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서거정과 김시습:조선 전기 사대부 문인의 두 초상 = Seo Geo-Jeong and Kim Si-Seup: Two Portraits of Confucian Scholars in the Early Joseon Period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5
작성언어
-주제어
KDC
810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23-248(26쪽)
제공처
소장기관
조선 전기 문인을 분류할 때, 흔히 조정에서 문인 관료로 활동하던 館閣派와 산림에 은거하여 심성을 도야하던 士林派로 나눈다.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비판적 지식인을 方外人이라 부른다. 서거정이 관각파 문인을 대표한다면, 김시습은 방외인을 대표한다. 만약 癸酉靖難이 없었다면, 서거정과 김시습은 그처럼 엇갈린 길을 걷지 않았을 것이다. 유교적 명분을 송두리째 뒤흔든 불법적인 왕위찬탈은 21살의 순수했던 젊은 선비 김시습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리하여 승려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평생토록 이어진 방랑의 길을 떠났다. 하지만 세조가 대군이었을 때부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집현전 교리로 있던 젊은 관료 서거정은 이후 육조 판서를 두루 거쳤을 뿐만 아니라 대제학의 자리를 무려 23년 동안 독점하기도 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김시습만큼 불운한 삶을 산 지식인이 없었다고 한다면, 서거정만큼 영화로운 삶을 산 지식인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한 작가의 삶은 어떤 방식으로든 작품 안팎에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한시와 서사 작품에서도 이 점은 확연히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사후의 평가에서도 그러했다. 서거정이 조선 초에 수행한 역할은 대단했다. 개인 저술을 제외하고 국가적 요구에 의해 편찬한 것만 해도 ??경국대전??, ?삼국사절요??, ??동국여지승람??, ??동문선?? 등 수백 권에 달한다. 거기에 비하면, 김시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뒷사람의 평가는 엇갈린다. ??조선왕조실록??의 사관은 卒記를 통해, 그토록 영화로운 삶을 살았던 서거정의 업적을 기리는 일방 후진 양성에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비판을 덧붙이고 있다. 그에 비해 살아생전 한번도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김시습은 죽은 뒤에 비로소 거론되기 시작한다. 그가 남긴 글을 수습해 간행해야 한다는 논의로부터 시작된 ‘김시습 다시보기가 거듭 확산되었다. 대의명분을 중시하던 사림들은 김시습이 평생 지켜낸 절의정신에 주목했던 것이다. 결국 정조는 김시습에게 이조판서를 추증하는 한편, 淸簡公이란 시호를 내린다. 서거정과 김시습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엇갈린 삶을 살았던 조선 전기 사대부 문인의 두 초상이라 할 수 있겠다.
There are two sorts of confucian scholars in early Joseon period according to common classification: one is Gwangakpa, people who work for the government as high ranking officials, the other is Sarimpa, scholars who live in the countryside and cultivate studies. The critical scholars who do not belong to any school are called Bangwein. While Seo geo-jeong represents Gwangakpa scholars, Kim si-seup represents Bangwein. If there had not been Gyeyujeongnan, the conflicting war between parties, Seo geo-jeong and Kim si-seup would not have walked completely different ways of life. The unjust usurpation of the throne that thoroughly shook confucian cause left incurable wound to twenty-one-year old innocent young scholar, Kim si-seup so he wore buddhist monks" robe and led a wandering life. However, young government official, Seo geo-jeong working for Jibhyeonjeon, research institute had been close to King Sejo since the king was the prince and became a minister of six boards of the government and he was the head of Hongmungwan, study center for as many as twenty three years. One could say that there would not be unfortunate scholar as Kim si-seup through the entire Joseon period, whereas it is hard to find a scholar living a glorious life as Seo geo-jeong.
The life of a writer leaves trace in his works one way or another. It is evident in the world of Chinese poetry and epic world. This reveals in their posthumous evaluation. Seo geo-jeong played a great role in the early Joseon period. There are hundreds of books by national demand such as Gyungguk Dejeon, Samguksa Jeolyo, Dongguk Yeojiseungnam, Dongmunseon let alone individual writings. In contrast, Kim si seup was not prolific. But the evaluation of posterity goes different ways.
The historiographer of Joseon Wangjo Silrok, the History of Joseon Dynasty, criticized Seo geo-jeong that he was not active to educate younger generation on the day of Seo geo-jeong"s death who lived such a prosperous life. In comparison with that, Kim si seup who had never been listed his name on Joseon Wangjo Silrok, the History of Joseon Dynasty, while he was living, began to be mentioned for the first time after his death. The movement of looking again Kim si seup expanded from the discussion of publishing his posthumous works. Sarim school that thought highly of confucian cause began to pay attention to Kim si seup"s lifelong commitment to fidelity. In the end, King Jeongjo granted the position of the minister to Kim si-seup posthumously and bestowed a title called Cheonggangong. Seo geo-jeong and Kim si-seup crossed each other in life and death.
분석정보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