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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말기 조선인의 남양군도 이주와 그 성격(1939~1941) = The movement of Korean to the South Sea Islands and the characteristic at the end of Japanese imperialism(1939~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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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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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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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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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276(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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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1939~1941년 남양군도 거주 조선인 인구변화추이를 고찰하여 보고, 이것을 조선인 노무자 송출 관련 자료와 비교하여 봄으로써 당시 조선인 이주규모 및 그 성격을 파악하여 보고자 하였다.
1939년부터 남양군도 척식주체들은 조선에서 노무자를 대규모로 모집하기 시작하였다. 1939년 당시 조선에서의 노무자 송출규모는 남양군도 조선인 인구증가 규모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전체 규모뿐만 아니라 각 지역 증가추이도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당시 조선인의 남양군도 이주가 대부분 모집에 의해 충당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주자 규모뿐만 아니라 전체이주자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졌다. 1938년 당시 조선인 이주자는 125명으로 전체 방인이주자의 1.3%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1939년에는 1,264명이 이주하여 23%를 차지하였고, 1941년에는 2,361명으로 42%를 점유하였다.
이 시기 조선인의 남양군도 이주증가는 일본의 전쟁수행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 전시체제가 정비되어가자 일본으로부터 남양군도로 유입되던 노무자수가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남양군도에서 노무자 부족현상이 심화되어 갔고, 이의 타개책으로써 조선인 노무자 도입이 추진되었던 것이다.
조선인 노무자 이주는 조선총독부와 각 도의 사회과가 모집 및 송출에 깊이 개입하는 등 식민당국의 적극적인 협력 하에 이루어졌다. 모집지역과 인원이 대략 결정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는 할당모집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인들은 이주 후 지속적으로 회사측의 관리와 통제 하에 놓여있었다. 회사측에서는 이주노무자들에 대하여 작업교육과 정신교육을 동시에 실시하였다. 이것은 수동적인 노동력 수탈을 넘어서 조선인의 능동적이고 다각적인 협조를 유도하기 위하여 취해진 조치였다. 일반적으로 조선인 노무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있었으며, 임금도 실질적으로는 매우 적은 금액이 지급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조선인 노무자 모집은 대개 18세 이상 45세 이하의 신체건장한 남자를 대상으로 하였다. 노무자 모집주체들은 가족동반을 권장하였는데, 이것은 이주자들의 성공적인 정주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편이었다.
This study is to review the status of the population change in the South Sea Islands of Korean between 1939 and 1941, I try to understand the characters and the size of the immigration of Korean to compare this data with the labor collection data toward the South Sea Islands from other parts of the country at the time. From the year of 1939, authorities of the South Sea Islands colonization had started to collect the labor forces with large quantity inside Korea. The size of the recruiting of the labor forces from Korea was very similar to the South Sea Island at that time.
The whole of the increase was remarkably consistent with each of the region growth. This means that the part of the increasing population of the South Sea Islands is covered by the recruitment at that time.
Not only the size of immigration, but also the rate of the whole immigration versus the labor immigration became very high. In 1938, the whole immigration of Korean was only 125 people, no more than 1.3% of the population of South Sea Island. However, the number was 1,264, account for 23% of immigration in 1939, and 2,361 people with 42% in 1941.
The increase of the population of the South Sea Islands at this time seems to have been related to the Japan's conduct of the war. After the Japan-Chinese war, the people of labor forces that immigrated to the South Sea Islands began to decrease. In result, the lack of labor forces in the South Sea Islands became more severe and the recruiting of labor forces from other parts of the country to the South Sea Islands was introduced to try to come up with a remedy.
The immigration of the Korean labor forces was aided with the deep participation of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朝鮮總督府, and social departments of each region with their active cooperation. It is regarded as an assigned to recruiting because of recruiting regions and the numbers have been decided roughly.
After the immigration Korean was constantly under the control of company and their management. The company was training for the work and the moral education on them. This was not exploited the passive labor forces, and try to lead them to become a positive and multi-dimensional forces.
Generally the labor of Korean was working in very substandard conditions with very low salary.
The object of the collecting was the between all able-bodied men over 18 to 45 years old. The authority of recruiting entity recommended accompanying of the family so that they could successfully settle down in South Sea Islands.
분석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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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81 | 0.81 | 0.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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