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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 건축물의 파괴와 보존의 의지에 관한 연구 -제1차 세계 대전 전후 프랑스와 독일의 사례를 중심으로 = Destruction and Preservation of Architectural Monuments -in the Context of World War I France and Germany-
저자
김영철 (배재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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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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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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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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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al Monuments have to overcome the challenge of time due to physical properties. The fundamental issue must be grounded in an understanding of history and art to overcome this challenge and make them sustainable. Many efforts to preserve the monuments through the 19th century and at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to record them in scientific form were successful. To be aware of the meaning of the art and not to be ‘barbare’ anymore was behind the promotion of these activities. Above all, the 19th-century French architect Viollet-le-Duc contrasted the concept of barbarism with the concept of art and tried to redefine architecture as art. The ritual to escape ‘barbare’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end. This consciousness was also at work in the propaganda for the preservation of medieval architectural monuments in France, led by intellectuals such as Rodin. Also, the concept of ‘barbare’ served as an important yardstick whenever the cause of their loss was questioned while important monuments were destroyed in the First World War. From the viewpoint of Germany, Dehio was the pioneer of the preservation movement and documentation of monuments. The principle he advocated was preservation, not restoration. The historian Pevsner, who moved to England, also surveyed monuments in various parts of England and left them in the same format as Dehio. These facts show that architecture as art plays a fundamental role in the history of human life.
더보기기념비 건축물은 그 자체의 물리적 특성으로 인한 시간의 도전 이외에도 철거나 전쟁으로 인한 파괴 같은 외적 도전을 극복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역사와 예술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이러한 도전은 극복되고 기념비들은 지속 가능할 수 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기념비의 보존과 기록을 위한 노력은 여러 성과를 거두었다. 한편으로 예술의 의미를 중심에 두고 더 이상 '야만적'이 되지 않겠다는 것이 이러한 활동의 이면에 있었다. 무엇보다 19세기 프랑스 건축가 비올레르뒤크는 야만의 개념과 예술의 개념을 대조하고, 건축을 예술로 재정의하려 했다. 결국 '야만성'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의식은 로댕과 같은 지식인들이 이끄는 프랑스의 중세 건축 기념비 보존을 위한 프로파간다에서도 작용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요한 기념물이 파괴되는 동안 그들의 손실 원인을 의심할 때마다 '야만'의 개념은 중요한 잣대로 작용했다. 다른 한편, 독일의 관점에서 데히오는 기념비의 보존 운동과 기록화의 선구자였다. 그가 주창한 원칙은 복원이 아니라 보존이었다. 영국으로 이주한 역사가 펩스너도 잉글랜드 각지의 기념물을 조사하여 데히오와 같은 방식으로 남겼다. 이러한 사실들은 예술로서의 건축이 인간의 삶을 위한 역사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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