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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전쟁기 아메리카인들의 심리적 갈등 = Americans’ Psychological Trouble in the American Revolution From George III to George Wash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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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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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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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수록면
139-186(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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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전쟁기 미국인들은 자신들을 억압한 왕과 정치제도로서의 왕정을 곧바로 거부하지 않았다. 그들이 왕과 왕정을 거부하고 새로운 정치형태인 공화국과 대통령을 창조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으며 그만큼의 많은 갈등이 동반되었다. 본 논문은 독립전쟁기 미국인들이 조지 3세를 버리고 조지 워싱턴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에서 어떤 심리적 갈등을 겪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당시 미국인들은 볼링브룩의 개념인 ‘애국적 왕’을 마치 메시아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애국적 왕’은 식민지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식민지인들의 자유와 복리를 위해 노력해주는 정의의 사도였다. 미국인들은 1760년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왕이 된 조지3세가 그들이 애타게 기다렸던 ‘애국적 왕’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그가 설탕법과 인지세법을 폐기했을 때 미국인들의 조지 3세에 대한 찬양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러나 영국정부가 또 다른 여러 억압법들을 만들어 식민지에 적용하게 되자 미국인들은 조지 3세에 대한 희망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차별대우가 심화되고 식민지에 대한 억압조치가 강화되는 가운데 미국인들은 조지 3세가 다시 한 번 억압법들을 폐기해 줄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조지 3세는 미국인들의 움직임을 반란으로 규정하고 군대를 파견해 진압할 것이라는 대답을 보내왔다.
이제 미국인들은 조지 3세가 더 이상 ‘애국적 왕’이 아니라 여겼다. 그들은 새로운 ‘애국적 왕’을 찾았고 그가 바로 대륙군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이었다. 미국인들은 전쟁이 한창 중일 때 계속해서 워싱턴을 찬양했으며 그가 새로운 ‘애국적 왕’이라는 점을 극구 강조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전쟁이 끝나갈 무렵 ‘애국적 왕’에 대한 자신들의 미련을 워싱턴이 완수해 주기를 고대했다. 해밀턴과 매디슨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군사적 권력을 가진 워싱턴에게 왕이나 군주가 되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심지어 많은 군인들은 워싱턴에게 군사적 쿠데타를 통해 정치권력까지 소유하는 강력한 군주가 되어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워싱턴은 이런 종류의 모든 요구를 거부하고 자신의 권력을 정당정부인 대륙회의에 반납하고 고향으로 은퇴했다.
워싱턴 스스로는 왕이 되는 것을 몹시도 거부했지만 당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그가 자신들의 마음속에 절망만을 남긴 조지 3세를 대신해 새로운 희망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어쨌든 워싱턴은 조지 3세가 추방당하고 생긴 진공상태를 매운 새로운 왕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봉급을 거절하고, 중요한 사안마다 대륙회의에 보고하고, 개인 재산까지 헌납하고, 승리를 위해 혼신을 다하고, 그리고 주어진 권력을 포기하는 그의 행동은 왕이 아닌 새로운 리더(대통령)를 창조해 낼 수 있는 길을 미국인들에게 열어 주었다. 이런 의미에서 워싱턴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미국인들의 심리적 갈등을 잘 다스린 진정한 ‘애국자’였다.
This paper examined whether Americans experienced some psychological conflict in the process of being independent when they abandoned George III and instead chose George Washington.
At that time, Americans were waiting for a ‘patriotic king’, concept of Bolingbrook like the Messiah. A ‘patriotic king’ was the apostle of justice that strived for freedom and welfare of the colony and elimination of discrimination against the colony. In 1760 after the war, Americans were thinking of the new king(George III) as a ‘patriotic king’ they had been anxiously waiting for. In particular, Americans praised George III and soared high in the sky when he disposed of the Sugar Act and Stamp Act. However, the British government made a number of other repressive laws that applied to the colony and then Americans began to doubt the hope of George III. Amid the deepening and strengthening the discrimination and the repressive measures against the colony, Americans thought George III once again disposed of repressive laws. But George III defined the Americans’ movement as a rebellion, and his response would have sent troops to quell.
From that time on, Americans no longer regarded George III as a "patriotic king. They found a new ‘patriotic king’ who was a Commander-in-Chief of the Continental Army, George Washington. Americans were willing to praise Washington and emphasized the fact that he was the new ‘patriotic king’ when the war was in full swing. So, Americans looked forward to Washington for the completion of their thoughts for a ‘patriotic king.’ Many people including Hamilton and Madison demanded that the king or monarch should provide Washington with military power. Even many soldiers wanted Washington to be a powerful monarch by a military coup. But Washington refused all requests of this kind, returned his power to the Continental Congress, retired and went back to his hometown.
Washington said that being a king or a dictator was the saddest. But most Americans were eager and hoping to see Washington become a king on behalf of George III. Anyway, Washington was there as the new king filling the vacuum caused by George III being deported. Washington ruled psychological conflicts of American people in the transition from monarchy to republic, and he was a true ‘patri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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