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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환성 지안의 통도사 주석과 문도의 유풍 계승 = A Study on the Habitation of Hwanseong Jian in Tongdosa Temple and the Inheritance of Hwanseong School’s Scholastic Mantle in the Late Jose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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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cept Master Jajang brought the sarira of Buddha from China and enshrined them in the Geumgang Ordination Platform in Tongdosa Temple, Yangsan. Consequently, the temple became one of the most renowned Buddhist temples in Korea and it has been a venue for the Buddhist initiation ceremony. Since the era of Silla Kingdom, Tongdosa had held the status of the representative Buddhist monastery in the Gyeongsang Provincial region and it came to be one of the Three Jewels Temples and to represent Gautama Buddha in the late Joseon period. The leadership of the temple who kept the tradition of monastic training during that time were the disciples of Hwangseong Jian.
Hwangseong Jian (1664~1729) was the most renowned teaching master of Huayan Buddhism (Ch. 華嚴) in the late Joseon period. When he held a large Buddhist lecture meeting of Huayan study in 1724, more than 1,400 people gathered to participate the event. But he was accused of plotting conspiracy when some person brought a false charge against him at the time and he had gotten banished to Jeju Island. After he passed away in exile, his disciple Seolchong Yeoncho (1676~1750) inherited his scholastic tradition and initiated the school of Hwangseong which lasted until the modern period.
His relics preserved in the Tongdosa Museum enables one to find his trace in the temple. Among the artifacts, his head garment and his autographic poems carved on a wooden panel are kept in the museum while a memorial stone with Hwanseong’s article of the reduction of forced labor is stood among steles. The evidence of his scholastic mantle could also be found by the 76 portraits kept in the Portrait Hall of the temple and steles with his disciples’ names. There also is a stone lantern with inscriptions of ‘本 寺喚惺宗契中’ at the entrance of the temple and it suggests that there was a mutual financing association organized by the Hwanseong School members during the Japanese ruling time. The cadaster of the city office of Yangsan includes an entry of land under the name of Hwanseong and it seems to be land purchased by the financing association in order to help the temple management.
Such artifacts and records suggest the fact that the Hwanseong School Members led the administration of the temple during the 18th and 19th centuries and kept the scholastic mantle of their teacher. The relics of master Hwanseong could have been preserved in Tongdosa thanks to his students’ devotions to keep Hwanseong’s tradition. When one considers the fact that Hwanseong was the representative master of Cheongheo Faction, the largest Buddhist faction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Tongdosa can be regarded as the head temple of Cheongheo Faction since the scholastic mantle of Hwanseong is kept there.
양산 통도사는 신라 자장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를 안치한 금강계단이 있어서 예로부터 수계작법이 이루어졌던 대표적 사찰이다. 신라시대 이래 경상도를 대표하는 사찰로서위상이 있었고, 조선후기에는 불·법·승 삼보 중 불보 사찰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특히조선후기 통도사를 경영하며 수행 풍토를 이끌어갔던 그룹은 환성 지안의 문도였다.
환성 지안(1664~1729)은 조선후기 최고의 화엄강백으로서 1724년에 금산사에서화엄대법회를 열었을 때 1400여 명이 운집하였을 정도였다. 이때 수많은 대중이 모인것을 보고 누군가 역도의 우두머리라고 환성대사를 모함하였고, 결국 대사는 제주도로유배 가서 입적하였다. 그 환성대사의 제자인 설송 연초(1676~1750)로부터 이어지는환성 문도가 근대에 이르기까지 통도사에서 환성 유풍을 계승하였다.
환성대사가 통도사에 주석했던 흔적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유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성보박물관에는 환성대사가 사용하던 송낙과 환성대사 친필의 시 현판이보관되어 있고, 비림에는 환성대사 찬술의 蠲役復舊碑 등이 있다. 그리고 통도사의 환성 유풍 계승은 影閣에 소장된 76점의 진영과 비림의 승려명이 있는 비석 등을 통해 그환성 문파의 계보가 확인된다. 또 통도사 입구에는 ‘本寺喚惺宗契中’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석등이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환성대사 문도들이 조직한 환성종계가 성립되어 있었던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양산시 『토지대장』에는 ‘석환성’ 소유로 기록된 溜地가있다. 이 유지는 환성종계가 통도사 경영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인근의 토지를 매입한흔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유물과 기록을 통해, 환성대사 문파는 18~19세기 통도사 경영을 주도적으로담당하면서 환성대사의 유풍을 계승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환성대사의 문도들이 스승의 유풍을 계승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환성대사 관련 유물이 남아 전하는것으로 짐작된다. 환성대사가 조선후기 최대의 불교 계파인 청허계를 대표하는 선사였다는 점에서 볼 때 환성 유풍을 계승하는 통도사가 청허계의 사상적 宗院이었다고 평가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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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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