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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량의 제 2차 순회전도 여정과 지리적인 탐구 동래 출발 일시와 대구 도착까지의 일정과 장소를 중심으로 = The Second Journey and the Geographic Exploration of William M. Baird(Bae We Ryang, 배위량 , 裵緯良 ) : Focus on the Date and Time of Dongnae Departure and Daegu Arr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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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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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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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123(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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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left in his diary that he traveled from the second trip of April - May 1893 to the Kyongsang inland region. Through his efforts, the inhabitants of Gyeongsang could have the opportunity to interact with Christianity. So, Finding the way to travel in the Second World War was not only an important attempt to understand the history of our Korean Church, but also created an important opportunity for Christianity to be transmitted to the inland area of Kyongsang. He lived in Daegu for four months, then moved to Seoul and then went to Pyongyang for missionary activities. He settled the Pyongyang reception room movement and established Soongsil University, Korea’s first modern university, and also translated the Bible into Korean. He did not stay in Gyeongsang for long and moved back to Seoul.
However, considering the geographical situation and historical situation of Daegu, he appointed Daegu as the local Mission Branch in Gyeongsang. The establishment of the Gyeongsang Mission Base in inside of the south gate of Daegu for settlement in Daegu was an important starting point for the transplantation of Christian culture, advanced Western education, and science into the Daegu and Gyeongsang inner areas. In this regard, the second mission trip, in which he moved to pioneer the Gyeongsang Mission Branch, has significance not only in missionary but also in cultural history. He looked at where and when the second trip started his journey and where he had officially set out for the second trip. The writer convinced that he had made an evangelistic journey along the way to Yeongam. In this paper, he specified that the date and place where he officially set off on the second trip started from Dongrae on April 18, 1893. In addition, he explored the place of accommodation in Cheongdo, where he stayed the day before he entered Daegu, and identified a small village called ‘Ansaipyuri’ as ‘Ansaewol’(‘안새월’) village.
배위량은 1893년 4월부터 5월까지 여행한 제 2차 전도 여행에서 경상도 내륙 지방에 까지 여행한 후 일기에 남겼다. 이런 배위량의 노고를 통하여 경상도 내륙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에 접촉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배위량이 제 2차 전도 여행에서 움직인 길을 찾는 것은 우리 한국교회의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시도일 뿐만 아니라, 경상도 내륙 지방에 그리스도교가 전해지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배위량은 대구에 이사한 후, 오래 머물지 않고 4개월 정도 후, 서울로 이동했다. 나중에는 평양으로 가서 선교활동을 했다. 그는 평양에서 사랑방 운동을 정착시키고 한국 최초의 근대 대학인 숭실대학을 세웠다. 또한 그는 한국어 성경 번역에도 종사하였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배위량이 언제 어디서 제 2차 전도 여행을 공식적으로 출발했는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필자는 배위량이 영남대로의 길을 따라 그리고 조선 통신사의 길을 따라 전도 여행을 했다는 확신으로 그의 전도 여정의 한 부분을 연구했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배위량이 공식적으로 제 2차 전도 여행을 출발한 일시와 장소를 ‘1983년 4월 18일’ 영남대로의 출발지인 ‘동래’(東萊)로 특정하였다. 동래를 출발한 날인 1893년 4월 18일에 배위량은 일기를 쓰지 않았다. 그는 19일에 일기를 썼는데, 그가 쓴 19일 일기에는 18일의 일정과 19일의 일정이 다 들어 있다고 보면서 필자는 그가 쓴 19일 일기의 전반부는 18일 일정이라고 보았다. 즉19일 일기의 전반부는 18일의 행적이고 후반부는 19일의 행적으로 보았다. 18일과 19일에 이루어진 행적에 대한 일기의 마무리는 19일 밤에 물금의 주막에서 썼다고 판단된다. 배위량이 언급한 숙박 시설인 inn은 ‘여관’이나 ‘여인숙’이 아니라 ‘주막’(酒幕)이다. 그것은 그 당시에 조선에는 근대적인 숙박시설인 ‘여관’이나 ‘여 인숙’이 아직 존재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구에 들어오기 하루 전에 머물렀던 청도에서의 숙박 장소에 대하여 탐구하여 그가 일기에 표기한 ‘Ansaipyuri’ 를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의 한 마을인 ‘안새월’로 특정하였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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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1-10-06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Journal of Presbyterian College and Theological Seminary -> Korea Presbyterian Journal of Theology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0-11-22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통합신학연구원 -> 기독교사상과문화연구원영문명 : 미등록 -> Center for Studies of Christian Thoughts and Culture | KCI후보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69 | 0.69 | 0.6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6 | 0.58 | 0.855 | 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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