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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화엄교학과 화엄사찰 = Hwaom thought and Hwaom temples of 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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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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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65(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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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la Hwaom Sect which was founded by Uisang constructed and interpreted Hwaom thought at Buseoksa in late 7th century to early 8th century by Uisang`s direct disciples. Pyohun and Jinjeong leaded the study of Hwaom thought in the beginning years, and discussed about unique Silla Hwaom thought like "5 feet body". In those disciples there were several different views. Dosin and Jitong wrote Dosinjang and Jitonggi which noted Uisang`s lectures. Sangwon handed over Uisang and senior`s thought to next generation. Uisang`s direct disciples deeply interested in Tang Huayen. Six of the "Ten disciples" wrote commentaries about Uisang`s lecture. Their thoughts founded on Uisang`s, and they accepted Fazang`s thought limitedly like Jiaofenji and Qixinlun. Uisang`s direct disciples worked at Buseoksa and Sobaeksan boundaries. In late Silla the "Ten Temples" were counted for important Hwaom temple. The temples which were not known are more than distinguished one among "Ten Temples". Because "Ten Temples" were consisted of temples located in the country. In Buseoksa Sillim succeeded to Uisang`s thought through lecturing main concepts of Hwaom thought, and in 8th century Buseoksa became the supreme temple of Silla Hwaom school. Sillim had gone to Tang and accepted Tang Huayen thought. Sillim lectured at Bulguksa, Weolyusa and Sedalsa, so Hwaom temples were spread widely. After Sillim, his disciples succeeded and established the main stream of Silla Hwaom in Buseoksa. Hwaomsa appeared great temple by Yeongi in 8th century. Yeongi lead new tendency by conducting Hwaom and Qixin. He wrote enormous commentaries about Hwaom, and interpretas of Qixin too. Yeongi made a set of transcribing 80 Huayenjing, and made a set of stone-transcribing 60 Huayenjing. The thought of Hwaomsa sect founded on traditional Silla Hwaom and observed Tang Huayen carefully. So they searching for a new tendency. Younggwan, who seems to lived at Hwaomsa in 9th century, succeeded the main stream of Silla Hwaom through describing main concepts of them. In the other hand, he accepted Fazang`s Huayen significantly, so he showed the same tendency with Yeongi. Between the thought of Namak and Bukak, there was a slight difference which based on accepting Tang Huayen.
더보기의상이 정립한 신라 화엄종은 7세기 후반부터 8세기 전반까지 직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浮石寺를 토대로 신라 화엄사상의 정립과 해석을 통한 교학 연마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졌다. 表訓과 眞定이 초기의 교학 분위기를 이끌어 五尺身과 같은 신라 화엄 특유의 개념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들 사이에는 의견의 차이가 있어 의상 문도 사이에서도 근간은 유사하지만 세부적으로 교학상의 다양한 관점이 전개되었다. 道身과 智通은 의상의 강의를 필록한 『道身章』과 『錐洞記』를 지어 신라 화엄교학 전승의 중심이 되었다. 相元은 의상과 선배 도반들의 사상을 제자에게 전수하여 화엄사상 전승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의상의 직제자들도 당의 화엄 경향 등 새로운 변화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十大弟子의 개념은 신라 말부터 나타났는데 거명된 제자 중 6인이 의상의 강의와 연관된 저술 활동을 전개한 공통점을 갖는다. 이들의 교학은 의상의 사상을 근간으로 하지만 『교분기』나 『기신론』에 대한 관심에서 보듯이 法藏의 교학을 일정하게 수용하였다. 의상 직제자들의 활동은 부석사와 인근의 소백산 태백산 등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9세기 말에 傳敎十刹이 등장하였다. 십찰에 거론된 사찰이 위치도 명확하지 않거나 사찰의 위상을 알 수 없는 것이 더 많은 것은 전교십찰이 지방에서 화엄사상을 선양한 사찰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8세기에 부석사는 神琳이 활동하며 신라 화엄의 주요 개념을 강의하며 의상의 사상 전통을 계승하고 신라 화엄사상을 체계화하여 화엄종찰을 이루었다. 신림은 당에 다녀오기도 하고 중국 화엄도 수용하였다. 부석사는 신림에 이어 제자들이 계승하며 의상 화엄사상의 적통을 확립하였다. 신림은 한편으로 佛國寺 月瑜寺 世達寺 등에서 화엄을 강의하여 화엄 사찰의 터전을 확대하였다. 華嚴寺는 8세기 중반에 대찰로 등장하며 그 중심에 緣起가 있다. 화엄과 기신을 병행하며 새로운 사상 경향을 선도한 연기는 연기는 방대한 분량의 화엄 교학 의문을 해결하는 저서도 짓고 기신론 해석서도 지었다. 연기는 엄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80 화엄경의 寫經을 이루었고, 화엄사 장륙전에는 신라 전통의 60 화엄을 石經으로 만들어 새겼다. 화엄사의 사상적 지향은 신라 전통의 60화엄에 토대를 두면서도 80화엄을 중심으로한 당의 새로운 화엄학을 예의 주시하며 새로운 화엄학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9세기에 화엄사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이는 南岳靈觀은 신라 전통 화엄의 주요 개념을 서술하고 의상 화엄의 중심 사상을 계승하면서 법장의 사상도 중요하게 수용하여 연기와 상통하는 사상 경향을 보였고 이것이 남악 화엄사의 사상적 경향이었다. 남악과 북악의 교리적 차이는 근본적인 토대는 크게 다르지 않고, 당 화엄의 수용 정도에 따른 포용성의 차이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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