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eign Influence on the Traditional Culture of Cheju Island : the Mongols = 濟州島 傳統文化에 미친 外國人의 影響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1973
작성언어
English
KDC
040.000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99-123(25쪽)
제공처
소장기관
濟州島는 옛날 耽羅國이었고 時代가 變遷함에 따라서 東瀛州 涉羅 耽牟羅, ??羅 또는 耽浮羅 等으로 呼稱되어 왔다.
厥初에는 人間이 살지 않았었는데 어느날 奇異하게도 三神人이 漢拏山 北側기슭 廣壤땅 毛興穴에서 湧出하였다, 長을 良乙那(後 新羅時에 梁이라 改함) 次를 高乙那, 三을 夫乙那로 하였다.
三神人이 每日 狩獵에 從事하여 肉食하면서 生活하였다. 어느날 南濟州郡 城山面 溫坪里 (當時 延時浦)에서 木函이 海上에 떠오는 것을 發見하고 上陸시켜서 開函한즉 그 內部에는 石函이 있었고, 또 붉은띠 紫色服裝한 使者가 따라와 있었다. 그 使者는 그 石函을 開封하여 靑衣를 입은 三處女와 駒, 犢 및 五穀種子를 내놓고 말하였다. 「나는 碧波國 (日本?)의 使者이온데 우리 國王께옵서 三王女를 낳으시고, 臣에게 命하시기를 西海中에 神子 三人이 降誕하여 將次 開國하고자 하나 配匹이 없으니 이 三公主를 모시고 오도록 하였습니다. 모쪼록 作配하시와 大業을 完遂하십시요」하고 말하자마자 그 使者는 흰구름을 타고 사라지고 말았다.
三神人과 三王女는 年令順으로 結婚(分娶)하고 泉甘土肥한 場所에서 활을 쏘아 그 居所를 定하기로 하였다. 그 結果 良乙那는 第一徒 (輿誌勝覽에 徒를 都라함) 高乙那는 第二徒 夫乙那는 第三徒로 各各 그 居處를 定하였으니 이는 濟州島民의 祖上이다.
西紀 420年頃 高乙那 第15代孫 高厚 三 兄弟가 內陸과 交通을 開始하기 爲하여 全盛期에 있던 新羅를 訪問하고 星主, 王子, 徒內의 官職을 下賜받고 國號를 耽羅라 칭하였다. 이로부터 耽羅는 新羅에 服事하게 되었다.
西紀 476年 4月에 使者를 百濟에 派遣하여 方物을 獻呈하였다. 百濟에서는 耽羅使者를 恩率, 耽羅王을 佑平의 職位를 拜하여 耽羅를 百濟에게 隸屬시키고 耽羅를 耽牟羅로 호칭케 하였다. 그러나 耽羅는 悠久한 歷史가 있고 國王이 統治하는 自治國이었으므로 百濟에 對하여 眞心으로 服事하지는 않았다.
西紀 938年에 高麗太祖는 新羅 衰退期以來 獨自的인 行政을 取하고 있던 耽羅王에 對하여 新羅時代의 舊官職이었던 星主職을 封한즉 耽羅에서는 그 隸屬을 거절키 爲하여 受諾하지 아니하였다. 三國을 統一하고 中央集權的 政策을 取하고 있던 高麗는 小島國인 耽羅만을 自主獨立國으로 許容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高麗는 軍士를 보내어 이를 討伐한 즉 耽羅王 高自堅이 屈服하고 그의 太子 末老를 高麗에 入朝시켰다. 高麗太祖는 高自堅을 星主로 良且美를 王子로 封하여 耽羅의 오랜 傳統과 權威를 維持시켰으나 稱王은 許容하지 않았다.
西紀 1105 (肅宗10)年에 ??羅의 國號를 廢止하여 耽羅郡이라 改稱됨으로서 星主와 王子는 政治에서 물러났다.
高麗朝 23代 高宗時에 耽羅郡을 濟州로 改稱하고 副使와 判官制度를 實施하게 되었는데 濟州島의 名稱은 여기에서 始作된 것이다.
第13世紀初에 成吉思汗이라는 者가 外蒙古地方의 諸部族을 統合하여 帝王의 地位에 올라서 蒙古의 太祖가 되었다.
