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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부의 出家와 出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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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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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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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20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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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흥왕대에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한 대표적 인물로서는 거칠부를 손꼽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를 본격적으로 다룬 적이 없다는 사실은 생각 밖의 일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거칠부의 활동상에 대해서 특별히 그의 출가와 연관지어 살펴봄으로써 실상에 접근하여 보고자 하였다.
거칠부의 집안은 불교가 국가적 종교로서 공인되기 오래전부터 각별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관료로 나아가기에 앞서 승려의 길을 걸었던 독특한 경험을 하였다. 어린 나이로 출가한 배경에는 집안의 분위기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전국을 자유롭게 주유, 유랑하면서 습득한 그 시절의 체험은 관료로 나아갔을 때 곧장 정책에 반영되었다. 특히 고구려 승려 혜량과의 운명적 만남은 그를 실천에 옮기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551년 친정을 개시하면서 연호를 開國으로 내건 진흥왕은 혜량을 국통으로 맞아들여 그에 어울리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갔던 것으로 보인다. 진흥왕대는 이제 막 불교가 국가적 종교로서 공인된 상태였으므로 기반은 제대로 갖추어지지를 못하였다. 그래서 진흥왕은 고구려 망명 승려 혜량의 주장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취약점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대표적 호국도량인 황룡사의 창건은 그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이로써 불교는 정치와 밀착되어가 명실상부한 불교식 왕명시대를 구축하여 갔다. 진흥왕은 스스로 신라의 전륜성왕으로 자처하였으니 그럴 만한 이론적 사상적 근거는 거의 대부분 혜량에게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거칠부는 관료로서 기반을 굳혀가고 특히 진흥왕의 핵심 보좌역을 수행하게 되면서 화랑제의 창설을 건의한 것 같다. 화랑도 교육의 중심적 내용은 건의자 거칠부의 성장 과정 및 출가의 경험으로부터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거칠부는 어린 출가의 경험을 배경으로 진흥왕 일대를 통해 숱한 업적을 쌓음으로써 삼국통일에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A representative person, who was the most remarkably active during King Jinheung in the Shilla Dynasty, can be Geochilbu(居柒夫). Nonetheless, there was no historic document that addressed him in full scale seems to be quite unusual. This study intended to approach facts by examining his activities in association with his leaving home to become a Buddhist monk.
Geochilbu’s family had special relation with Buddhism a long time before Buddhism was recognized as the national religion. He had a unique experience of taking a path as a monk, before becoming a government official. His family atmosphere strongly affected the background that he left home to be a Buddhist monk at young age. The experiences those days, freely making a trip across the nation and wandering around were reflected to his policy, when he became a government official. Especially, fateful encounter with Koguryo Buddhist priest, Hyeryang(惠亮), hugely affected Geochilbu to put those experiences into practice. As King Jinheung started direct rule in 551 using era name, Gaeguk(開國), embraced Hyeryang as Guktong (top place in the Buddhist monastic order), policies in harmony with such an appointment seemed to be implemented in full scale. During the rein of King Jinheung, Buddhism was just recognized as the national religion, and its basis was not properly laid. For this reason, King Jinheung tried to overcome such a weakness by actively accepting Koguryo’s exile monk, Hyeryang’s assertions. A typical patriotic temple, Hwangryongsa Temple, is conjectured to be founded by accepting Hyeryang’s proposal. In this way, Buddhism began to build Buddhism style king’s order era in name and reality through close adherence between Buddhism with politics. King Jinheung called himself Shilla’s Chakravatin. The most plausible theoretic basis of such thought seemed to come from Hyeryang.
As Geochilbu solidified his footing as a government official, and carried out core aid role of King Jinheung, he appeared to propose the foundation of Hwarang (Shilla chivalry) system. The main content of Hwarangdo (the code of Shilla chivalry) education appears to be derived from Geochilbu’s growth process and the expedience of his leaving home to be a Buddhist monk. Likewise, Geochilbu laid the foundation for Shilla’s unification of three kingdoms by building up many achievements through out King Jinheung’s period at the backdrop of his experience of leaving home to be a Buddhist monk at early age.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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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7-07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Korean Ancient Historical Association -> The Society for Ancient Korean History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1.69 | 1.69 | 1.8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1.64 | 1.57 | 3.463 | 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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