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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人들이 인정한 高句麗人의 正體性 - 唐代墓誌銘에 보이는 高句麗의 別稱(朝鮮·三韓·扶餘) 分析을 중심으로 - = The Ruined Koguryo People’s Identification Acknowledged by the Chinese in terms of Koguryo’s Nick Name(Chosun, Samhan, Buyo, and Jinhan) in Tang Period
저자
최진열 (경상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9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후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09-255(47쪽)
KCI 피인용횟수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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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기관
In this paper, I analized the identification of the Ruined Koguryo
People using the memorial inscription in Tang period, and proved that
the Chinese in Tang Period acknowledged Koguryo People as the
Korean ancesters identifying the one with Chosun, Samhan, Buyo
and Jinhan, which meant that Koguryo belonged to the Korean history.
I analized epitaph of the Ruined Koguryo People which showed
birthplace or identity, family histoy of the dead. A few Korean and
Chinese students argued that some Ruined Koguryo People were
assimilated by Chinese, because they insisted that they are a distinguished
family of Bohai (渤海), i.e. Bohai Gao family (渤海高氏). But I
maintained that it is not absolutely true because it was related with
non-Chinese people or census registration policy. First, Tang government
recognied that the second generation of non-Chinese people
imigrated or moved by conquest were Chinese subject at law. So they
have one’s legal domicile designated by Chinese province or county
names. Second, Chinese government disagreed that the conquered
identifed their ex-independent country. So it insisted that ex-opponent
never used their country name, which applied to Koguryo as well as Turk and Uighur. Third, Some conquored Koguryo People
were general or soldiers, so they moved the army posts in capital or
frontiers, which was reconied their birth place or registered domicile.
Some Chinese wrote epitaph of the Ruined Koguryo People and
identfied the other with people of Chosun, Samhan, Buyo and Jinhan,
which were ancestrial Korean countries. they were synonyms of
Koguryo in context of the memorial inscription. This proved that
Chinese in Tang Period recognized both have same historical identity
as well as ethnic, cutural, or social similarity. Many contemporary
Chinese insisted Koguryo pertained to Chinese history, but their
ancesrter in Tang period already agreed that Koguryo was one of the
Korean ancient countries in Korean History.
본 논문에서 唐에서 활동했던 高句麗 遺民들의 墓誌銘의 본적 표기 등을 중심으로 高句麗 遺民들의 정체성 문제를 고찰하였다. 먼저 선행연구성과와 唐代 墓誌銘을 분석하면 15인이 高句麗 遺民으로 확인된다.
먼저 필자가 遺民 세대별로 작성한 표를 보면, 선행연구처럼 遺民 3대와 4대인 高震․高氏夫人 모녀와 高欽德은 高句麗 遺民이 아니라 ‘渤海人’을 자칭하였는데, 魏晉南北朝부터 唐代까지 高氏 가운데 최고 名門인 渤海高氏의 本籍을 冒稱한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唐代 혹은 이전에 중국에서 거주했던 이민족들의 門閥 冒稱이 보이므로 墓誌銘에 사용하는 상투적인 표현이며, 정체성 약화로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墓誌銘에 보이는 高句麗 遺民들의 출신 혹은 본적 표기는 자신 혹은 유가족들의 뜻뿐만 아니라 당시 唐의 이민족 정책 및 戶籍 정책과 관련 있었기 때문이다.
唐代 唐代 이민족과 戶籍에 관한 법률을 검토하면, 蕃戶(內附한 이민족들)은 唐에 귀부한 후 두 번째 세대에 唐의 百姓들과 동일하게 취급되었다. 이는 호적상 중국의 州縣名 혹은 郡縣名을 본적으로 부여받아 編戶로 등록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唐代에 內附하거나 唐의 지배를 받은 突厥․鐵勒 등의 이민족 출신 墓誌銘의 표기에서도 이 점이 확인된다. 또 唐代 이민족 출신들의 墓誌銘에 표기된 출신과 본적을 살펴보면, 高句麗와 突厥처럼 唐에 강력히 대항했거나 唐에서 다루기 어려웠던 나라의 內附民 혹은 遺民에게는 자신의 國名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반면 唐에게 만만했던 중앙아시아 각국이나 百濟人들은 자신의 國名을 墓誌銘에 표기할 수 있었다. 이는 唐朝廷의 정책 때문에 일률적이고 차별적인 표기가 가능했음을 시사한다. 다음으로 일부 高句麗 遺民들의 墓誌銘에 보이는 唐代 郡縣名의 本籍을 살펴보면, 당시 遺民들이 군인으로 주둔하던 지역이나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예컨대 營州城傍 高句麗人으로 표기된 王思禮처럼 唐의 변방에 근무했던 高句麗人들은 근무 지역의 州郡縣 명칭을 딴 本籍을 취하였다. 요컨대 高句麗 遺民들의 본적 표기는 당시 이민족의 戶籍 규정에 따랐을 가능성이 높으며, 墓誌銘에 ‘高句麗’라는 국명이 없거나 중국식 郡縣名으로 표기되었다고 해서 특히 遺民 3-4세대가 高句麗人이라는 정체성이 희미해졌거나 혹은 中國人으로 동화된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高句麗 遺民들의 墓誌銘에 이들을 ‘朝鮮人’, 혹은 ‘三韓人’ 등으로 기록하고 글의 문맥상 高句麗 대신 別稱으로 ‘朝鮮’, ‘三韓’, ‘辰韓’, ‘扶餘’ 등을 사용한 점이 주목된다. 高句麗의 별칭으로 사용된 ‘朝鮮’, ‘三韓’, ‘辰韓’, ‘扶餘’는 모두 ‘高句麗’의 동의어로 사용되었으는데, 이는 唐代 중국인들이 高句麗와 朝鮮․三韓․辰韓․扶餘를 동일시했던 증거였다.
唐代 中國人들은 왜 高句麗를 ‘朝鮮’과 ‘三韓’, ‘辰韓’, ‘扶餘’ 등과 동일한 이유는 먼저 唐代 중국인들이 ‘朝鮮’과 ‘扶餘’는 高句麗와 역사적 계승관계, 혹은 宗主國과 屬國의 관계였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唐代 중국인들이 ‘三韓’과 ‘辰韓’이 高句麗와 동일시한 것은 墓誌銘뿐만 아니라 『隋書』와 『舊唐書』 등지의 문헌에도 보인다. 이는 기존의 연구에서 지적한 것처럼 高句麗․百濟․新羅를 三韓으로 표기하여 역사적․사회적․문화적․인종적으로 동질적인 국가 ...
분석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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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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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18 | 1.18 | 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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