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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고악(鼓樂)과 고취(鼓吹): 대명의례(對明儀禮)를 중심으로 = Goak(鼓樂) and Gochwi(鼓吹) in Early Joseon: Focusing on Rituals for Myng(明)
저자
임영선 (영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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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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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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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24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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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udy examined the process and aspects of how 'Goak(鼓樂)' of rituals for the Myng Dynasty in the late Goryeo period was established as 'Gochui(鼓吹)' bands in the early Joseon era, focusing on the fact that the record of Goak appears only in rituals for Myng performed in the late Goryeo period. To this end, the circumstances of how the rituals for Myng was introduced in the era of King Gongmin in the late Goryeo Kingdom and the roles of Goak in the relevant rituals were examined. Subsequently, the process of completing Goak of rituals for Myng in Joseon from the establishment of Joseon to the King Seongjong era, in which the Ye-ak(禮樂) system was complete, was examined.
'Beonguguiju(蕃國儀注)' was introduced from Myng in the King Gongmin era of late Goryeo. According to the book, while welcoming or sending messages and gifts from the Myng Dynasty or diplomatic letters to Myng, Goak would take the role of guiding and perform. As records of Goak are confirmed only in the rituals for Myng in Goryeosa高麗史 Yeji禮志, it can be seen that the name Goak was introduced from the Myng Dynasty.
After the establishment of Joseon, Goak performed the same function in rituals for Myng, and its roles also can be confirmed in Yeongsasijegeupjobuui(迎賜諡祭及弔賻儀) which is a Hyungrye(凶禮) ritual, in addition to Yeongjoseoui(迎調書儀)' and Yeongchickseoui(迎勅書儀). According to a record, Jeonakseo took charge of Goak in 1450, which shows Goak began to be perceived as a music band at that time. Gukjooryeui國朝五禮儀 recorded Jeonbugochwi(前部鼓吹)' was organized in Hwanguijang(黃儀仗) installed in rituals for Myng, thus it can be said that while the essence of Goak of the traditional rituals for Myng was not clear, it was established as Jeonbugochwi by this time, and the organization of Jeonbugochwi was clearly established in Akhakgwebeom樂學軌範. Fact that Goak of rituals of Myng was established as Jeonbugochwi of Hwanguijang means that the principle of Gochwi(鼓吹) maintenance from the early Joseon era that includes a Gochwi band performing Haengak(行樂) in Nobu(鹵簿) or Uijang(儀仗) was equally applied, of which historic meaning can be found in that it was a case of Joseon establishing the performing procedure of rituals introduced from outside in its consistent system.
고려사 「예지」에 수록된 여러 의례 중에 고려 말 대명의례에 한하여 ‘고악(鼓樂)’이라는 악대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본고는 이 점에 주목하여, 고려 말 공민왕대에 대명의례가 시행된 정황과 해당 의례에서 고악이 담당한 역할에 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조선이 건국된 이후부터 예악 제도가 완비되는 성종대에 이르기까지 대명의례의 고악이 조선의 고취악대 체계 안에서 정립되는 과정을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고려 말 대명의례 의주에 기록된 ‘고악’이 조선의 고취악대로 자리매김하는 양상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고려 말 공민왕대에 명나라의 번국의주(蕃國儀注)가 유입되었는데, 이 의주에 명나라로부터 온 조서나 하사물, 그리고 명나라로 보내는 표문을 환영하거나 배웅할 때 고악이 앞에서 인도하며 주악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같은 고악의 기록은 명나라로부터 들어온 대명의례 의주에서만 확인되므로, ‘고악’은 명나라로부터 전해진 명칭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대명의례에서 고악이 동일한 기능을 하였으며, 가례에 속한 대명의례 뿐 아니라 흉례에 속한 영사시제급조부의(迎賜諡祭及弔賻儀) 등에서도 고악의 역할이 동일하게 확인된다. 고려 말 이래 고악은 악기 편성 등에서 실체가 불분명했는데, 1450년부터 전악서가 고악을 담당하는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늦어도 이 시기부터는 고악이 단순 신호음이 아닌 음악을 연주하는 악대로 인식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국조오례의에 이르러 대명의례에 설치되는 황의장(黃儀仗)에 전부고취(前部鼓吹)가 포함되면서, 이 무렵에 대명의례의 고악은 황의장에 구성된 전부고취로 정립되었으며, 이후 악학궤범에서 전부고취의 악기 편성이 분명하게 확립되었다.
요컨대, 고려 말 명나라에서 유입된 의주에 기록된 고악이 조선 성종대 이르러 황의장의 전부고취로 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조선에는 여러 종류의 고취악대가 있었으며, 그 중 행악(行樂)을 담당하는 고취악대는 노부 혹은 의장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정비되었는데, 대명의례의 고악 역시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었다. 이로 보아 명나라 의주에 기록된 명칭과 용법으로서의 고악이 조선에서 악대로서의 실체를 갖추어 전부고취로 정립되는 과정은, 외부에서 유입된 악대의 용법을 조선의 일관된 체계 하에 정립한 사례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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