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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마을 단위 禁養의 확산과 採樵를 둘러싼 갈등 = Spreading of Protection for the Village Forest and Conflict over the Wood Collec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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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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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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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267(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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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government ordered Geumsan(禁山: prohibition of woodcutting in certain mountains) and applied Geumsong(禁松: prohibition of pine-tree cutting in important areas) policy in and around the capital and coastal regions. Meanwhile, it was allowed for individuals to privately occupy and use forests. However, it was rarely used among commoners and mostly relevant to the aristocracy. The government’s Geumsan policy, also, had many issues. Therefore, it was necessary to offer a new measure to guarantee the right of commoners to cut and use wood.
As a result, in Year 21 of King Sukjong, the government created Geumsonggye(禁松契: a community group dedicated to proteting and preventing cutting of trees in local mountains in their respective village), based on the custom that was already practiced among commoners, and tested the policy in Chungcheongdo, allowing different villages to create their own Geumsonggye and control Geumsong activities on their own. However, the policy was not expanded and applied nationwide later. Nevertheless, the issue of Geumsonggye was discussed multiple times in the court and introduced in the governance guideline for village officials written by some officials, which likely has spread the practice across the country. As a result, village-based Geumyang(禁養: prohibition of wood- and grass-cutting) and wood collecting became widespread as the boundaries of Geumyang between different villages blurred.
However, this trend also led to conflict over the right of Geumyang in certain mountains among the aristocracy, temples, and villages that were beginning to establish new sites for Geumyang. As a result, the aristocracy joined forces with villages in an effort to establish and utilize Geumsonggye, which was mainly led by the noble families by collaborating with local residents. However, in some Geumsongye, the aristocracy lost their authority while commoners gained more power. Also, villages fought over boundaries of Geumyang. As lawsuits over mountains continued, local governments began to draw more definite boundaries as well as define and classify rights of different parties more clearly.
The conflict over the right of Geumyang and its boundaries among the aristocracy, temples, and villages seems to have arisen, in part, due to a significant number of idle lands that did not belong to any particular party and unclear boundaries of Geumyang. Also, it is possible that certain villages fought over wood collecting due to lack of Geumyang sites. As a result, the competition among villages over securing the right of Geumyang intensified.
국가에서는 조선초기부터 도성 내외와 연해지역에 禁山을 설정하고 禁松정책을 취했다. 한편 민간이 山林을 사적으로 점유해 이용하는 것도 허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일반 서민에게는 그 기회가 별로 없었고, 그 대상은 주로 양반층이었다. 국가의 禁山정책에도 문제가 많았다. 따라서 일반 서민들에게도 수목 채취를 어느 정도 보장하는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숙종 21년 당시 민간에서 시행되고 있던 禁松契를 참조해 마을마다 금송계를 만들어 스스로 금송활동을 하게 하는 조치를 충청도에 시험적으로 시행해 보기도 하지만, 이후 국가에서 전국적으로 확대하여 시행하는 조치는 없었다. 다만 조정에서 여러 차례 논의가 이루어져 금송계 문제가 부각되고, 또 일부 관리들이 작성한 牧民書에 이런 방안이 소개되면서, 금송계가 전국적으로 점차 확산된 것 같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마을마다 금양의 경계가 지워져 마을 단위로 禁養하고 採樵하는 관행이 점차 일반화되어 간다.
이런 추세 속에서 禁養權과 그 경계를 둘러싸고 양반층과 사찰, 그리고 금양처를 새롭게 마련해 가던 마을 간에 갈등이 생기게 된다. 이런 갈등 상황에 직면하여 양반층은 마을과 연대하여 금송계를 결성·활용하는 방법을 적극 모색하였다. 이런 금송계는 사족이 주도하면서도 주민이 함께 화합하고 채초문제를 잘 해결해 가려는 것이었지만, 일부 금송계에서는 양반층의 입지가 약화되고 서민들의 입지가 강화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금양경계를 둘러싼 마을 간의 다툼도 적지 않았다. 산송이 계속되면서 관에서는 애매했던 경계를 좀 더 분명히 하고 소송 당사자 간의 권리를 좀더 구체적으로 조정하고 구분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처럼 사족, 사찰, 마을 간에 금양권과 그 경계를 둘러싸고 갈등이 생기는 것은 산림 중에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공한지가 있었다거나, 또 금양경계가 분명하게 처리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에서도 연유한 것 같다. 또 금양처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여 생존권 차원에서 다른 마을과 채초를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는 마을도 있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금양권 확보를 위한 마을 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졌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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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6-05-15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남명학연구소 -> 경남문화연구원영문명 : The Nammyonghak Study Institute -> Institute of Gyeongnam Culture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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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6 | 0.66 | 0.5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52 | 0.5 | 0.98 | 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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