 확고했던 것이다. 그는 出仕이후 進退를 거듭하였으나 평생 관직에 종사하며, 나라의 危難이 있을 때마다 榮辱을 함께 하였다. 國難이 있을 때마다 보여준 일련의 대응에서 그의 신념은 그대로 드러난다. 때로는 자기 혼자 명예를 구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으나, 청나라 수도 심양으로 압송된 이후 나타난 행적으로 오해를 풀기도 한다. 論者는 청음의 역사의식을 그가 남긴 문학 작품 가운데 詩作品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의 역사의식 전반에 흐르는 의식 체계는 그의 학문세계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性理學的實踐儒學으로서 도학의 특징은 義理와 節義를 중시하며 당시 儒風을 주도하는데 청음은 이런 성리학적 사고체계를 기반으로 현실을 인식하였던 것이며, 일생동안 자신의 학문적 신념에 진실하게 처신하며, 私利보다 公道를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지식인의 참 면모를 보여주었다.
더보기Chungeum, Kim sanghyun(1570∼1652 A.D) belonged to Seoin faction in the political world, leading political situation as a leader of the faction, Chungseo against Gongseo after enthroning the King, In-jo. In addition, he took lead the academic world as the head of Neo-Confucianism with an inclination toward Giho School in those days. East Asia where Chungeum lived between late 16th century and mid- 17th century was caught in turbulent times when international order was reorganized. Born in time of the king Seonjo`s rule, he was a character representative of an era leaving his noticeable footprints in social and political aspects with firm conviction and step, getting involved in the following big incidents: political party strife formed from the early years of Chosun dynasty, Japanese Invasion of Korea, enthronement of the king, Injo, Yi Gwal`s rebellion, the Chinese Invasion of Chosun, the Manchu war, and so on. Meanwhile, he insisted the rejection of peace to the end, tearing the surrender documents against Choi, Myung-Gil who maintained coinage in the vortex of two wars, Japanese Invasion of Korea and the Manchu war, during time of rules of kings, Kwanghye and Injo. Due to strong awareness of the rejection of peace, he might be evaluated with disregard in academic achievement, but the king Jeong-jo ever rated high about his studies and sentences along with his integrity early in the book, Hongjaejeonseo. In addition to this, a massive amount of collection of works, forty volumes and sixteen books proving both political standing and outstanding idea fully, Chungeum stood firm in the fields of both politics and study as a doer who tried to fulfill academic idea with clear conviction. Although he repeated resigning and remaining in office since going into government service, he was engaged in government service all his life. And he experienced honor and disgrace on his country on being in jeopardy. His belief emerges from a set of actions he showed every time his nation was in a great crisis. Sometimes he was criticized because he looked for honor by himself, but his real intention was acknowledged through his deeds since he was sent to the capital of Qing dynasty, Simyang, under escort. The writer examined Chungeum`s historical awareness on the basis of the poetical composition among his literary works he left. His historical awareness system was not irrelevant to his world of literary. Ethics as practical confucianism was characterized by loyalty and integrity, leading confucian tradition at that time. Chungeum realized reality on the basis of this confucian way of thinking. He made true appearance of an intellectual who tried to practice the path of justice rather than self-interest, behaving himself sincerely to his academic belief throughout hi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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