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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부안 유생 기행현의 『홍재일기』와 祕訣의 유행 = Hongjae Diary of a Confucian Ki Haeng- hyeon in Buan and the prevalence of secret prophecies in the 19th-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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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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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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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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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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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400(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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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jae Diary was written by Ki Haeng-hyeon (1843~?) who lived in Honghae Village, Namha-myeon (currently Jusan- myeon), Buan-gun, in Jeolla-do. Hongjae Diary, written by Ki Haeng-hyun from the age of 24 to 69, is considered an important historical source that can specifically confirm the local history of Buan and Jeolla-do in the late 19th century. In particular, there are many records that give a detailed glimpse of Joseon’s social situations in the late 19th century in Hongjae Diary.
There are many records of secret prophecies[圖讖], feng shui[風 水] and Gusan[求山], which were related to children’s songs and Jeonggamrok, which were circulated at the time.
What is noteworthy in Hongjae Diary is that the ‘Bigyeol[祕訣]’of September 18, 1866 is was very similar to the Bigyeol’mentioned in Choi Je-woo’s statements. Children’s songs[童謠] were also popular. Children’s songs reflect the times because they were distributed for the purpose of inciting the people. However, the Hongjae Diary contains many children’s songs that have been popular since the Imo Rebellion in 1882.
For example, there are children’s songs related to the period after the famine in 1888, the Gobu Rebellion in 1884, and the Yeonghakdang Rebellion in 1899. Ki Haeng-hyeon’s record of “Children’s Song of the Year”suggests that children’s songs were popular every year, and I think that the religious ‘Bigyeol’and spells of Donghak were naturally accepted because critical children’s songs reflecting the times were popular.
Hongjae Diary, ‘Bigyeol’related to Jeonggamrok distributed at the time was also recorded. At that time, rumors about Jeonggamrok were popular, and in the late 19th century, various secrets influenced by Jeonggamrok were widely through political rhetoric were diluted. ‘Yu-saeng’, who aimed for a Neo-Confucian life, found comfort by finding the best places and shelters presented in secrets of the confusion.
Interestingly, While interacting with Suwon Baek Clan living in Ye-dong, Ki Haeng-hyeon encountered secret prophecies such as Jeong gam rok. It is estimated that the Suwon Baek Clan in Buan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development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1894). However, Ki Haeng-hyeon was interested in the shelters such as ‘Sibseungji’ among the contents of Jeong gam rok. Ki Haeng-hyeon’s interest in the ‘Sibseungji’was also confirmed in relation to finding good tombs of his ancestors. Ki Haeng-hyeon looked around with people around him or acquaintances who were familiar with feng shui when choosing the graves of his father and other relatives. Ki Haeng-hyun’s interest in ‘Sibseungji’and Gusan was intended to console such unstable reality and lead to the better life in the future generations.
『홍재일기』는 전라도 부안군 주산면 홍해마을에 거주한 기행현(奇幸 鉉:1843~?)이 1866년부터 1911년까지 쓴 일기이다. 기행현이 약 45년동안 쓴 『홍재일기』는 19세기 후반의 부안과 전라도 지역의 ‘역사상(歷 史像)’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당시 유행하는 동요(童謠)와 비결(祕訣), 『정감록(鄭鑑錄)』에 연원한비기(祕記), 풍수(風水)와 구산(求山)에 대해 많이 기록되어 있다.
『홍재일기』의 비결 가운데 1866년 9월 18일 ‘부결(浮訣)’은 최제우의공초 내용에 언급된 <利在弓弓>과 매우 유사하여 주목할 만하다. 최제우가 언급한 <利在松松>과 <利在家家>, <利在田田>, <利在弓弓> 등은19세기 『정감록』이 유포되면서 민간에 널리 알려진 비결이었는데 부안에서 <理在弓弓乙乙之間>이라고 변용되어 떠돌았다. 이와 같이 <弓弓 乙乙>을 비롯한 동학의 비결과 주문은 여러 형태로 변용되어 회자되고있었다. 동학의 교세가 불과 30여 년 만에 확산된 데에는 『정감록』에연원한 각종 비결에 깃들어 있는 ‘다의적(多意的)’ 의미를 수용하는 집단적 정서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비결보다 다소 순화된 형태로 동요도 유행하였다. 동요는 ‘일종의 암시를 담아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의도로 유포되기에도참이나 비결과 동일한 기능을 하였다. 『홍재일기』에는 1882년 임오군란 이후에 세태가 반영된 동요가 수록돼있다. ‘개국 이래 처음 겪는대흉년’이라고 회자된 1888년 무자대기근 이후 시대적 상황을 빗댄 동요와 1884년 ‘고부민란’과 1899년 ‘영학당의 난’과 관련된 동요도 확인된다. 기행현이 ‘금년동요(今年童謠)’라고 표기한 것으로 미루어 해마다동요가 유행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홍재일기』에는 ‘비기’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는데, 기행현은 당시회자되고 있는 비기 가운데 치병(治病)의 방책(方策)이나 재앙을 피할수 있는 비법(秘法)에 대해 적어 두었다. 그런데 기행현은 이러한 비기를 대부분 예동에 사는 수원백씨와 교유하는 과정에서 접하였다. 그들은 동학농민혁명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활약한 부안의 사족이었다.
기행현이 수원백씨의 집에서 본 비기는 대체로 『정감록』의 십승지와같은 피난처에 대한 내용이다. 십승지에 대한 기행현의 관심은 ‘구산(求山)’과 관련해서도 확인된다. 그의 십승지에 대한 관심과 명당 혈처를 찾는 구산은 불안한 현실에 대한 위로와 후손의 발복(發福)을 위한것이었다. 당시 ‘음택풍수’와 산송(山訟)으로 인한 논란으로 이에 대한비판도 제기되었으나 일상에 뿌리를 깊이 내린 음택풍수를 근절하기어려웠다.
기행현도 ‘일상적’으로 각종 비결과 비기, 풍수와 구산에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는 ‘유생’으로서 정체성을 훼손하는 경계를 넘어가지는 않았다. 때문에 그는 동학에 입교하라는 압박에도 불구하고 끝내유생으로 남았다. 반면에 무속 신앙을 넘어서는 교리와 경전을 갖춘새로운 ‘사상’을 수용한 동학인들은 그 경계를 뛰어 넘어 새로운 시대로 나가는 선택을 하였다. 19세기 후반 비결과 동요, 비기가 일상화된 시대에서 1860년 최제우가 창시하고 최시형이 정비한 동학은 새로운시대를 염원하는 인민의 여망을 담아내는 새로운 ‘종교’로 발전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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