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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마 운동과 북한 연극 -연극 제작법을 중심으로- = Cheollima Movement and North Korea’s thea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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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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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udy focuses on the fact that researches on North Korean theater related to Cheollima Movement in the 1960s when North Korea was on the fast track have not been made and aims to analyze the aspect of accepting public performance of the spirit of Cheollima that appeared in the production process of North Korean theater from 1960 to the mid-1960s.
As the result of this study, it was found that Cheollima Movement in the 1960s was a popular movement for economic construction and exerted strong influences all over North Korea. Kim Il-seong demanded the literary artists to describe the heroic struggles of the people in the Cheollima era, and this demand was converged into ‘reality experience,’ and ‘collective creations.’ Of course, the theatrical circles quickly took the lead in practicing Kim Il-seong’s instructions. As a result, ‘reality experience,’ and ‘collective creations’ brought to the theatrical circles a new creation methods in the production process of the joint creation of plays, the materialization of new communistic human models equipped with party spirit and technology, and the creation of lines/characters/scenes through real persons.
This method of creation may or may not be a totally new method, but its meaning needs to be illuminated together with the circumstances in which Kim Jeong-il, after graduating from university in 1964, designated the literary artist circles as his foothold of political starting point. After the purge of Gapsan faction of North Korea in 1967, Kim Jeong-il became the strong heir to Kim Il-seong. In this period, he advocated ‘Juchae style’ literary art through operatic revolution first and the Kim Jeong-il style method of creation became unique creation theory of North Korean literary art circles and it has been displaying power up to now.
If so, the ‘joint creation’ method in the short period of 1960s can be the last creation method that was free/had been free in North Korea. Such things as the observation of internal/external behavior of original characters, the completion of lines heard on the scene through discussion, the creation through collaboration of actors and the playwright, the conception of real persons’ life into scenes, active discussion on the side effects of creation methods are certainly creative ideas of theatrical people in North Korea and by extension the experimental spirit. This is the meaning of this period in the 70 year-history of North Korean theater. It is because creation and objectification are the basic elements of theater.
본 연구는 북한이 성공의 가도를 달리던 1960년대의 천리마 운동과 관련된 북한 연극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1960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북한 연극의 제작과정에 나타난 천리마 정신의 공연적 수용 양상 분석을 목적으로 하였다.
연구결과 1960년대 천리마 운동은 경제건설을 위한 대중 운동으로 북한 전역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이 발견되었다. 김일성은 문학 예술인들에게 천리마 시대 사람들의 영웅적 투쟁 모습을 그릴 것을 요구했고, 이 요구는 ‘현실체험’과 ‘집체창작’으로 수렴되었다. 연극계는 물론 신속하게 김일성의 교시 실천에 앞장섰다. 그 결과 ‘현실체험’과 ‘집체창작’은 제작 과정에 있어서 희곡의 공동창작을, 당성과 기술성을 겸비한 공산주의적 새 인간형의 구현을, 실제 인물을 통한 대사/인물/장면 창조라는 새로운 창작 방법을 연극계에 가져왔다.
이 같은 창작 방법은 전적으로 새로운 방식일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의미를 1964년 김정일이 대학을 졸업하고, 정치적 출발점의 발판을 문학예술계로 지정한 상황과 함께 조명할 필요가 있다. 1967년 북한의 갑산파 숙청 이후, 김정일은 김일성의 굳건한 후계자가 되었다. 이 시기 그는 먼저 가극혁명을 통해 ‘주체식’ 문학예술을 주장했고, 김정일식 창작방법은 북한 문학예술계의 유일무이한 창작론이 되었으며 현재까지 그 위력을 과시한다.
그렇다면 1960년대 이 짧은 시기의 ‘공동창작’ 방법은 북한에서 자유로운/자유로웠던 마지막 창조 방법일 수 있다. 원형인물의 내적/외적 행동의 관찰, 현장에서 들은 대사를 토의를 거쳐 완성하는 것, 배우들과 극작가의 공동 창작, 실제 인물의 생활을 장면으로 구상하는 것, 창작 방식의 부작용에 대한 활발한 논의 등은 분명 북한 연극인들의 창조적 발상이며 조금 더 확대시키자면 실험 정신이다. 그것이 북한 연극 70년 역사에서 이 시기가 갖는 의미이다. 창조와 객관화는 연극의 기본 요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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