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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정운복의 정치와 언론활동- 영선군 이준용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 = Political and Journalistic Activities of Jeong Un-bok in the last period of ‘Great Han empire’ - Focusing on the relationship with Yeongsungun,Lee Jun-Yong -
저자
발행기관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Sokdang Academic Research Institute of Traditional Culture Dong-A University)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3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23-148(26쪽)
제공처
This study aims to reveal the history of Jeong Un-bok(鄭雲復), a politician and journalist in Korea just before the Japanese occupation. According to existing research, Jeong Un-bok(鄭雲復) went to Japan to study in 1895, and then traveled to England with Yeongsungun(永宣君) Lee Jun-Yong(李埈鎔), the grandson of Heungseon Daewongun(興宣大院君) in 1897. He returned to Korea alone in 1899, and was arrested by the authorities because of involvement with Lee Jun-Yong(李埈鎔), and went into exile on Heuksan island(黑山島), returning in 1904. Since then, he became a leading patriotic intellectual, acting as a public speaker in Daehanjaganghoe(大韓自强會) and as a staff writer in Kyungsung Newspaper(京城日報) and Imperial Newspaper(帝國新聞).
However, beyond what we know about Jeong Un-bok(鄭雲復), there are still many areas of his life that remain opaque. While Hosoi Hajime(細井肇) made an assessment on Jeong Un-bok(鄭雲復) as a man who changed from ‘anti-Japanese(排日)’ to ‘pro-Japanese(親日)’, there are more complex contradictions in his life that are not seized by Hosoi's perspective.
In order to investigate the more abundant picture of Jeong Un-bok(鄭雲復)’s life, this study focuses on the fact that he was more strongly under the control by the political power of the Unhyeon Palace(雲峴宮), from Heungseon Daewongun(興宣大院君) to Youngsungun(永宣君). Jeong Un- bok(鄭雲復) was much closer to the influential sphere of the Unhyeon Palace(雲峴宮) than previously known. It is even possible that his studying in Japan was for the purpose of serving Lee Jun-Yong(李埈鎔).
In this meaing, Jeong Un-bok(鄭雲復)'s activities after he appeared in the intellectual circles in Hwangseong(皇城), 1904, were swaying between the subordination to the master-servant relationship of the past and the desire for self-revealing in the modern political public sphere. With the return of Lee Jun-Yong(李埈鎔) in 1907, Jeong Un-bok(鄭雲復) publicly abolished the master-servant relationship and declared his isolation from the past, and moved toward modern media and politics. The result of the selection was the very reality of pro-Japanese(親日).
본 연구는 일제 강점 직전의 한국에서 정치인이자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탄해 정운복의 이력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정운복은 1895년에 일본에 유학한 뒤 대원군의 손자인 영선군과 함께 영국에 유학을 다녀왔고, 1899년에 한국으로 돌아온 뒤 경무청에 체포되어 흑산도 유배를 떠났다가 1904년에 돌아왔다. 이후 1906년부터 대한자강회 활동을 통해 연설가로 활동하면서, 대표적인 애국계몽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했고, 1907년부터 뎨국신문의 주필로 활동하면서 많은 논설을 쓰기도 했다.
다만, 이처럼 정운복에 대해 기존에 알려진 사실 외에, 그의 삶에는 여전히 불투명한 영역이 상당히 존재한다. 동시대 호소이 하지메(細井肇)는 정운복이 ‘배일’에서 ‘친일’로 변절한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그의 생애는 호소이의 시선으로 포착되지 않는 더 복잡한 모순이 존재한다.
본 논문에서는 정운복의 삶을 좀 더 입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그가 흥선대원군-영선군으로 이어지는 운현궁의 정치적 인력에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더 강하게 끌리고 있었던 사실에 주목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들을 통해 정운복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이준용과 가까운 사이였고, 애초에 그의 일본 유학 자체가 이준용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1904년 황성의 지식인 사회에 등장한 이후의 그의 활동은 과거의 주종관계에 대한 종속과 근대적 정치 공론장에서의 자기 현시적 욕망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1907년 이준용의 귀국을 기점으로 정운복은 대외적으로는 주종관계를 폐하고, 그와의 관계를 절연하면서 근대적인 언론과 정치를 향해 나아간다. 그 귀결이 바로 친일이라는 현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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