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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경인물(點景人物)의 변천과 현대적 조형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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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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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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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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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10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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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경인물(點景人物)은 동양의 산수화에 등장하는 간단하고 작게 묘사된 그림 속 인물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주로 기승절경을 여행하며 자연과 교감하는 친자연적 존재로 혹은 옛 이야기나 문학작품을 그린 고사(故事)의 주인공 등을 소재로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이는 산수를 표현하는데 있어 인간을 배제하는 대신, 인간과 더불어 조화로운 삼라만상을 대변하는 것임을 알려준다. 여기에는 삼재(三才)를 구성하는 천지인(天地人)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원리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상이 깔려 있다. 이러한 점경인물의 전통은 산수화가 발전하게 되는 만당(晩唐)이후 오대(五代, 907-979)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하여, 이후 북송대(北宋代, 960-1126)에 대관식 산수화가 유행하면서 높은 산이나 계곡을 유람하는 여행자들이 산수화의 고정적인 소재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거대한 산 사이를 여행하는 여행자의 표상이며, 자연과 교감하는 보편적인 인간상으로 구현되었던 점경인물상은 산수화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자리잡게 된다. 동양의 세계관을 담고 있는 이러한 관념적 표상은 산수화의 정형화된 형식으로 조선의 문인과 작가들에게도 고스란히 수용되었으며, 특히 조선 후기 정선과 김홍도에 이르러 점경인물이 ‘보편적 인간상’ 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시대를 반영하는 현실적 인물의, 현실적 풍속으로 변모되었고, 이후 20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유효한 형태로 전승되었다.
근본적으로 그 독특하고도 의미 있는 기능에도 불구하고, 동양의 산수화에서 점경인물은 해당 장르의 한 구성요소로서 부가적 영역에 위치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내 작업에서 점경인물은 회화 상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훨씬 중요한 의미와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2004년 이후 본인의 지속적인 작품 주제가 된 <기억의 간격> 시리즈는 우연에 의해 생성된 거대한 얼룩-때로는 수묵의, 때로는 식물과 광물로부터 추출한 얼룩으로 이루어진 추상적 화면 위로 작은 점경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전통 산수화에서의 점경인물들이 보편적 인간상이었다면, 이들 작품에서는 모두 작가의 삶과 그 개별적 기억에서 추출된 특정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가진다. 이는 바로 개인의 삶을 고스란히 투영하는 ‘사진’이라는 매개에 의한 것으로, 각각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추출된 기억을 무작위로 선택하여 그 일부만을 하나의 화면 속에 구현함으로써 나에게는 기억의 환원을 매개하는 표식으로, 관객에게는 원래의 의미로부터 박탈된 채 각각의 개별적 연상과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따라서 본인의 작품에서 점경인물은 단순히 부가적 형식을 넘어서, 내 개인의 기억과 타자의 심상 작용에 관련된 작품의 주제에서 주요한 표식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우연에 의해 생성된 거대한 얼룩의 추상적 평면 위로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자그마한 인물들은 공간의 추상성을 구상적인 풍경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와 대조적으로 여전히 추상적인 배경의 색 면들은 몽환적인, 혹은 모호한 상태 그대로 남겨둔다. 이를 통해 내 작품에서 점경인물의 첨가는 추상적인 배경 화면을 추상과 구상의 모호한 중간 지점에 위치시키는 동시에 양자의 대조를 통해 각각의 특색은 더욱 생명력을 얻게된다.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 본인의 추상적 심상화는 비로소 나와 타인의 세계와 관계를 맺게되고 생동감 넘치는 풍경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로써 <기억의 간격> 연작은 작가 개인의 삶과 기억을 토대로 하는 심상적 풍경화,혹은 추상적 심상풍경화로 접근 될 수 있다. 따라서 전통 산수화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가적인 요소로서 관례적으로 그려졌던 ‘점경인물’은 내 작품에서는 새로운 가능성과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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