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의 신화학을 넘어
저자
발행기관
발행연도
2008년
작성언어
Korean
자료형태
한국연구재단(NRF)
‘탈현대’를 살고 있는 오늘도 ‘주체’와 ‘노동’ 및 ‘문화’의 테제는 ‘현대(근대)’의 시절 못지않게 첨예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 역할을 한다. 그래서 본 연구과제에서 큰 틀로 다루려고 하는 것은 주체․노동․문화의 문제이다. 그 내용의 범위는 현대와 탈현대로 제한할 것이다. 주체와 관련된 이론의 틀에서 헤겔(주․객 동일자)․마르크스(존재와 의식/ 토대와 상부구조)의 문제를 포이어바하(직관주의: 개개의 심성론)․쇼펜하우어(고상한 도덕: ‘욕망의 억제’)․니체(일체 가치의 전도: ‘욕망의 해방’) 등의 논지와 대조비교해 보면서 주체의 계몽과 해방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들을 그 시대의 조건과 관련하여 입체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이때 상부구조로서의 문예(문화) 이론들이 당대 주체들의 의식 변화에 어떤 영향을 입히게 되었고, 그 결과로써 인간 주체가 얼마나 ‘신화’(공포)를 벗어날 수 있었는지, 아니면 오히려 ‘계몽의 신화’에 포섭된 것은 아닌지 함께 반추해볼 것이다.
‘계몽의 신화학을 넘어’의 2부에서는 ‘노동’의 문제를 다룰 것이다. 노동의 문제는 근대로부터 오늘 탈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풀어야할 많은 숙제(사물화·소외된 노동·계급/계층 갈등·성의 상품화 등)를 남기고 있다. 근대 자본주의는 노동에서 성립된 체제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형성이 봉건주의의 억압적 굴레를 벗어나게 한 인류의 일정한 진보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 바 있지만, 자본주의는 여러 가지 파생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근대의 계몽이 신화의 마술에서 인간을 해방시켰지만, 그 결과의 하나인 ‘세계의 탈마법화’는 ‘물신화(物神化)’의 신을 창조함으로써 또 다른 ‘신화의 세계’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런데 계몽 이전의 신화의 세계와 계몽 이후의 세계에서의 신화적 성격의 차이는 전자의 경우 인간의 ‘관념’이 만든 세계라고 한다면, 후자는 인간의 ‘물질’이 만든 세계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 반응도 다르게 나타난다. 계몽 이전의 신화의 대상은 ‘공포’의 대상이었던 반면에 ‘탈마법의 세계’에서 그 대상은 ‘행복’과 ‘희열’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공통점도 있다. 그것은 대상을 ‘숭배’한다는 점이다. ‘상품의 물신숭배’(마르크스)가 현대인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본 연구과제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3부에서는 ‘문화’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오늘 우리시대의 문화는 마술과 신화의 평면세계의 그림코드로부터 출발해서 논리와 체계의 역사세계의 문자코드를 거쳐 ‘다중’의 점의 집합체로 이루어지는 디지털코드에 이르렀다.(빌렘 플루서Vilem Flusser) 물론 문화의 이런 변천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은 ‘노동’임이 분명하다.
노동과 문화의 관계에서 ‘억압’의 핵을 지적한 대표적 인물로는 아마도 프로이트(S. Freud)일 것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류의 문명과 문화의 발전에는 ‘억압’이 필연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곧 ‘필요억압’이라는 것이다. 프로이트에 앞서 니체는 인류의 문화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로고스와 이런저런 제도와 법을 통해 인간의 본원적 ‘욕망’을 억압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욕망’의 해방을 강변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서 어디까지가 ‘필요억압’이며, 누가 그것을 결정하는가, 그리고 ‘욕망’의 해방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이 해방은 타자의 욕망을 ‘억압’할 가능성은 없는가하는 물음에서 답을 구할 수가 없다. 물론 문화의 형성 과정 자체가 여러 힘들이 작용하는 복합성을 띠기 때문에 이러한 물음에 정답을 내리는 것은 애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필요억압’을 최소화하고, ‘욕망해방’을 확대하면서 타자의 희생을 극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마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계몽’과 ‘이성’은 ‘신화’의 세계 속에서 그 자체 스스로 존재하는 신(神)일 수 없다. 그것이 ‘도구적 이성’(호르크하이머M. Horkheimer)이 되는가, 아니면 ‘합리적 이성’(베버)이 되는가, 또는 ‘인간적 이성’(루카치)이 되는가의 문제는 결국 역사를 만들어가는 인간의 손에 달려있다. 인간의 손속에서도 각 ‘주체들’의 몫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에서 담당하는 각 주체들의 역할을 빼고 ‘이성’ 혹은 ‘계몽’ 그 자체를 문제로 삼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성 물신주의’가 될 것이다. ‘계몽의 신화학을 넘어’는 이 ‘이성 물신주의’를 끊임없이 경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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