이때 高麗王朝는 300年이나 契丹遺族의 侵入으로 苦生하고 있었다. 여러 方面으로 勢力을 擴大시키고 東쪽으로 發展할 機會를 엿보던 蒙古는 마침내 軍士를 보내어 契丹遺族을 쳐서 高麗를 救援하겠다 하였다. 契丹의 根據地 江東城은 高麗와의 合同作戰으로 陷落되었다.
契丹遺族들의 征服은 蒙古가 高麗侵略의 좋은 動機가 되었다. 高麗와 兄弟의 義를 맺은 蒙古軍은 해마다 各種 禮物을 받아가지고 갔을 뿐 아니라, 그 態度가 傲慢無禮하였다. 高宗12(西紀1225)年에 蒙古使臣 著古與는 그 前年 冬期에 高麗에 와서 水獺皮等의 貢物을 가지고 歸國하는 途中 滿州에서 殺害되었다. 그 殺害한 者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으나 몽고에서는 이를 高麗人의 所行으로 固執하고 이를 口實로 前後 30年 동안 六次에 걸쳐서 高麗에 侵入하였다. 高麗政府는 이를 맞이하여 持久戰으로 잘 싸웠다. 그리고 蒙古軍은 地上兵力은 優勢하였으나 海軍力이 貧弱하였으므로 高宗은 江華島로 遷都하여 一大決戰 態勢를 取하기로 하였다. 그 中에서도 別抄의 활약은 大端하였다. 別抄라 함은 特殊目的을 爲하여 編成된 軍隊를 말함인데 大略 세 가지가 있었으므로 이를 三別抄라 칭하였다. 즉 警備任務를 擔當하고 盜賊을 防止하는 夜別抄가 있었고 그 數가 增加됨에 따라서 左右의 둘로 分離시켰다. 또한 蒙古軍에 포로가 되었다가 빠져나온 사람들로 編成된 神義와 合쳐서 三別抄라 하였다. 別抄는 各 地方에서도 編成되었는데 이들은 蒙古軍 防禦의 主體가 되었다.
그런데 高麗와 蒙古間에는 江華島에서 開城으로 還都하는 問題에 關하여 意見이 對立되어 오다가 元宗은 同王 11年(1271)에 蒙古의 要請으로 北京(燕京)에 갔다가 歸國途上 出陸할 것을 決定하고 三別抄의 解散도 命令하였다. 이에 對하여 三別抄는 「이제 出陸還都함은 蒙古에 對한 屈服이며 또, 三別抄 解散은 不當한 일이다」하고 開京의 元宗政府를 傀儡라 糾彈하면서 1279年에 裵仲孫等은 江華島에서 逆亂을 일으켰다. 그 後 三別抄는 千餘隻의 艦船에 公私財貨와 軍士들을 싣고, 珍島에 到着, 龍藏城에 依據하여 海上王國을 建設하였다. 同年 11月에 三別抄側은 그의 部將 李文京이 그 兵士를 거느리고 濟州島 明月浦에 上陸하고 이어 東濟院 松淡川戰鬪에서 官軍을 全滅시킨 後 朝天浦에 웅거하여 軍事上의 地盤을 닦았다. 이 松淡川 戰鬪에서 미리 軍士 1千을 거느리고 入島한 官軍將 高汝霖과 士卒 貳百을 引率하여 濟州島에 들어온 靈岩副使 金須는 戰死하였다.
元宗 12年(1272) 5月에 珍島의 龍藏城은 陷落되고, 裵仲孫等이 中心人物은 戰死였으나 別將 金通精等은 最後까지 抗戰키 爲하여 그 部下를 데리고 이미 濟州島로 派遣된 李文京의 陳地로 後退하였다. 그리하여 貴日村 缸波頭里에 內外城을 쌓고 그 西쪽에는 涯月木城을 쌓아 三別抄의 最後 據点으로 하고 軍力을 養成하였다.
蒙古는 우선 高麗政府로 하여금 金通精을 悔柔시켜 보려고(成吉恩汗은 心理戰의 名手였다) 試圖하였으나 水泡로 돌아갔다. 高麗王國의 主張과 초조한 蒙古는 어쩔수 없이 金方慶將軍을 兵馬使로 하고 蒙古軍 元帥 還都와 더불어 萬餘名의 高蒙聯合軍으로써 耽羅를 功擊케 하였다. 元宗 14年(1273) 4月 28日 早朝 이 聯合軍은 咸德에 敵前上陸하였고 左軍 30隻은 飛揚島 方面으로 航海하고 있었다. 咸德에 上陸한 金方慶은 官軍을 督勵하여 決死抵抗하는 三別抄의 伏兵을 무찌른 다음 乘勝長驅 缸派頭城에 接近 미리 飛揚島 方面에 와 있던 30隻의 兵力과 合勢하여 缸派頭城을 陷落시켰다. 衆寡不敵 士氣를 完全히 꺾인 金通精은 部下 70餘名과 더불어 漢拏山中으로 脫出하여 거기에서 謚死하였다.
