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靜觀一禪의 생애와 정토사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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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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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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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면
71-113(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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靜觀一禪(1533-1608)의 생애와 사상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는 淸虛休靜의 上足弟子로 靜觀派를 형성하였다. 그의 생애 에서 자세한 행장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속리산과 덕유산에서 수행하였고, 法華經을 강독한 법화행자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연로함과 병을 이유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 승려로서의 기본에 어긋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승려가 전쟁이라고 하여 속복을 입고 무기를 손에 들고 살생의 현 장에 참여하는 것은 불법에 벗어난 일로 보았다. 그의 師弟인 四溟惟政에게도 하루 속히 산중으로 환귀본처하여 승려의 본연 의 자세로 돌아올 것을 간곡히 권유하고 있다. 그는 시와 문장에 능하였으며, 교학에도 밝았던 대문장가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의 문장과 시에 대해서는 몇 편의 연구논 문이 있으나 그의 사상에 대해서 조명한 글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의 사상을 정리한다면, 詩文에 밝으면서, 선수행을 중심한 禪師이면서 정토신앙을 권장한 정토가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선사상은 看話禪을 주로 하면서도 불성사상과 自性淸淨論에 기 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것은 圓覺經과 涅槃經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는 화두를 百丈野弧話를 주로 하였으며, 다른 사람에게도 권장하였다. 이러한 화두를 참구하다보니 百丈이 중시하였던 열반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여 진다. 다음으로 정토관은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선사들이 중시하였던 自性彌陀 唯心淨土보다 指方立相的인 서방정토와 칭명염불을 중시하였다. 그는 박거사의 법명을 지워주면서 보낸 題號文에서 서방정토 왕생극락을 발원케 하고 있다. 즉 타력적인 정토신 앙과 염불수행을 중시하였다. 한편 그는 부모나 스승을 위한 薦度齋 를 올리면서 영가들의 왕생극락을 발원하고 있다. 영가들을 위하여 공덕을 짓고, 불사 를 하면서 그로 인해 왕생극락하기를 발원하고 있다. 이외에도 나라를 위해 전쟁으로 죽어간 영가와 각종 비명횡사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영혼들을 달래는 水陸齋를 베풀었다. 여 기서는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자세히 언급하면서 그들의 왕생을 발원하고 있다. 타력신앙의 교리적 근거는 정토삼부경을 중 시하였으며, 그의 교학적 기반은 法華經에 두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수륙재의 절차와 장엄 진행상황 읽은 경전 등을 기록 하므로 앞으로 불교의례 연구에 크게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즉 정간일선은 자력수행인 선수행과 타력신앙인 정토신앙을 겸수하면서 불교교단과 전통적인 수행을 지켜온 선지식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더보기I looked into Jŏnggwan Ilsŏn's(靜觀一禪)(1533-1608) lifetime and thoughts. As the most beloved discipline of 淸虛休靜, he made 靜觀派, Jŏnggwan Sect. There has not been known a lot for the detailed past in his lifetime, but he practiced in the Mt. Sokri and Dŏkyu, and he can be considered as Byeophwa practitioner who read ‘The lotus sutra’. Even though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occurred, he wasn't participated in the war for the reasons of old and disease. The main reason why he wasn't participated in the war was because it got off the basis as a monk. He regarded that monks wore the clothing lay people wore, held a weapon on a hand, and were participated in the place to kill human beings as the thing gotten off the Buddhist law. Also to his brother in Buddhist law, 四溟惟政, 靜觀一禪 highly suggested him to come back his temple in the mountain as soon as possible and the original place as a monk. He was talented in poetry and writing, and also should be evaluated as a great writer who was brilliant in the study of doctrine. There were some research dissertations for writing and poetry, but the writing giving a light on his thoughts was just a start. When it comes to arranging his thoughts, he was brilliant to poetry, a Seon master who focused on the Seon practice, and a Jeongto practitioner who recommended the Jeongto faith. His idea of Seon was mainly focused on 看話 禪 and based on the idea of Bulseong and 自性淸淨論. It seems like influences of ‘The sutra of perfect enlightenment’ and ‘The sutra of Nirvana’. He frequently mentioned 百丈 野弧話 as a topic, and also recommended it to others. Investigating such a topic, it seemed like that it was influenced by ‘the sutra of Nirvana’ which Beakjang focused on. For the next, the point of view for Jeongto was generally regarded as the importance for Western Jeongto and Chingmyeong prayer which was 指方立相的, rather than 自性彌陀 唯心淨土 which our ancestors highly focused on. He let Mr. Park pray to be born into Western Jeongto in 題號文 which was sent giving him a dharma name. That is, he focused on Jeongto faith and Buddhist prayer practice by outside help. On the other hand, he devoted 薦度齋 for his parents and teachers, and prayed for deads to be born into heaven. Doing virtuous deeds, and giving helps to temple prospered, He prayed for deads to be born into heaven based on those actions. Above this, he devoted 水陸齋 to soothe the spirits who were dead in wars for the nation and the ghosts who were reluctantly dead and met unnatural death. Here, it mentioned a very horrible situation of the time in detail, and prayed their rebirth into heaven. The doctrinal basis of faith by outside help was from the fact that it focused on Jeongto Sambugyeong, it seems that his doctrinal basis was on ‘the lotus sutra’. Especially there were some records about the process and the progress of vyuha work of the water and land ceremony, the read sutras etc, so it would be helpful a lot to the research of Buddhist rituals for a head of time. That is, 靜觀一禪 should be evaluated as the chief abbot who had kept the Buddhist order and traditional practice doing simultaneously Seon practice by oneself and Jeongto faith by outside he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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