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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의 급진적 전환: 연방 인신자유정치의 확립을 중심으로 = Radicalization of the Visions and Voices of the Civil War: Pursuit of National Personal Liberty Politics
저자
허현 (이화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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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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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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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6(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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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발발 이후 비교적 온건했던 대통령 주도의 재건정책을 부정하고 이루어졌던 북부의 급진적인 대(對)남부 및 의회 재건정책은 남부에 대한 정치적 응징 및 군사적 보복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라는 역사적 해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남북전쟁 30여 년 전부터 전개되어 온 노예제폐지운동, 특히 도망노예의 인권 보호를 목표로 했던 인신자유법(personal liberty laws) 채택 운동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을 희석시킨다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러한 해석적 오류를 바로 고쳐 남북전쟁 이전 인신자유법 채택 운동을 중심으로 한 노예제폐지운동이 남북전쟁의 혁명적 의미를 확립하는 데 있어서 갖는 중요성을 재조명하는 데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취지에서 남북전쟁 초기 연방 의회에서 전개된 도망노예에 대한 인신보호정책의 확립 노력을 추적함으로써 링컨의 노예제 해방과 연방헌법 수정조항 제 13조, 제 14조 및 제 15조의 채택이 단순히 전쟁 수행 과정에서 급조된 대남부 정치적 응징 수단의 일환이 아니라 1830년대 초 급진적 노예제폐지운동의 등장 이후 각 주에서 본격적으로 전개 되어왔던 인신자유법 채택운동의 산물이었음을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남북전쟁 발발 직후 자유와 정의를 위한 연방의회(혹은 링컨대통령)의 노력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1863년 노예해방선언과 1865년 연방헌법 수정조항 제13조의 통과가 우선적으로 언급되곤 한다. 하지만 사실 1861년 초기부터 공화당 급진파 의원들은 북부 여러 주에서 전개 되어오던 인신자유법 채택 노력을 연방차원의 입법운동으로 전화시켜 최초로 연방인신자유법의 입법을 시도하면서 반노예제적인 연방 인신보호정책의 확립에 주력했다. 그로 인해 남북전쟁의 의미는 일찌감치 혁명적으로 전화되기 시작했으며 대남부 강경정책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이 본 연구자의 평가이자 시각이다.
미국 역사에서 남북전쟁은 노예제를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해결한 결정적 사건으로 평가받는 것이 사실이며 일면 수긍할 수 있는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노예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도망노예들을 대상으로 한 북부 여러 주의 인신자유법 채택 운동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으며 이러한 운동이 남부 제주의 연방탈퇴 이후 연방 의회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됨으로써 노예제 폐지의 결정적 기반이 되었음을 밝히는 연구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적어도 남북전쟁까지 당대 미국의 역사를 인종차별주의가 지배하는 일차원적인 역사가 아니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자유주의와의 극명한 대립 속에서 발전해 온 다차원적인 역사로서 노예제와 인종차별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상당한 정치사회적 이념과 세력이 있었음을 주장한다.
Ohio’s radical Republicans’ commitment to the ideals of personal liberty and human equality, and their determination to not merely provide assistance to fugitive slaves but also eradicate the institution which enslaved human beings, were dramatized at national level after the Secession of the Confederacy.
On the eve of the Civil War, on January 29, 1861, U.S. Representative James Ashley of Toledo, Ohio, proposed the first national personal liberty law. The Ashley bill was designed to protect the rights of the alleged fugitive slaves and undermine the federal Fugitive Slave Law of 1850. At a moment when almost every politician tried to find compromise solutions in order to avert disunion, Ashley’s national personal liberty bill was provocative and, in some respect, ill-timed, considering the looming national crisis. But, for the exactly same reasons, it testified to the Ohio radical’s devotion to the ideals of civil liberties and equal rights, not the sacrifice of them for Unionism and the spirit of compromise.
Ashley’s bill proved to be the prologue to the decisive change of federal fugitive slave policy. Congressman Ashley followed up with a bill to abolish slavery in the District of Columbia and both houses of Congress voted to abolish slavery in the District of Columbia. Furthermore, Ashley and his abolitionist colleagues won another huge victory when Congress voted on June 23, 1862 to abolish slavery in the territories without compensation.
However, what completed the long journey to secure the personal liberty and civil rights of blacks was the passage of the Thirteenth and Fourteenth Amendments to the Constitution. Less than two years after the national personal liberty law failed, Ashley sought to establish the legal system that should forever safeguard liberty by moving to constitutionalize Lincoln’s Emancipation Proclamation of 1863. On December 14, 1863, Ashley proposed the original draft of the Thirteenth Amendment whose passage put an end to the longstanding constitutional disputes over the personal liberty laws of the North and signified the realization of the radicalism embodied in the personal liberty laws.
Another Ohio radical John A. Bingham completed the unfinished work of personal liberty laws, which was to realize abolitionist beliefs that all person were born free and equal and could not be deprived of those natural rights without due process of law and that the ideal could not be achieved without total destruction of the oppressive regimes of the slavery and the Black Codes of the South.
Ashley’s and Bingham’s roles and abilities as not only authors of such personal liberty legislation as the Thirteenth and Fourteenth Amendments but also as floor managers in passing them were instrumental in the success of those radical measures. Indeed, if it were not for the Ohio radical Republicans such as Ashley and Bingham, it is not clear who would have initiated such radical legislation or successfully shepherded it through Congress. Only because the Ohio radicals did not forget their unfinished work in the completion of personal liberty politics, they did not hesitate to undertake the task of adopting personal liberty laws at national level.
By launching personal liberty legislation and even by succeeding in passing it at every critical moment, furthermore, they even revolutionized the meaning of the Civil War, which was not to restore the Union but to make a radical and fundamental change to the Constitution and race relations. This was also possible only because the Ohio radicals were in the vanguard of the antislavery struggle to repudiate the federal Fugitive Slave Law and develop radical personal liberty politics.
Indeed, the Fourteenth Amendment was a radical change to the Constitution and racial relations. Historian Paul Finkelman asserted that the origins of the Fourteenth Amendment lie in the antislavery politics of Ohio. However, to be exact, the origins of the Fourteenth Am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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