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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서울의 호구 변동과 인구기록의 특성 - 한성부 호구 자료를 중심으로 - = A Study on the Census Changes and Characteristics of Population Records in Seoul in the Latter Half of Joseon - With a focus on the census data of Hanseongb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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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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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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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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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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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수록면
213-240(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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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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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wangheungchang, the number of his servants surged to 100 or more. Another house of family that held a high-rank position owned only a couple of servants for his family. The head of the remaining house worked for Gyeongajeon of Ijo as a Seori, but he owned only a small number of servants over a long period of time. Finally, the study delved into the census changes of Seoul in the 19th century, finding that the number of family members per house made an overall decrease from the previous periods. Lee Gwang-jae was recorded as Jijungchubusa in all of seven census terminals with his son recorded in the same house as a government official. Despite their records, the number of servants at his house was under ten. Jeon Hyo-an, who was an official at Hyeminseo, possessed more servants than other houses in the 19th century. His father was also an official at Hyeminseo. There was no remaining servant at his house in 1858, which seems closely related to the rapid reduction of servants since the middle 19th century, which phenomenon was observed even in the family register of Cha Gyeong-cheol that was examined last in the study. He left a census terminal in 1825~1882. Even though there was no big change to the scope of his position, there was no single servant recorded in his census terminal in 1854. As mentioned earlier, it seems like the outcome of changes to the recording style of family register.
더보기본 논문은 조선시대 서울 지역에 남아있는 호구 자료를 중심으로 조선 후기 서울 지역의 호구 변동과 인구 기록의 특성을 살펴본 것이다.
2장에서는 호구 기록의 시기별 특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먼저 시기별 호당구수의 변화를 살펴보면, 19세기 전반까지 호당 구수가 지방에 비해 훨씬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직계 가족의 수가 매우 적게 기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평균 노비수가 지방보다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17세기 후반에서 대부분의 호가 노비를 소유한 반면, 19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1명의 노비도 소유하지 못한 호가 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이같이 19세기 중반 이후의 개별호의 노비 소유 양상은대구부와 비교해봤을 때,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서울의 경우 19세기 중반이후 노비를 소유한 호가 소수에 불과하지만, 대구부의 경우, 상층 신분의 호는대부분 1~2명의 노비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3장에서는 동일한 호의 일련의 호구 자료를 통해 개별호가 시기별로 어떤 변화양상을 가지는지 살펴보았다. 먼저 17세기 후반의 경우, 조사한 2호를 모두 관료층이었으나, 가족구성에는 차이가 있었다. 한 호는 혼인을 한 아들 부부와 동생부부가 하나의 호를 구성하고 있었으나, 다른 한 호는 아들이 혼인한 후 독립된호를 구성하고 있다. 결혼한 자녀가 부모와 같은 호를 구성하기도 하고 혹은 독립호를 구성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19세기까지 서울 호구 자료의 일반적 양상이었다. 다음으로 18세기 서울 지역의 호구변동의 일단을 살펴보았다. 명문 집안 출신인 김성하의 호의 노비 수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광흥창의 관료를역임한 후 갑자기 노비의 수가 100명 이상 늘어나고 있다. 반면 고위 관직을 역임한 다른 가문의 호는 가내의 2~3명의 노비만을 소유하고 있었다. 나머지 하나의호의 주호(=호주)는 경아전이었는데, 그는 이조의 서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에 걸쳐 소수의 노비만을 소유했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19세기의 서울 지역의호구 변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전 시기에 비해 호의 구성원 수가 전반적으로 적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광재는 7장의 호구 자료에서 모두 지중추부사로기재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들 역시 관료로서 같은 호에 기재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호의 노비수는 10명 미만이었다. 반면 혜민서의 관료를 역임한 전효안은 19세기의 다른 호에 비해 많은 수의 노비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의 부친역시 혜민서의 관료를 역임하고 있었다. 한편 전효안의 호에서는 1858년에 갑자기현존하는 노비가 한 명도 없는데, 이는 19세기 중반 이후의 노비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마지막으로 살펴본 차경철의 호적에서도 확인되었다. 그는 1825년~1882년까지 호구 자료를 남기고 있는데, 직역의 변화가 심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1854년부터 호구 자료에 노비가 한명도 기재되지 않고 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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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5-02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A Laboratory of Korean Studies -> Institute of Korean Studies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KCI후보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3 | 0.3 | 0.2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36 | 0.38 | 0.553 | 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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