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于勒의 생애와 활동 - 정치적 측면을 중심으로 - = Uruk's Life and Activities - Focused on political aspects -
저자
정동락 (대가야박물관)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09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65-301(37쪽)
KCI 피인용횟수
6
제공처
소장기관
于勒은 490년대 무렵 대가야의 省熱縣에서 출생하였다. 당시 성열현은 정치ㆍ문화적으로 앞선 지역이었으며, 대가야의 왕명이 직접 관철되는 곳이었다. 우륵은 성열현의 문화적 특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역량을 키워나갔다. 그 후 520년대 초반경 嘉實(悉)王의 부름을 받고 대가야의 都城으로 入京하게 된다. 우륵을 소환한 가실왕은 아마도 522년 신라와 결혼동맹을 맺은 異惱王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5세기 후반 대가야는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고, 이를 배경으로 오늘날 전라도 일원에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권역을 아우르는 국가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6세기에 들어와 섬진강 유역에 대한 백제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대가야권 세력들이 잠식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실왕은 유교적인 禮樂사상을 바탕으로 한 대가야권 통합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에 대내적으로 정치개혁과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였고, 대외적으로는 백제의 東進에 대응하여 신라와의 동맹을 추진하였다. 가실왕은 개혁 추진을 위해 성열현 출신의 우륵을 전격 발탁하였다. 이는 자신을 지지할 세력으로 기왕의 정치세력이 아니라, 우륵으로 대표되는 성열현 세력을 선택했음을 의미한다. 우륵은 가실왕의 이념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야금 12곡을 작곡하였다. 그 시기는 520년대 전반이었을 것이다.
가실왕의 개혁은 내부세력의 반발과 신라의 영토확장 욕구 등과 맞물려 529년 결혼동맹이 파기됨으로서 동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더하여 532년 금관가야의 멸망으로 신라의 공세는 더욱 강화되어 갔다. 대가야의 정국도 급속히 냉각되어 친신라파가 몰락하고, 친백제파가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아마도 그 언저리 즈음에 가실왕이 사망하고 친백제파의 공세는 더욱 강화되었던 듯하다. 이에 우륵은 가야금을 품에 안고 신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 시기는 540년대 후반 경으로 짐작된다.
신라로 망명한 우륵의 행로는 순탄치 않았다. 그는 삼국의 대치가 극심했던 변방의 국경지대였던 충주로 安置되었다. 충주에서 우륵은 가야금을 통해 진흥왕의 주목을 끌었지만, 다시 경주로 들어가 최고지배층으로 편입되지는 못하였다. 대신, 그의 신라인 제자들에 의해 신라적으로 변용된 가야금곡이 신라 大樂으로 정착되었다. 우륵의 정치적인 망명은 성공적이지 못하였지만, 음악가로서의 선택은 어느 정도 성공했던 셈이다.
한편, 우륵의 망명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출신지인 성열현 세력과 연관되어 이루어졌던 듯하다. 성열현은 지리적으로 국경 요충지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王都의 직할현과 유사한 성격으로 편제되었던 듯하다. 이곳은 신라와의 접경지대로 양국의 대립 충돌이 빈번하였지만, 신라문화의 영향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 곳이었다. 우륵의 망명은 성열현의 이탈로 이어졌고,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당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Uruk was born in Seongyeol-hyeon, Daegaya around the 490s. At that time, Seongyeol-hyeon was a politically and culturally advanced place where Daegaya king’s order was directly carried out. Uruk improved his ability based on the cultural properties of Seongyeol-hyeon. Later, He came up to the capital city in Daegaya by the order of King Gasil in the early 520s. King Gasil who called Uruk was possibly King Inei who concluded a marriage alliance with Silla in 522.
Daegaya accomplished the rapid growth in the late 5 century, and based on it, it developed into a country that occupied wide-spread territory to the whole area of today’s Jeolla Province. However, as Baegje’s offensive was intensified, Daegaya’s sphere of influence weakened. In such a situation, King Gasil pursued incorporation policy based on Confucian Ye-Ak(禮樂) thoughts. Therefore, he pursued policy reforms and strong royal authority domestically and abroad promoted an alliance with Silla to cope with Baegje. King Gasil selected Uruk of Seougyeol-hyeon birth, which means that he selected Seongyeol-hyeon power represented by Uruk for his supporters, not the past political forces. Uruk composed twelve pieces of Gayagum to support King Gasil’s ideology when it was around the early 520s.
King Gasil’s reforms lost its motive due to opposition of the inside power and Silla’s desire for territorial expansion by canceling a marriage alliance in 529. In addition, the fall of GeumgwanGaya in 532 made Silla’s offensive more intensified. The political situation of Daegaya cooled down so rapidly that the pro-Silla group collapsed and the pro-Baegje group took the initiative. Around the period, King Gasil possibly died and the offensive of the pro-Baegje group was more intensified. Therefore, Uruk could not but come to Silla as an exile with his Gayagum, and the period seemed to be in the late 540s.
Uruk who took refuge in Silla didn’t live smoothly, and he was enshrined in Chungju that was a border area of edges of severe confrontation of the Three States. He attracted King Jinheung’s attraction in Chungju through Gayagum, but he failed to be included in top elites as returning to Gyeonju. Instead, Gayagum pieces were positioned as Silla Dae-ak(大樂) with Silla style modification by his disciples. Uruk's political asylum wasn’t very successful, but his choice as a musician was a success to some extent.
Meanwhile, Uruk’s exile seemed to be made with the connection with Seongyeol-hyeon power, his birth place. Since Saengyeol-hyeon was geographically located in the key point of the border, it seemed to be formed like the property of Jikhalhyeon(直轄縣) of the capital. This place was the Silla’s border where both countries conflicted with each other often, but in turn it could be easily affected by Silla culture. Uruk’s exile was connected to the withdrawal from Seongyeol-hyeon, and it is considered as the cause of the fall of Daegaya by Silla.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3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재인증) | KCI등재 |
2019-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 KCI후보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55 | 0.55 | 0.49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48 | 0.47 | 0.972 | 0.08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