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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참변과 중국정부의 대응 = The Gyeongsin Tragic Incident in 1920 and the Chinese Government's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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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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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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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170(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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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경신참변 이후 만주 한인에 대한 영향력을 둘러싸고 벌어진 중국과 일본의 대립, 훈춘사건과 경신참변의 수습 과정에서 나타난 중국과 일본 양국의 이해관계에 대해 연구했다.
중국 입장에서 훈춘사건은 외교문제의 관점에서 인식했다. 경신참변 때 중국정부는 일본의 한국 독립운동 탄압과 한인에 대한 살상을 묵인하는 대신 조기 철병을 통해 주권 침해 상황을 해소하려는데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경신참변 때 입적한 한인과 중국인의 살상이나 재산상의 손실에 대해서는 강하게 항의했다. 아울러 일본이 한국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것 외에 만주 한인에 대해 영향력을 확대하거나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도 항의하고 저지했다.
훈춘사건과 경신참변의 해결 협상과정에서 중일 간 외교적 쟁점이 다시 부각되었다. 핵심 쟁점에서 양국이 진전된 결론을 내지 못하면서 협상은 지지부진했고 시일만 끌게 되었다. 중국 입장에서 한인의 국적문제와 통치권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협상을 타결할 수 없었다. 일본입장에서도 중국의 피해가 크고 국적문제 등에서 중국에 양보할 여지가 없었으므로 굳이 협상을 타결할 필요가 없었다. 중국은 손해배상을 받아내는 것보다 협상을 일본에 대한 압박으로 이용했다. 일본은 중국이 일본보다 훨씬 많은 손해배상을 요구하자 협상을 고의로 지연시키고 결렬시켰다. 결국 양국이 협상 타결의 의지가 없어 경신참변 때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중일 관계의 핵심 쟁점은 쉽게 해결되기 어려웠다. 결국 훈춘사건과 경신참변은 해결을 보지 못하고 미결인 채 남게 되었다.
This paper studied the conflict between China and Japan over influence on Koreans in Manchuria after the Gyeongsin Tragic Incident,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China and Japan in the process of handling this Incident.
In Manchuria, China's interest was focused on how to protect China's sovereignty from Japanese aggression. After Manchurian-Mongolia Treaty in 1915, Japan tried to expand its influence on Koreans in Manchuria. China and Japan were at odds with each other over the nationality issue of Koreans, the issue of land ownership, and the issue of jurisdiction over Koreans. The Hunchun Incident in 1920 played an important role in expanding Japan's military influence in Manchuria. After the Gyeongsin Tragic Incident, Japan tried to expand its influence on the Koreans in Manchuria by withdrawing its troops and increasing the police at the same time, and tried to manage the Koreans by organizing the Korean People's Association in Manchuria.
From China's point of view, the Hunchun Incident was perceived from the perspective of diplomatic issues. At the time of the Gyeongsin Tragic Incident, the Chinese government focused on resolving the infringement on sovereignty through early withdrawal of troops instead of condoning Japan's suppression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nd killing of Koreans. During the Gyeongsin Tragic Incident, the Chinese government tolerated Japan's suppression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nd the killing of Koreans. Instead, it focused on resolving the situation in which China's sovereignty was being infringed upon by inducing the early withdrawal of Japanese troops. Therefore, at the time of the Gyeongsin Tragic Incident, they strongly protested against the killings and property losses of Chinese and Koreans who were naturalized in China. In addition, they protested and prevented Japan from expanding its influence or exercising control over Koreans in Manchuria, in addition to suppressing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In the process of negotiating the Hunchun Incident and the Gyeongsin Tragic Incident, it was found that the loss of life and property in China was far greater than that in Japan. Since then, the situation has changed with China's offensive and Japan's defense. Negotiations for damage compensation between the two countries were sluggish even after two years, and eventually ended without a conclusion.
In the course of negotiations on the settlement of the Hunchun Incident and the Gyeongsin Tragic Incident, diplomatic issues between China and Japan emerged again. Negotiations were sluggish and dragged on as the two countries failed to come to any advanced conclusions on key issues. From China's point of view, negotiations could not be concluded unless the issues of Korean nationality and sovereignty were resolved. From Japan's point of view, there was no need to conclude negotiations because China suffered more damage than Japan, and there was no room for concessions to China on nationality issues. China used the negotiations as pressure on Japan rather than obtaining damages. Japan deliberately delayed and broke down the negotiations after China demanded much more damages than Japan. In the end, the two countries did not have the will to conclude negotiations, so Koreans did not receive any compensation even though they suffered enormous damage during the Gyeongsin Tragic Incident. The interests of the two countries diverged, and the key issues in Sino-Japanese relations were not easily resolved. In the end, the Hunchun Incident and the Gyeongsin Tragic Incident remained unsolved without being resol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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