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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 扶蘇山寺址 出土品의 再檢討와 寺刹의 性格 = Reconsideration of Excavated Articles and Character of Buddhist temple concering the Busoshan temple site in Baekje
저자
양은경 (부산대학교)
발행기관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PAEKCHE RESEARCH INSTITUTE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0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67-107(41쪽)
KCI 피인용횟수
9
제공처
부소산사지에서 출토된 소조상은 나무질의 심목을 이용하여 신체부위를 따로 성형하였고 이후 소성, 채색을 하였다. 이러한 제작방식은 사비기 소조상과 동일할 뿐만 아니라 중국 남북조시대 소조상과도 유사하다. 부소산사지 소조상은 극히 제한된 출토 수량에도 불구하고 목탑 내부 初層의 四天柱 사이 공간에 안치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극소형의 크기로 보아 주된 예배대상이 아닌 주불상의 주위에 배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소산사지에서 출토된 벽화벽체편은 3겹의 점토로 성형제작되었다. 이러한 제작기법은 임강사지, 제석사지의 백제 벽화벽체, 중국 영녕사지의 남북조시대 예와 유사하다. 다만 부소산사지 벽화편의 새 그림은 백제, 중국에서의 수목,인동당초문과는 다른 주제로 주목된다.
부소산 목탑지에서는 唐式 대금구가 출토되었는데 능사지, 왕흥사지, 미륵사지, 황룡사지, 중국 하북성 화탑지, 영녕사지에서도 목탑지에서 대금구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부소산사지 출토품 이외의 나머지 예들은 당식 대금구가 아니라 이보다 연대가 이른 형태를 하고 있다. 또한 부소산 대금구는 목탑지의 심초부에서 출토된 것이 아니라 심초부 부근 풍화 암반층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에 왕흥사, 능사의 예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부소산사지 대금구는 지진구의 성격을 지닌 것과 동시에 사리공양품의 성격도 지닌 특이한 예로 판단된다.
중국에서 당식 과대는 북제에 초보적인 형태가 갖추어지며 수대에 이미 성행의 전조가 보이기 시작한 후 당대 7세기대에는 극성하기 시작한다. 백제 7세기대는 수 말기∼당 초기에 해당되는데 당시 중국에서 성행한 당식 과대가 백제에 전래되었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당시 사절단의 교류, 백제 승려들의 장안 유학 등 수당대 백제인의 중국 왕래는 많이 확인된다. 특히 무왕 38년(637년) 당 태종이 백제 사신에게 비단 도포를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는 단순히 도포만이 아닌 복두, 대금구 등 복식 일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점에서 부소산사지 목탑지 부근에서 출토된 대금구들은 637년 당나라 복식의 전래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부소산사지는 뒤로 부소산성을 업고 있고 앞에는 백제 왕궁을 바라보는 위치에 입지해 있는데, 이러한 입지조건은 중국 남조의 건강성의 상황과 유사하다. 특히 건강성 북쪽에 입지한 종산에는 황실발원의 사찰을 비롯하여 많은 사찰들이 건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왕릉, 독서당, 원유 등 품격높은 건물들이 있었다. 부소산사지 역시 출토유물을 통해 7세기대 왕실발원의 사찰로 비정되는데, 산에 사찰을 조성한 이유를 당시 사비도성 내 평지의 협소함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北史』, 『隋書』 등 중국 문헌기록에도 사비도성 내 거주공간이 부족하여 백제인들이 산에 거주하였다는 내용에 주목하여 이같은 추론이 가능하였다.
In Busoshan temple site(扶蘇山寺址), there were excavated clay figures, pieces of mural structure, gilt bronze beltornament, tiles and potteries in 1942 and 1980. Among those excavated materials, reconsideration of clay figures, pieces of mural structure and gilt bronze beltornaments is important part to grasp establishment era and character of Buddhist temple, I examine them as objects of study.
The clay figure which was excavated from Busoshan temple site was made by wooden frame, it was first made body parts separately, and then firing and coloring. These manufacturing process is similar with the clay figures from Sa-bi period and the period of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Although the clay figures in Busoshan temple are very restricted amount, I judged that they were enshrined in the space between the four pillars of the first floor inside the wooden pagoda. Besides, considering their sizes, they were not big enough for the main worship figure, so they were just for enshrining around the main ones.
The pieces of mural structure which were excavated from Busoshan temple site were made up 3 clay lays. This manufacturing techniques are similar with Imgang temple site(臨江寺址), mural structure of Jeshoek temple site(帝釋寺址) and Yong-ning temple site(永寧寺址) of the period of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in China. The new painting of mural structure in Busoshan temple site, however, are different from tree·Honeysuckle Arabesque pattern in Baekje and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There were also excavated beltornament which were similar with ones from Tang dynasty, at the wooden pagoda site in Busoshan temple site. The beltormaments were excavated in wooden pogodasite of Neng temple site(陵寺址), Wangheung temple site(王興寺址), Mireuk temple site(彌勒寺址), Hwangryong temple site(皇龍寺址), Hua pagoda site(華塔址) of Hebei province in China and Yong-ning temple site(永寧寺址), too. However other beltormaments except Busoshan temple site one are more early things than style of Tang dynasty’s materials. Moreover, beltornament from Busoshan temple site had enshrined in weathered rock formation around the central foundation, not in the central foundation of wooden pagoda site, so they have different character from ones from Wangheung temple site and Neng temple site. In other words, the beltormanent from Busoshan temple site were unusual things, that has character as Sarira Reliquriy.
We can notice sign for prevalence of beltornament as Tang style from Sui dynasty when elementary formation of Nothern Qi dynasty, after then they were prevalent in the 7th century in Tang dynasty. The 7th century of Baekje was coincided from the late Sui dynasty to early in the Tang dynasty, so there could be possible that beltormanent as Tang style which were prevalent in China was handed to Baekje. Because there were many interchange of delegation and studying abroad for Buddhist monks in those period. Especially, there was a record about silk robe as royal gift which were given to Baekje envoy from Tang emperor Tai-jong(太宗) in 637(King mu, 38), it must be also given bukdu, beltornament and all custumes, not only silk robe.
Busoshan temple site has similar position with Jiankang city site(建康城) of the Six dynasties in China, it carries on its back Busoshan mountin fortress, and looks forward palace of Baekje front. Especailly there were many temples which were made by royal family in Zong moutnin(鍾山) which were located in the northern side of Jiankang city site, and also the buildings of high level like royal tombs, study place and garden were in same place.
I judge that Busoshan temple site was also made by royal family in th 7th century by excavated materials, and the reason for establishing on the mountain was limited flatland inside the Sa-bi capital city. There were record in Beishi (北史), Suishu (隋書), which were written in China, about limited flatland and lackness...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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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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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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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82 | 0.82 | 0.89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85 | 0.87 | 1.843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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