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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츄샤 이야기-<부활>의 대중서사와 그 문화 변용- = The Story of ‘Katyusha’-Popular Narrative of (Tolstoy’s) Resurrection and its Accultu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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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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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24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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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1910년대 이후 톨스토이의 <부활>이 연극과 소설, 유성기음반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 카츄샤를 중심으로 하는 대중서사들로 재/생산되었던 양상을 살펴보았다. <부활>은 1914년 11월 최남선이 발행한 『청춘』 제2호에 줄거리가 처음 요약 소개되었다. 그리고 이후 박현환의 축약 재구성본인 <해당화>가 1918년 신문관에서 출간되었고, 춘계생(春溪生)의 완역이 1922년에서 1923년 사이에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다. 한편 속편인 이서구의 <부활 후의 카츄샤>와 흑조생(黑鳥生)의 <부활한 카쥬샤>가, 각각 1926년에 『매일신보』에 연재되었고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하지만 <부활>이 대중적인 유명세를 얻는 데 더 큰 기여를 한 것은 소설보다 공연이었다. 일찍이 1915년에 시마무라 호게츠(島村抱月)의 동경 예술좌가 내한하여 <카츄샤>를 공연하여 화제를 모았었는데, 신파극단 예성좌가 바로 다음해에 <카츄샤>를 공연함으로써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리고 1923년에는 토월회에 의해 <카츄샤>가 신극으로 다시 공연되면서, 이후 한국연극의 대표적인 번역극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뿐만 아니라 당시 극중가로 삽입된 <카츄샤의 노래>는 예성좌 공연 당시부터 큰 인기를 끌며 유성기음반으로도 제작되었다.
<부활>은 원전 자체보다도, 재구성 번역 및 속편과 연극, 유행가요 등을 통해 재/생산되는 대중서사를 중심으로 하여 주로 수용되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부활>의 대중서사는 카츄샤를 중심으로 재/생산되었다. 춘계생의 완역만 그 제목이 <부활>이었으며, 박현환 번역은 카츄샤를 은유하는 ‘해당화’에다가 부제 역시 ‘가쥬샤(賈珠謝) 애화’였다. 속편의 제목도 모두 ‘부활 후의 카츄샤’와 ‘부활한 카쥬샤’였다. 연극 <부활>의 제목도 ‘카츄샤’였으며, 극중가의 제목 역시 ‘카츄샤의 노래’였다.
연극 <카츄샤>는 제목 그대로 카츄샤의 사랑과 실연(失戀), 그리고 타락과 도덕적 개량을 중심으로 하는 멜로드라마로 각색되었다. 당시 현모양처로서 근대 가정이 요구하는 미덕에 엄격할 정도로 충실했던 신파극의 여주인공들과 달리, 사랑하는 남성에게 순진하게 자신의 순결을 내주고 그 결과 버림받아 창녀로까지 타락, 살인누명까지 쓰고 법정에 섰던 카츄샤의 기구한 운명 오히려 관객/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여기에는 카츄샤라는 등장인물 자체의 매력적인 섹슈얼리티와 함께, 그녀가 결국은 스스로를 개량시켰으나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네플류도프를 위해 청혼을 거절하고 결국 이별을 결심한다는 애틋한 순애보가 관객/대중에게 강하게 어필했다.
극중가 <카츄샤의 노래> 가사는 카츄샤 자신의 심경과 함께 카츄샤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대중적 정서를 반영하고 있었다. 카츄샤와 네플류도프가 비록 타인과 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고 해도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자의적으로 이별을 선택한다는 결말은 기존의 서사적 관습에서 볼 때 사뭇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낯설음 또는 기괴함은 <부활>의 속편에서 두 사람을 결국 재결합시킴으로써 교정되었다.
