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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烏合寺의 창건과 정치적 성격 = The construction of Ohapsa in the Baekje Dynasty and its political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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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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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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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168(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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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오합사가 보령지역에 조성된 배경과 목적, 그리고 이를 지원한 단월세력의 문제, 오합사의 정치적 성격 등을 당시의 정국상황과 관련하여 검토한 것이다.
<숭암산성주사사적>에 따르면, 오합사는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목적의 호국사찰로 창건되었다고 한다. 창건 시기는 <숭암산 성주사사적>의 기록을 통해 보면 혜왕대 초창되어 무왕 17년에 완공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위덕왕대 초창되었던 왕흥사를 법왕이 호국사찰로 중창하였다는 견해를 받아들일 경우, 오합사를 법왕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호국사찰로 보기는 어렵다. 또한 왕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호국사찰을 조영하였을까 하는 점도 의문이다. 그리고 오합사의 창건 주체는 혜왕의 왕위계승을 지지했던 사씨세력으로 추정된다. 동성왕 17년(495) 남제에 작위를 요청함에 있어 사법명이 매라왕에 제수된 바가 있는데, 매라는 궁남지에서 출토된 목간의 「매라성법리원(邁羅城法利源)」의 매라와 동일 지명일 가능성이 높다. 매라는 보령지역으로 추정되며, 이들 지역은 사씨의 식읍내지는 세력권에 편제되었던 곳이었다. 그로 인해 사씨가 오합사 창건의 단월이 될 수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의자왕 15년에 일어난 괴변은 오합사의 정치적 성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하다. 오합사의 괴변은 『삼국사기』뿐만 아니라 『삼국유사』와 『일본서기』등에도 기록되고 있다. 이는 오합사의 괴변이 그만큼 특별한 정치적 의미와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의자왕 19년에 일어난 태자궁 및 상좌평과 관련된 괴변이 사씨세력과 밀접하게 관련된 점을 통해서 살펴볼 때 오합사의 괴변도 사씨세력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즉, 의자왕 4년에 태자로 책봉되었던 융을 축출하고 태자에 오른 효는 사씨출신의 왕비인 군대부인의 소생이었으며, 상좌평 역시 사씨세력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오합사의 괴변을 시작으로 일어난 태자궁과 상좌평 관련 괴변은 모두 사씨세력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은 백제말기의 정치적 상황으로 볼 때 오합사의 창건을 경제적으로 지원한 것은 사씨세력이었으며, 창건 주체도 사씨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오합사가 혜왕과 법왕의 단명에도 불구하고 무왕대 완공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사씨세력의 재정적 지원에 의해 가능하였으며, 오합사는 사씨의 원찰로서 기능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This paper reviews the background and purpose of the establishment of Ohapsa (a buddhist temple) in Seongju, Boryeong, and examines the problems of the powers behind the building of Ohapsa, and the political nature of the temple, in light of the political landscape of those days.
According to The Historical Site of Seongjusa, Sungamsan, Ohapsa was created as a patriotic temple to honor the spirits of soldiers who perished in war. The same source also suggests that its construction started in the King Hye era and was completed in the 17th year of the King Mu era. If, however, the view that Wangheungsa, initially built in the King Wideok era, was reconstructed by King Beop as a patriotic temple is accepted, Ohapsa can hardly be considered as a patriotic temple created as per the wishes of the same king. Furthermore, it is doubted that a patriotic temple was built in a location far too distant from the capital. The main agent of its construction is supposedly the influential Sa family who supported the King Hye succeeding to the throne. In the 17th year (495) of the King Dongseong era, in the request for noble titles to the Southern Qi Dynasty, Sabeopmyeong was appointed as King Maera. Maera is possibly the same as the geographical name as in Maeraseongbeopriwon (邁羅城法利源) which appears as part of the text on a wood board unearthed in Gungnamji. Maera is supposedly the area around Boryeong, which fell in the land owned by the Sa family or their territory of influence. This is understandably how the family had come to support the construction of Ohapsa.
The strange incident, in particular, which took place in the 15th year of King Euija, is important in understanding the political nature of the temple. The incident is mentioned not only in Samguksagi, but in Samgukyusa and Ilbonseogi, a possible indication that the incident had special political and symbolic implications. Given that another sinister incident which took place in the 19th year of the same king, involving Taejagung and Sangjwapyeong, was closely related with the Sa family, it could be inferred that the incident involving Ohapsa was also related with the family; Hyo, who became the crown prince after ousting Yung, the initial crown prince appointed in the fourth year of King Euija, was the son of Madam Gundae. The queen consort was from the Sa family, and so was Sangjwapyeong. The series of both incidents are, therefore, understood as in relation with the family.
Considering the political landscape of the late Baekje Dynasty, it could be posited that it was the Sa family who funded and led the building of Ohapsa. It can be also suggested that despite the short lives of King Hye and King Beop, it was the family's financial support that enabled the construction to be completed in the King Mu era, and that the temple functioned as a religious focal point for the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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