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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경기도 광주지역의 3․1운동 =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in Gwangju, Gyeonggi Prov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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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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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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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17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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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per is a study on the 3․1 Movement in Gwangju, Gyeonggi Province. Since the end of the Chosun, new ideas such as Donghak and Christian have spread and the Donghak Farmers' Movement, raising of the Righteous Armies and the government bond compensation movement have developed in Gwangju as well. Based on this growth of national consciousness, the 3․1 Movement in 1919 was also staged in Gwangju. Previous studies have indicated that the 3․1 Movement in Gwangju began on March 26, but this study found that the March 12th Movement. This was largely due to the opening of the ‘Samil Movement database’ of the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This is another example of the importance of historical research to excavate new data and provide easier access for researchers.
The characteristics of the 3․1 Movement in Gwangju can be divided into those led by those who returned from attending the directorate of King Gojong in Gyeongseong(京城) and those who staged a campaign for the uprising under the leadership of Christianity and Cheondoism(天道敎). The Independence movement led by Christianity and Cheondoism can be seen as being influenced by the so-called "33 national representatives." And the 3․1 Movement in Gwangju was staged against Japanese colonial authorities, such as the Myeon(面) office and the Military Manpower Administration, and the demonstrators used violent means such as raiding and throwing at these places. As a result, two of people were killed and 10 of people injured in the March 26 Sangli Manse Movement in Guchon-myeon, and about 1,500 protesters battled with the police during the raid on Gwangju County Office on March 28, resulting in six deaths and 10 injuries. In addition, Nam Tae-hoe, the NaksanMyeonjang, and Lee Jun-gu, the Dolma Myeonjang put the national flag high in his house and submitted their resignations, while GuchonMyeonjang, the head of GuchonMyeon, died after being shot to death, supported the campaign In the end, the March 1Independence Movement in Gwangju was able to confirm that the protests were violent, led by figures who had taken part in King Gojong's bureau and returned home by Christian and Chondoist forces. This allowed us to check the influence of the so-called "national representatives 33" in the March 1Independence Movement in Gwangju.
본고는 일제하 경기도 광주지역의 3․1운동에 대한 연구이다. 한말 이래 동학, 기독교 등 새로운 사상이 전파되고 동학농민운동, 의병전쟁, 국채보상운동 등이 전개되면서 광주지역에서도 민족의식이 성장하였음을 논증하였다. 이러한 민족의식의 성장을 바탕으로 광주지역에서도 1919년 3․1운동이 전개되었다. 기존 연구에서는 광주지역 3․1운동이 3월 26일 시작되었다고 하였으나 본고에서는 3월 12일로 파악하였다. 이는 국사편찬위원회 삼일운동데이터베이스의 개통에 힘입은 바 크다. 여기에서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이를 연구자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주는 것이 역사 연구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광주지역 3․1운동의 특징은 경성에서 거행된 고종의 국장에 참여하였다가 돌아온 인물들이 주도한 경우와 기독교․천도교의 주도로 만세운동이 전개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기독교․천도교가 주도한 만세운동은 이른바 ‘민족대표 33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광주지역 3․1운동은 면사무소나 헌병주재소 등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관을 대상을 전개되었으며, 시위군중은 이들 장소를 습격하고 투석하는 등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하였다. 이 결과 3월 26일 구천면 상일리 만세운동 때에는 헌병의 발포로 2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하였고, 3월 28일에는 약 1,500명의 시위대가 광주군청을 습격하는 과정에서 헌병과 격투를 벌인 끝에 헌병이 발표하여 사망자 6명, 부상자 10명이 발생하였다. 또한 낙생면장 남태희와 돌마면장 이준구가 자신의 집에 태극기를 높이 걸어놓고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만세운동을 지지하였으며, 구천면장도 만세를 부르다가 총탄에 맞아 사망하는 등 면장들이 만세운동을 지지하였다는 점이다. 결국 광주지역 3․1운동은 고종의 국장에 참여했다가 귀향한 인사들과 기독교․천도교 세력에 의해 주도 하에 시위가 폭력적으로 전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광주지역 3․1운동에는 이른바 ‘민족대표 33인’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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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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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81 | 0.81 | 0.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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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 | 0.66 | 1.616 | 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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