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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발발 이후 충청도 지역교회의 전시협력활동 = The Wartime Activities of the Churches in Chungcheong-do duringthe Sino-Japanese War
저자
송현강 (한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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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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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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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137(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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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instream denomination of protestant churches during the Japanese Rule over Korea were Methodists, Presbyterian and the Holyness Church. There were estimated over 230 churches and over 16,000 Christians in Choongchung Region all together in the second half of the 1930s. The Japanese Empire aggressively promulgated the Shrine Worship policy and Religion Control policy around 1937, the year of the Sino-Japanese War broke out. The aftereffect of the promulgation reached out to the churches of Choongchung region through the supportive activities of the centers of each religious denomination. This paper examines such cooperative activities by each religious body of the protestant circles in Choongchung region from 1937 through August 1945.
The supportive activities to Japan by Methodists and Presbyterians and the Holyness churches of Choongchung region started with sending representatives from each of the denominations to the General Assembly. Whenever there was a meeting under the name of the church, including General Assembly, there were national ceremonies such as shrine worshiping and lectures about state affairs without exception. In addition, Churches of Choongchung region organized 'patriotic' groups and collected 'patriotic contributions' and comfort kits for the Japanese army.
The supportive activities to Japan were initiated undoubtedly by the external pressure of the Japanese Empire. However, as described above, there were leaders who were deliberately cooperating to Japan within the Choongchung Christianity blaming such pressure. They played key roles connecting the upper class of the denominations' central and regional believers, and executed and disseminated the pro-Japanese decisions of the denomination in every deed. The cooperative activities to Japan by Christianity at the end of the rule over Korea had features of dual layers like this as it progressed, and in order to reveal the whole picture, it is priority to understand the details of the regional leaders' cooperative activities.
이 글은 1938년부터 1945년 8월까지 충청도 지역교회의 전시협력활동의 전반적인 모습을 세 가지 작은 주제로 나누어 살펴본 것이다. 먼저 전시 총동원체제 하에서 일제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진 지역교회들의 조직 개편 상황을 다룬 다음, 이어서 지역교회에 총동원기구의 하부 조직인 ‘연맹’과 ‘애국반’이 설치ㆍ운영되는 과정과 지역교회들의 다양한 ‘애국’활동을 잇달아 조망하였다.
먼저 전시 총동원체제 하에서 지역교회들은 일제의 요구에 의하여 교구제로 지역조직을 개편하였다. 감리교는 1941년, 장로교는 1943년에 각각 ‘충청교구’를 출범시켰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각 교파를 통합한 후에 일본교회와 기구적 통합을 위한 일제의 예비적 조치였다.
1939년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야소교장로회연맹’이 결성되자 충청도 장로교회의 노회들은 ‘노회지맹’을, 교회들은 ‘애국반’을 조직하여 일제에 협력하였다. 그리고 다시 1940년 ‘국민정신총동원연맹’이 ‘국민총력연맹’으로 개편ㆍ강화되자 충청도 장로교의 노회들은 그에 맞추어 다시 조직을 재정비하면서 각각 신도대회를 성대하게 개최하였다. 또 충청도 감리교회들의 ‘애국반’ 조직은 1940년 7월부터 9월 사이에 집중되었다. ‘국민정신총동원 기독교조선감리회연맹’의 결성과 병행해서 각 교회에 애국반이 조직되었던 것이다. 충청도 성결교회의 전시협력활동은 지역교회의 지도자들이 ‘국민정신총동원 성결교회연맹’의 이사로 참석하는 한편 교구 순회목사들이 연맹의 지부장으로 가담한 것과 각 교회의 ‘애국반’ 결성을 통해 드러난다.
충청도의 장로교회들은 신사참배 수용 결의를 통해 ‘애국’활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 후 그 노회들은 감리교와 마찬가지로 충청도 장로교의 지도급 인사들은 지역 대표자로 총회에 참석하여 전국적인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였다. 개교회들은 이미 1937년 중일전쟁 직후부터 ‘무운장구기도회’와 ‘국방헌금’ 모금으로 협력하고 있었다. 충청도의 감리교회 역시 총회를 포함하여 교회의 이름으로 모이는 거의 모든 집회에는 신사참배 등의 국가의례와 시국강연이 어김없이 행해졌다. 또 그 교회들은 애국헌금과 황군위문대를 모아 납부하였다. 개교회 ‘애국’활동의 또 다른 형태로는 징병감사회와 국방기관 음악회의 개최를 들 수 있다.
일제 말기 충청도 지역교회의 전시협력활동은 물론 일제의 외압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앞서 살핀 것과 같이 충청도 지역교회 내부에는 그 외압을 빌미로 일제에 협력하는 지도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은 중앙의 교단 상층부와 지방의 신도들을 연결하는 중간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교단의 협력 방침을 실제로 충실하게 집행하고 확산시켰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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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5-04-21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Society For Korean Church History -> The Society of the History of Christianity in Korea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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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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