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삼국사기』 백제본기 耽羅의 실체 검토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3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911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71-100(30쪽)
제공처
『삼국사기』에 따르면 탐라는 문주왕 2년(476)과 동성왕 20년(498)에 백제와 관계를 맺었다. 이에 대해 전통시대 역사가들은 탐라가 고대 제주도 국가에 대한 명칭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근우는 탐라와 백제가 508년 12월에 처음 통교했다고 되어 있는 『日本書紀』 계체기와 『삼국사기』 백제본기가 상충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백제본기의 탐라를 제주도로 보는 데 의구심을 가졌다. 탐라가 제주도라면 동성왕이 무진주[광주]로 출정하기보다 강진・해남 등으로 가야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서기』 신공기 49년조에서 백제가 도륙한 忱彌多禮를 강진・해남으로 비정했는데, 이 지역이 백제본기의 耽羅와 부합한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이근우의 문제의식은 공감을 얻어 이를 기반으로 한 연구성과가 축적되었다. 강봉룡・문안식・김병남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백제의 영산강 유역 진출과 탐라를 관련지어 연구를 진전시켰다. 신설이 탄생한 것이다. 다만 통설을 지지하는 연구도 계속되었다. 백제본기 탐라의 실체에 대한 논의는 통설과 신설이 대립한 채 논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탐라는 비슷한 시기 백제의 외교 상대국으로서 기록되었다. 같은 명칭의 耽羅를 다르게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신설에서 ‘탐라(탐모라)’와 『일본서기』 신공기 49년조의 ‘忱彌多禮’, 『梁職貢圖』의 ‘下枕羅’를 동일한 실체로 본 것은 논리적 기반이 약하다. 탐라 명칭을 검토해보면, ‘耽羅’는 忱彌多禮의 ‘忱彌’와 下枕羅의 ‘枕羅’로 표기된 사례가 없다.
고대에 탐라와 영산강 간 직항로가 있었다면 동성왕의 무진주 출정과 탐라 사신의 사죄는 납득의 여지가 생긴다. 문헌 사료를 통해서 고려~조선 전기까지 강진과 해남 이외에 나주-제주 간 항로가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고고자료를 탐색한 결과 3~5세기 대로 비정되는 나주 월양리 구양 유적, 나주 장동리 수문패총 등에서 제주도산 현무암 석재와 토기가 출토되었다. 5~6세기 대에 영산강 유역에서 유행한 鳥足文土器가 제주 종달리 패총에서도 출토되었다.
탐라가 교류・교섭의 대상으로 백제를 선택한 까닭은 제주도에 없는 철제품과 소금・곡물 등 각종 생필품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탐라는 서남해안 제해권의 동향에 민감했으며 기민하게 대응하였다. 그 결과가 문주왕~동성왕대 탐라 사신의 행보였다. 영산강 유역의 주요 나루에는 탐라 사신이 드나드는 장소가 마련되었을 법하다. 그렇다면 동성왕이 무진주로 온 것과 탐라 사신이 이곳에 찾아와 동성왕에게 사죄함으로써 사태가 무마된 것이 이해가 간다. 『일본서기』 계체기 2년 12월조의 紀年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필요는 없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탐라를 고대 제주도 국가로 보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
The first relationship between ancient Tamna(耽羅) and the Three Kingdoms was recorded in the 476 of King Munju and the 498 of King Dongseong in the Baekje Annals of the Samguk Sagi. The compilers of the Samguk Sagi a nd historians of the traditional period did not doubt the name of the ancient Jeju Island state of Tamna in the Baekje Annals of the Samguk Sagi. Meanwhile, Lee Geun-woo reviewed this. Lee understood that the Nihonshoki(日本書紀) which is said to have first communicated between Tamna and Baekje in December 508, contradicts the original period of the Baekje Annals of the Samguk Sagi . He had doubts about s eeing Tamna in the Baekje Annals of the Samguk Sagi as Jeju Island. If Tamna is Jeju Island, it is natural for King Dongseong to go to Gangjin and Haenam rather than to go to Mujinju(Gwangju). He was also surpri sed that the envoy of Tamna came and apologized even though the distance between MuJinju and Tamna was not a threat. He designated the Tamna of the Baekje Annals of the Samguk Sagi as Gangjin and Haenam areas. Lee Geun–woo’s problem consciousness gained sympathy and research results based on this were accumulated.
In this article, Imaintained a cautious position to see the Tamna of the Samguk Sagi and the Tamna of the Nihonshoki separately. It is questionable whether Tamna, which was recorded under the same name as Baekje’s diplomatic partner at the same time, can be grasped differently. In the new theory, the connection between ‘Tamna(Tammora),’ ‘ChimmiDarye(忱彌多禮)’ by Nihonshoki, and ‘Hachimra(下枕羅)’ by the Liang–Zhigong–Tu(梁職貢圖) has a weak logical basis. In ancient times, if there was a direct route between Tamna and Yeongsangang River, King Dongseong’s appearance in Mujinju and the apology of Tamna envoy are convincing. From literature data, it can be seen that the route between Naju and Jeju was used in addition to Gangjin and Haenam from Goryeo to the early Joseon Dynasty.
As a result of searching for archaeological data, basalt stone and earthenware from Jeju Island were excavated from the Guyang ruins in Wolyang–ri, Naju, where the date of the ruins was not determined from the 3rd to 5th centuries. In addition, bird–footed pottery, which was popular in the Yeongsangang River basin in the 5th and 6th centuries, was also excavated from the shell mound in Jongdal–ri, Jeju. Tamna was sensitive to trends in the southwestern coastal waters and responded quickly. The result was the actions of King Munju and Tamna envoys of King Dongseong.
분석정보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