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실의 안태와 가봉 의식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5
작성언어
-주제어
KDC
200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87-218(32쪽)
제공처
본 연구는 조선시대 왕실의 안태 의식이 지닌 종교적 의미, 태실 조성의 어려움, 그리고 태실의 금역과 토지 이용의 갈등 관계를 고찰하는 것이다. 조선 왕실의태실 조성은 프레이저가 말한 감염의 원리에 기초한 외재적 영혼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안태는 새로 태어난 아기의 몸과 연결되었던 태를 통해 자신을표상하는 기술이었다. 아기는 태가 되고, 태는 석물이 되어 존재하였다. 역으로석물의 조성과 보호를 통해 태를 보호하고, 태를 보호함으로써 아기의 생명을 보호하고 관리하였다. 한 생명의 몸은 객관화된 대상, 즉 태와 석물을 통해 관리되었다. 상징의 훼손은 그것이 표상하는 대상의 훼손이다. 상징의 충만은 그것이 표상하는대상의 충만이었다. 그러므로 안태는 아기의 일부였던 태를 통해 아기를 대상화하고 구상화하는 상징의 창조 행위였다. 여기서 태는 불안하고 소멸될 것이기 때문에석물을 통해 영구한 대상으로 전환하였다. 태의 물상화와 공간의 점유가 명확하게드러나지만 태를 위한 의례의 발달은 미흡하였다. 태실을 조성할 때 태신(胎神)은제례의 대상이 되지만 이후 태실 관련 의례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를 항아리에 넣어 길지에 매장하는 관습은 왕실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전승된 민간 신앙이었다. 이러한 민간신앙이 왕실로 옮겨지면서 권력과연관되어 전개되었다. 왕실의 권위를 보여주는 것일 뿐 아니라 왕실의 권력으로가능한 태실의 조성이 이루어졌다. 길지에 대한 정보와 선택, 금역 조성, 석함, 석비의 사용 등은 왕실의 권력으로 가능하였다. 그리고 석물의 가봉을 통해 즉위한 왕의 무궁한 권위를 표상하였다. 조선후기 왕실의 권력으로도 그 상징화를지속하긴 버거웠다. 상징은 권력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냥 두면 사라질태를 지상에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은 권력이다. 주변 200보, 300보에 경작을막으면서 태실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국가 권력의 힘이다. 경작을 원하는 주변 백성들은 침범하고 훼손하였다. 영조는 궁궐 내에 태실 조성을 명하였다. 정조대이후 왕자녀 중 원자나 원손만이 국가의 태실 조성 대상이 될 정도로 태실의조성은 위축되었다. 그러므로 태실은 중앙과 지방, 국가와 백성의 관계 속에서이해해야 할 상징의 사회사이다.
This study examines the religious significance of the royal family’s ceremonies of placenta chambers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creation of the royal family’s placenta chambers can be understood as a process of creating an external soul based on the principle of infection. The rite of burying placenta was a technique that represented oneself through a form connected to the body of a newborn baby. A baby became the placenta, and the placenta became the stone. Conversely, the composition and protection of stones protected the fetus, and the life of the baby was protected and managed by protecting the fetus.
The body of a life was managed through objectified objects, namely the placenta and stonework. The damage to the symbol was the damage to the object it represents. The filling of the symbol was the filling of the object it represented. Therefore, Burying placenta was the act of creating symbols that objectify and conceive a baby through a form that was part of a baby. Here, the fetus was converted to a permanent object through stone objects because it would be unstable and extinguished.
The custom of putting fetus in a jar and burying it in a long time ago was not limited to the royal family, but a folk belief that has been handed down for a long time. As these folk beliefs were transferred to the royal family, they developed in connection with power. In addition to showing the authority of the royal family, the creation of a possible royal family was made with the power of the royal family. Information and selection on propitious site, stone boxes, and the use of stone monuments were possible with the power of the royal family.
In addition, the endless authority of the crowned king was represented through the rite of setting up additimal stones. It was difficult to continue the symbolization even with the power of the royal family in the late Joseon Dynasty. It was the power of the state that could protect the royal chambers while preventing cultivation in the surrounding 200 and 300 steps. But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number of people trying to cultivate the land around the royal chamber gradually increased. The surrounding people who wanted to cultivate invaded and damaged them. After the reign of King Jeongjo, the composition of the royal family was reduced to the extent that only the atom or the original son of the prince created a public family. Therefore, the ritual of burying of placenta was a symbolic social history that must be understood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entral and local regions, the state and the people.
분석정보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 이용·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 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학술데이터본부 정광훈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인 이용ㆍ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