璿源派乘을 中心으로 살펴본 東武 李濟馬의 生涯 硏究 = (A) study on the life of Lee Jema based on Seon-won-pa-seung(Lee's pedigree)
There has been various studies on Lee Je-ma's Sasang constitutional medicine done by Lee's followers, generally for clinical use. With the recent reappraisal of Lee's stature in Korean history, however, there has been growing need for research on his personal life as well as on his Sasang constitutional medicine.
“Seon-won-pa-seung”, which was published on January 1917 in Hamheung in Hamgyeong Province, is a rare genealogical record of Jeonju Lee clan in Hamheung, This book has been preserved through the Japanese colonization and the Korean war and is the only historical document that tells us the family history of the Lee clan.
Lee Je-ma was born in 1837 in Hamheungbu Dunji and spend his early childhood in Hamheungbu Hawoncheonsa Wongok, being raised by his grandfather, Lee chung-won, and studying under Wi Jong-myeon. When Lee was 13, he ran away from home in despair after his grandfather and father passed away. At 21, he got married and settled down until his wife died of illness that she contracted while delivering their son, Yong-hae, and Lee left home again for a while.
The then Choseon Dynasty was facing growing pressure by foreign countries to open its doors, and clashes broke out between Enlightenment thought (Gaehwa sasang) and Conservative thought (Sugu sasang) in the nation. Accordingly, the need for strengthening the national defense heightened. Under such circumstances, Lee Je-ma, then 39 (in 1875), make up his mind to take military examination, then passed the exam to serve in the Prefecture of Seoul (Hanseongbu). The fact that he gave himself a pen name "Dongmu (an military officer guarding a country in the East)" well demonstrates his aspiration to make his country wealthy and prosper.
He served as General of the Palace Gate Guards (Sumunjang) at 44, Staff officer (Chammoguan) and Minor military official (Busagwa) at 45, County magistrate of Jinhae (Jinhaehyeongam) at 50, and First minister of the Office of ministers-without-portfolio (Cheomjijungchubusa) at 52. During this period, he wrote "Gyeokchigo", and at the age of 58, he finished "Gapobon Donguisusebowon" while serving in the Prefecture of Seoul (Hanseongbu)
When he was 59 in 1895, Lee Je-ma hurried to Hamheung to take care of his ailing mother. After his mother passed away, Lee mourned at the grave of her while staying at the family graveyard (Simyosali). At the time, in Hamheung, a righteous army (uibyeong) movement was going on, during which some local bureaucrats and Japanese died. Since the incident, the Japanese army and government troops attacked the local residents, and the area was thrown into turmoil, with about half of the people leaving their hometown. When representatives of the residents visited him at his family graveyard to ask for help, Lee came back to the town, arresting those who initiated the turmoil and blocking the government army's dispatch to Hamheung.
Since then, Lee earned the residents' trust, his Sasang constitutional medicine became popular around the country. His contribution to Hamheung was also recognized by the government when he reached 60 and was appointed as Bukroseonyuwiwon and county magistrate of Gowon. Since his retirement two years later, he devoted the rest of his life running the Bowon pharmacy to care for patients by using the Sasang constitutional medicine that he and his pupils established.
On September 1900, Lee Je-ma drew his last breath. On June 1901, his pupils published "Donguisusebowon" in Hamheung, which helped the spread and transmission of Lee's Sasang constitutional medicine.
동무 이제마가 창시한 사상의학은 후학들에 의해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지만, 대부분 실제 임상의학적 필요성에 의해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동무 이제마가 한국문화의 인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최근의 현실에서 ‘四象醫學’과 함께 ‘四象醫學을 創始한 李濟馬’의 생애 부분에 대한 연구도 함께 진행할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璿源派乘』은 함경도 함흥에서 1917년 1월에 출간되어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역사적 굴곡을 겪으면서도 그 후손들에 의해 보존된 귀중한 족보로, 이제마와 이제마를 탄생시킨 함흥의 전주이씨(사촌이씨) 가족사를 담고 있는 유일한 사료다.
이제마는 1837년 함경도 함흥부 둔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함흥부 하원천사 원곡에서 스승 위종면의 가르침과 할아버지 이충원의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이제마의 나이 13세에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사망하자 그 충격으로 가출하여 생활한 적이 있었으나, 21세에 첫째 부인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면서 다시금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아들 용해를 출산하면서 얻은 질병으로 부인이 사망하자 첫 번째 결혼생활은 끝이 나고, 충격을 받은 이제마는 세상에 나와 한동안 방황하였다.
이즈음 나라에서는 외국의 개방 압력이 증가하면서 개화사상과 수구사상의 충돌이 일어났고, 나라에서는 외국의 무력압력에 맞설 수 있는 국방력 강화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이에 이제마도 비교적 늦은 나이인 39세(1875년)에 함흥의 무과시험을 합격하고 한성부에서 무관생활을 시작하였다. 부국강병 하는 나라를 세우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스스로 호를 동쪽나라를 지키는 무관이라는 의미에서 ‘東武’로 지은 것도 이 무렵이다.
관직은 수문장(44세) 참모관(45세) 부사과(45세)를 거쳐, 진해현감(50세) 첨지중추부사(52세)를 차례로 역임한다. 관직생활 틈틈이 격치고를 저술하고, 특히 58세에는 한성부에서 사상의학서인 『갑오본 동의수세보원』을 정리한다.
이제마의 나이 59세(1895년)에 노환으로 고생하는 어머님의 병간호를 위해 고향 함흥으로 급히 돌아왔으나, 어머님이 사망하자 선산에서 시묘 살이를 하였다. 이 당시 함흥에는 의병이 일어나 관리들과 일본인이 살해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군과 관군의 공격에 직면한 함흥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여 전체 주민의 반절이 집을 버리고 도주하는 등 극심한 혼란이 발생하였다. 이에 주민들의 대표가 선산에 있는 이제마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자, 이제마는 고향의 어려움을 외면 할 수 없다면서 산에서 내려와 혼란을 야기한 주모자를 잡아 옥에 가두고 군대의 출동을 막아 고향이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이런 이제마의 활동은 함흥 사람들의 신임을 얻게 되어, 이제마가 창시한 사상의학이 세상에 보급될 수 있도록 고향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나라에서도 공적을 인정하여 북로선유위원(60세)과 고원군수(60세)에 임명, 국민들을 직접 살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62세에 고원군수를 마지막으로 모든 관직생활을 마치고, 남은 여생동안 함흥에 개설한 보원약국에서 사상의학으로 환자를 돌보는 한편 제자들과 함께 사상의학 이론을 완성해 나갔다.
1900년 9월, 동무 이제마는 필생의 업적인 사상의학을 세상에 남기고 눈을 감았다. 제자들은 다음해인 1901년 6월 『동의수세보원』을 함흥에서 간행하고, 이제마의 사상과 의학을 전승 보급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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