카츄샤가 네플류도프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고 시베리아에 남기로 결심한 것은 물론 창녀였던 자신이 네플류도프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녀 자신이 네플류도프와의 결혼이 아닌 시몬손과의 결혼을 통해 평생 죄수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카츄샤의 입장에서 볼 때 네플류도프와의 이별은 자기희생이 아니라 자기완성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카츄샤가 안락한 가정을 포기하고 자기 자신과 사회를 주체적으로 선택한다는 결말은 그 자체가 대중서사화 되기에 아직 낯선 것이었다. 카츄샤의 애처로움은 사실상 당시 카츄샤에 대한 대중 자신의 정서가 투영된 것이었다.
This study examined the reproduction and the acculturation of (Tolstoy’s) Resurrection as a popular narrative centered on ‘Katyusha’ through mass media, such as plays, novels and gramophone records, after the 1910s. A summary of Resurrection was initially introduced in the second edition of Cheongchun, issued by Nam-sun Choi in November of 1914. Afterward, the abridged re-composed edition Haedanghwa (Sweet brier) was published by Shinmungwan in 1918, with the completed translation serially published in Maeil-Shinbo between 1922 and 1923. On the other hand, the sequels Katyusha after Resurrection by Seo-gu Lee and Resurrected Katyusha by Heukjoseng were published in Maeil-Shinbo in 1926 and were also released as books. However, Resurrection did not gain public popularity through books, but rather through performances. Hogetu Shimamura(島村抱月) from Tokyo performed Resurrection in 1915 to attract public interest. In the following year, Katyusha performed by the Shinpakuk(新派劇, The New Trend Theater) company (a kind of melodrama group) Yeseongjwa(藝星座) drew international attention. In 1923, Katyusha was re-performed as Shinkuk(新劇, The New Theater) by Towolhwe(土月會) to be later established as a representative foreign play repertoire of Korean drama. Furthermore, the theater music Katyusha’s Song became a hit from the Yeseongjwa performance and was produced as a gramophone record.
Resurrection was mostly received by the public as a narrative reproduced through re-composed translations, sequels, plays and as pop music. To be more accurate, the popular narrative of Resurrection was reproduced while being centered on ‘Katyusha’. Only the complete translation of Chungae-saeng was entitled Resurrection; the translation by Hyun-hwan Park was entitled ‘Haedanghwa’ (Sweet brier) as a metaphor for ‘Katyusha’ with the subtitle established as the ‘Sad Story of Katyusha’. The sequels were also entitled ‘Katyusha after Resurrection’ and ‘Resurrected Katyusha’. Plays were also performed based on the title ‘Katyusha’ with the theater music of ‘Katyusha’s Song’.
The play Katyusha was adapted as a melodrama centered on love, heartbreak, corruption and the moral improvement of Katyusha. Unlike the heroines of new plays at the time who remained strictly faithful to the virtues requested by modern families as a ‘good wife and wise mother’, Katyusha deeply impressed the public with her strange fate of being abandoned after losing her virginity to a man she loved and then becoming a prostitute and even being falsely accused of murder in court. Along with the charming sexuality of the character, the audience was strongly attracted to Katyusha’s ardent and pure love for Nekhlyudov, which is shown in her decision to reject his marriage proposal despite the fact that she succeeded in achieving self-improvement.
Katyusha’s Song reflects the emotions felt by Katyusha as well as the public’s pity toward Katyusha. A story ending with the voluntary breakup of a couple much in love - even if the two parted to live a life of service for others and the society - seemed rather unfamiliar when compared with narrative customs existing at the time. Such unfamiliarity or bizarreness was straightened out when the two characters reunited in the sequel of Resurrection.
Katyusha rejected Nekhlyudov’s proposal and decided to remain in Siberia because she believed that as a prostitute, she was not good enough for someone like Nekhlyudov. However, the breakup was more important for her because she was determined to serve convicts for the rest of her life by marrying Simonsson. For Katyusha, parting with Nekhlyudov was not an act of self-sacrifice but rather a way to complete herself. Nonetheless, Katyusha’s decision to choose herself and society and give up on having a loving family was an unfamiliar narrative for the public. In fact, the pity felt toward Katyusha projects the public’s emotions toward the heroine at the time.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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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2006-07-12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Institute of Korean Studies -> Center for Korean Studies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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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75 | 0.75 | 0.68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2 | 0.59 | 1.314 | 0.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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