三別抄亂이 鎭壓되자 高麗軍 1千名 蒙古軍 四百名을 濟州島에 駐屯케 하였다.
이로써 事件은 일단 진압되었으나 戰場을 빌려준 濟州島는 이제부터 1世紀동안 悲劇을 겪어야 하였다.
蒙古는 濟州島에 蒙古兵과 達魯花赤制를 두고 濟州島를 점령하여 오다가 忠烈王元年(1275)에 國名을 耽羅라 復號하고, 高麗에서 分離하여 蒙古에 隸屬시켰는데 이는 濟州島가 百年동안이나 異民族에게 시달리면서 二重的 國民生活을 하여야 하였던 恥辱的 歷史의 出發이었다. 忠烈王 3年(1277)에 蒙古는 耽羅를 그들의 房里分野라 하고 東西阿幕을 設置하여 牛, 馬, 駒, 犢, 羊等을 放牧하고 達魯花赤으로 하여금 이를 管理케 하였다. 蒙古는 元來 他民族과도 雜婚을 奬勵한 点으로 봐서 民族的 差別은 덜한 것 같다.
그런데 耽羅에 駐屯하고 있던 蒙古의 牧胡들은 天性이 强暴하고 好戰的이어서 우리 官民을 殺害하고 百姓들은 奴婢로 하는 等 橫暴한 處事가 極甚하였다. 한때 元에 對한 강경한 自州政策을 쓰고 있던 공민왕을 殺害하려던 陰謀가 發覺되어 이를 調査하기 爲하여 濟州島에 들어왔던 宰相 尹時遇와 耽羅牧使 그리고 判官을 죽인 일이 있었다. 또한 牧胡들은 逆亂을 일으켜 耽羅의 牧使 萬戶等을 죽인 일도 있었다.
恭愍王 23年(1375)에 蒙古 牧胡인 古禿不花 石迭里 必思觀音등이 反亂하므로 王은 崔瑩將軍에게 이를 討伐할 것을 命하였다. 崔瑩將軍은 諸軍을 引率하고 占山串에 이르러 順風을 기다린 後 明月浦에 敵前 上陸하여 强力히 抵抗하는 牧胡等을 擊破한 後 그 頭目 哈赤 石迭里 肖古禿不花 觀音保等을 西歸浦 虎島에서 잡아 죽이므로써 蒙古人들은 濟州島에서 完全히 掃蕩되고 平和를 되찾았다. 上記한 바와 같이 蒙古族은 百年동안 濟州島民을 괴롭혀 왔지만, 한便 그들이 濟州島를 占領하는 동안에 끼친 영향도 不少한데 그 主된 面을 指摘한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爲先 言語와 風俗이며, 다음에 牧畜方法의 導入, 佛敎發展에 貢獻 그리고 混血關係이다.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 주요 개정내역 | 변경 사유 |
|---|---|
| · 수탁업체 콘소시엄 기관명 및 위탁기간 명시 | ·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구체화 |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 이용·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제1조(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제2조(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유 기간)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
제3조(처리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제4조(개인정보파일 등록 현황)
개인정보파일 검색(privacy.go.kr)| 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정보추제 동의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
제5조(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제6조(개인정보 처리업무의 위탁)
제7조(개인정보의 파기 절차 및 방법)
제8조(정보주체와 법정대리인의 권리·의무 및 그 행사 방법)
제9조(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제10조(개인정보 자동 수집 장치의 설치·운영 및 거부)
제11조(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안재호 |
- 이메일 : jinuk@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58 - 팩스번호 : 053-714-0195 |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송진욱 |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교육학술데이터본부 정광훈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제12조(개인정보의 열람청구를 접수·처리하는 부서)
제13조(정보주체의 권익침해에 대한 구제방법)
제14조(추가적인 이용ㆍ제공 판단기준)
제15조(개인정보 처리방침의 변경)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