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문명담론과 독립협회의 정치체제, 그리고 러젠드르의 전제론 = Politics of Contradictory Constitutional Discourse During the Year of 1898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7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발행기관 URL
수록면
199-227(29쪽)
KCI 피인용횟수
2
DOI식별코드
제공처
한국의 근대 전환기는 전통과 외래문명이 충돌하고 지식과 문화를 상호 전파하는 접촉의 시대였다. 문명개화론의 세례를 받은 독립협회 지식인들은 이른바 문명국의 정치체제를 기획·구축하기 위해 서양의 정치체제를 수용하였다. 그리고 그 작업은 ‘입헌’과 ‘민권’에 강조점이 두어졌다. 본 연구에서는 ‘문명담론’과 ‘절대군주론’이라는 키워드로 1898년도 독립협회운동과 ‘제국의 개혁’에 대해 살펴보았다. 필자는 ‘문명담론’이라는 시각으로 120여년 독립협회의 정치담론과 입헌정체, 그리고 그에 대한 대항담론으로 절대군주제론을 분석하였다. 독립협회 지식인들은 서양인들이 지적한 조선정치의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공감하였고, 그들과 동일한 문명담론에 의거하여 정치현실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서양인들이 조선을 표상하는 다양한 언표들, ‘무능과 부패의 정부’, ‘전제왕권’, ‘수탈을 일삼는 지배층’, ‘절대 빈곤에 처해 있는 백성들’ 등이 그대로 개화파지식인들에게 전이되어 재생산되었다. 이제 조선을 구하는 길은 ‘입헌’과 ‘민권’으로 정리되었다. 서울을 뜨겁게 달구었던 1898년도 ‘제국의 개혁’은 바로 이 두 가지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독립협회와 군주권을 옹호하고자 한 집권층 간의 대결이었다. 물론 양자 모두 ‘부국강병한 독립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체제와 담론, 실현 주체와 역량, 속도에서 차이가 있었다. 고종의 궁내부고문 러젠드르(C.R. LeGendre)는 과거 일본에서 체험했던 자유민권운동의 현실과 파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윤치호 등 독립협회 회원들을 급진적으로 나가지 못하게 설득하거나 ‘자문기구’로서의 중추원 개편안 등을 만들어 타협을 유도하였다. 또한 서구 절대군주제의 장점 등을 논리정연에게 주장하여 고종의 황제권을 수호하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1898년도 독립협회와 정부 간의 대결은 ‘상원’ 대 ‘자문기구’로 정리할 수 있으며, 협상이 실패하고, 군주권이 훼손당할 처지에 놓이자 고종은 무력 탄압이라는 강수를 두었다. 고종이 입헌과 민권을 주장하는 독립협회를 탄압할 수 있었던 것은 절대군주제가 ‘야만’과 ‘후진’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문명개화와 발전을 추동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정치체제이자 우리 정치문화에 적합한 것, 민의 재산과 자유가 더 잘 보장된다는 것이라는 논리를 러젠드르가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1898년 ‘제국의 개혁’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이후 중추원은 황제와 의정부의 지휘명령을 받는 자문기구로 격하되었다. 정부 측의 제안인 ‘자문기구’안이 결국 승리한 것이었다.
더보기19th century Korea was the age of contact in which Eastern and Western civilization clashed and infiltrated. Both knowledge and culture spread, collided and intermingled. The intellectuals of the Independent Club, which was baptized by "civilization discourse", embraced Western ideas and political systems to plan and build a so-called civilized state. In this study, I tried to examine the political reform led by the Independent Club and "Empire Reform" led by the imperial government in 1898 with the key words "civilization discourse" and "absolute monarchism".
As a result, various vocabularies in which Westerners represented Joseon was "incompetence", "corruption", "authoritarian power", "absolute poverty", "backwardness" etc. were transferred and reproduced by the Korean intellectuals. In the summer of 1898, the Independent Club launched massive demonstration to reform the political system and openly advocate the adoption of the parliamentary system. This was to make Korea, a civilized country and meet with western standard, which meant the weakening of the Emperor"s power.
C.W. LeGendre, the political adviser to the Korean Government, was well aware of the reality and impact of the liberal civil rights movement that he had experienced in Japan in the past. He persuaded members of the Independent Club, such as Yun Chiho, not to go out on a radical basis or to make compromises by making plans for reforming the Central Committee(중추원) as an "advisory body". LeGendre also asserted the advantages of the absolute monarchy in the West, and tried to defend the rights of the Emperor.
LeGendre"s logic was, that the absolute monarchy was not a symbol of "barbarism" nor "backwardness", but rather an effective political system capable of promoting civilization and development. He also thought that it was suitable for Korean political culture. Moreover that the rights and freedoms of the people are better guaranteed by the absolute monarchy. The Emperor, inspired by LeGendre"s logic, suggested an "advisory body," and late quelled down people"s protests and demanded a parliamentary system. A year after that he proclaimed the constitution for absolute monarchy.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2-06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미등록 -> The Society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9-29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Journal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1-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1.28 | 1.28 | 1.11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97 | 0.89 | 2.254 | 0.21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