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105인 사건과 서대문형무소 연구 = A Study on Seodaemun prison during the era Patriots in Seodaemun prison - The Event of 105 People' Case -
저자
양성숙 (국립경찰박물관)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9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99-252(54쪽)
KCI 피인용횟수
3
제공처
서대문형무소는 일제의 식민지배 통치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표적인 탄압기구로서 일제는 이곳을 통하여 한민족의 항일 독립운동을 억압하고 말살하려고 하였다. 즉 1908년 경성감옥으로 신축되어 문을 연 뒤 1945년 광복을 되찾기 까지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투옥되어 고문을 받으며 처형당했던 수난과 아픔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보면 서대문형무소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애국지사들이 투옥되어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이룩할 수 있는 방안을 새롭게 모색한 현장이기도 했다. 최초의 근대감옥인 서대문형무소의 개소와 함께 일제의 직접적인 개입이 시작되었고 감옥제도에 있어서 자주권이 상실되었다. 즉 조선의 전통적 제도가 종지부를 찍고 서구의 영향을 받은 일본 행형제도가 도입됨으로써 식민지 행형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일제침략에 항거하는 애국지사가 전국적으로 궐기하고 항일의 열기가 넘치면서 무차별적인 체포와 투옥으로 감옥의 수용인원은 급격히 증가하였다. 따라서 일제 말 전국에는 형무소 17개소, 형무소지소 11개소를 운영하는 등 감옥을 계속 증설하였으나 항일 애국지사를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감옥의 수용 실태는 위생과 급식상태가 마치 짐승우리와 같았고 굶주림과 질병으로 수감 중 사망자가 속출하였다. 대부분의 감방은 햇빛과 통풍이 잘 되지 않아 어둡고 습기가 차 있는데다 용변시설을 짓지 않아 방안에서 변통을 사용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러한 감옥내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항일 애국지사들은 일제침략에 항거하여 감옥 내에서까지 처절한 투쟁을 전개했다. 특히 105인 사건은 일제가 허위 날조한 최대 규모의 한민족 탄압사건으로 여기에 연루되었던 700여명의 애국지사들이 훗날 항일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의 지도력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105인 사건과 관련하여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인물의 출신지별 분석 결과 총 105명 중 3명을 제외한 98%가 서북지방으로 지칭되는 평북·평남·황해도 출신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사건의 발생지가 평북 선천이었다는 점에도 원인이 있다. 하지만 서구의 근대적 문명을 일찍 접할 수 있었고 기독교 등 새로운 사상과 신문화가 신속히 수용되어 근대사회로 급속히 진행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지닌 서북지방의 항일세력을 제거시킬 목적에서 꾸며졌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105인 사건의 재판당시 연령별 현황을 보면 40세 이하가 총 105명 중 89명으로 85%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젊은 층이 대거 관련된 것은 일제가 尹致昊·安泰國·梁起鐸·李昇薰 등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던 민족지도자들과 함께 미래의 항일 독립운동세력으로서의 잠재력을 지닌 청년·학생층을 대거 관련시켜 탄압하려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어 형량별 현황을 보면 105인 사건 피의자들은 경성지방법원(1심)에서 105명 전원이 5년 이상의 중형을 받았다. 그러나 105인 전원 상고 결과 경성복심법원(2심)에서 6년 형 5명, 5년 형 1명, 무죄 99명으로, 1심 때 유죄판결을 받은 105인 중 94%가 무죄로 풀려났다. 이는 재판이 진행되면서 허위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가혹한 고문이 자행된 사실과 그로 이 사건 자체가 허위 날조된 것임이 명백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105인 사건으로 신민회의 애국계몽 운동가들은 아무런 잘못 ...
더보기Seodaemun Prison is a representative oppressive body built to more efficiently carry out Japanese colonial rule policies, through which the Japanese attempted to oppress and wipe out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From the time it was rebuilt as Gyeongseong Gamok in 1908 until the national independence in 1945, it has been a site of ordeals, and grief where a number of patriotic fighters were imprisoned and executed or tortured to death.
In the meantime, from a different point of view, Seodaemun Prison also served as a venue of spiritual revitalization as patriotic ancestors who fought for national independence overcame all the adversities after being imprisoned, and newly explored ways to achieve national independence in this place. With the opening of Seodaemun Prison which was the first modern prison of its kind, the Japanese invaders made a direct intervention, and as a result, the autonomy in prison system was deprived. Eventually, the traditional prison system of Chosun was put to an end, giving its way to the Japanese colonial execution system which had an influence of the West. In the meantime, the Event of 105 Patriots is the largest scale oppression incident ever that had been falsely fabricated by the Japanese aggressors. It also holds a great significance in that the patriotic fighters who were implicated in this incident grew to be leaders in anti‐Japanese struggle and national independence movement in the future. The analysis of the imprisoned figures related to the Event of 105 Patriots by each location shows that 98% of them(3 out of 105) were from northwestern provinces such as Pyungbuk Province, Pyungnam Province, and Hwanghae Province. This is partly because the Event was originated from Sunchon of Pyungbuk Province and also partly because the Japanese invaders fabricated the event in order to root out anti‐Japanese power in the northwestern provinces which had an outstanding geographical location to rapidly evolve into a modern society by being exposed early to modern civilization of the west speedily and by accepting new ideas such as Christianity and cultures. The age of the convicted at the time of the trial of the event was mostly below 40, taking up 85% (89 out of 105) of the total. The massive involvement of younger people in this event was the result of intended oppression by the Japanese against the youth and students who had huge potentials for becoming future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powers together with relatively widely known national leaders such as Yoon, Chi‐ho, An, Tae‐guk, Yang, Gi‐tak, and Lee, Seong‐hoon. The record of prison term shows that all of the accused involved in the Event of 105 Patriots were given a heavy punishment with more than 5 years at the first instance by Gyeongseong District Court. However, all of them made an appeal to a Higher Court and 5 of them were given 6 year’s term, one of them, 5 year, and 99 of them proved to be not guilty. This means 94% of those who were convicted at the first instance of the trial were released with acquittal. This is because of the disclosure of Japanese fabrication in the course of the trial, as the accused made statements that they had been forced to make false confession due to ruthless tortures imposed on them during interrogation. However, the Event of 105 Patriots attributed to the unjust suffering of activists of Patriotic Enlightenment Movement of Sinminhoe with more than 6 years’ imprisonment by being falsely charged, and even ordinary members were ruthlessly tortured for 2 years, but later forcibly acquitted under the pressure of public opinion by in international communities. This event brought about a temporary suspension of activities by an underground organization, Sinminhoe and even affected overall anti‐Japanese national movements within the country to the level of withdrawal or shrinkage. However, most of the patriotic fighters resumed their activities for sovereignty restor...
분석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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